주역은 음양의 천변만화 향연에 대한 주석이다. 그 핵심 축은 음양이다. 천지의 변화무쌍은 두 축의 충돌·갈등·조화의 변주곡이다. 인간의 삶은 그 원리가 전개되는 파노라마 풍경 속의 한 삽화에불과할지도 모른다. 생존과 번식이라는 보편적 명제를 위한 자연과의 충돌·갈등·조화의 문제만큼이나 복잡 미묘한 난제가 남녀 간의 문제이다.

아리안족 문화를 비롯한 곳곳에서 남성들의 카르텔화 된 편견의 성벽이 실재했음도 사실이다. 동서양의 왕실을 비롯한 지도자 계층들의 번영과 쇠락의 배경에는 “꽃들의 전쟁”이 스크린처럼 어른거린다. 부부갈등은 문명사회 이래 사회갈등에 버금간다. 현대사회에서도 많은 범죄가 치정에 얽혀 있으며, 엔터테인먼트의 단골 이슈는 남녀상열지사이다. 언젠가부터 페미니즘 논쟁과 미투 운동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국내에서도 많은 유명 정치인과 문화·교육계 등 인사들이 오명의 종말을 맞이하였다. 진화된 종교 율법에는 공통으로 남녀 간의 윤리가 강조된다. 왜 그럴까?

음양이 오행으로, 수많은 괘로, 효로 흩어지기 전에 통합체인 태극이 있었듯이, 인간에게는 남녀로 갈라지기 전에 인간이라는 공통분모가 있다. 인간에게 작동하는 프로그램은 생존과 번식이다. 그리고 생존과 번식을 기반으로 궁극적 가치를 향해 진화해나가야 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성이자 숙명이다. 지향하는 가치는 같지만, 음과 양이 가는 길은 다르다. 다른 것을 여실지견 하게 통찰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조화의 출발점이다. 다른 것을 받아들이면 한쪽이 갖지 못한 것을 다른 한쪽이 가지고 있는 것이 보인다. 부정(父精)과 모혈(母血)이 공존하지 않으면 존재도 없다. 비약하면, 고양이나 개는 인간과 다르다. 다른 고양이와 개를 인간화하려는 것은 그 생명의 본성과 가치를 침훼하는 것이다. 새는 하늘을 날고, 물고기는 물속에서 헤엄친다.

세계는 화엄이다. 우리는 어우러지는 것을 아름답다고 한다. 다른 것을 같게 하려고 하는 것은 폭력이다. 남자는 남자답고, 여자가 여자다운 것은 차별이 아니고 본성의 빛깔을 선연하게 하는 것이다. 서로 조금씩 닮아 가면서 환치되어보는 것이 사랑이다. 계곡이 없는 산은 얼마나 적막한가? 섬이 보이지 않는 바다는 얼마나 아득한가? 혼자서 추는 춤보다 그대와 함께 추는 춤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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