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어떻게 머무르며 어떻게 다스려야 합니까?

두 번에 걸친 지난 글을 대강백이신 월운큰스님께서 1970년대에 발간하신 『금강경강화』등을 참조해서 과목을 비교하고 새로운 해석을 붙여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대강백의 강화는 40여년이 지난 지금도 이보다 나은 번역을 찾기 어렵다고 할 정도의 걸작이 아닐 수 없다. 필자의 글은 큰스님의 번역에 시제와 의지, 존경 등 위대한 한글의 아름다움을 더하여 법회에서 직접 듣는 것과 같은 생동감을 불어 넣어 약간의 차별만을 두는 것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생생하게 풀어쓰는 금강경’ 연재를 보는 독자들이 잠시라도 모든 집착을 여의고 대승의 보살이 되어 느끼는 환희심을 갖게 되기를 기원해 본다.

1 법회인유분(法會因由分) : 이 경이 생긴 동기 / 서론[서분(序分):증신서(證信序)/통서(通序)] [육성취(六成就 : 육하원칙)]

001 [신해행증(信解行證)의 신(信)] : 전(前)육성취

[원문언해]如是我聞하사오니

[직역]이와 같이 우리는 들었다

[신론]아난 존자 혼자의 말이 아니다. 우리는 이와 같이 들었다. 부족할 수는 있지만 부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려는 것이니 너무 걱정 말고 여러분[중생]들은 청정한 믿음[신심]을 내서 귀를 쫑긋 새우고 한마디도 놓치지 말고 잘 새겨듣고 한 구절씩 잘 따라 외우면 될 것이다.

여시아문은 여시불설(如是佛說) 즉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렇게 말한다면 금강경에서 지적하는 상(相)이 되며, “아까 부처님께서 그때는 이렇게 말했잖아요?”라며 따지고 비방하는 식으로 오해될 수 있다. 까닭에 ‘내 탓’ 즉 아난을 비롯한 우리가 들은 것이지만 잘못도 있을 수도 있다는 하심(下心)의 의미로 여시아문이라고 한 것은 아닐까? 이런 의문을 화두처럼 참구하는 것도 금강경 읽기의 한 방법 될 듯 싶다. 여시아문의 ‘문(聞)’은 단순히 들었다는 청(聽)이 아닌 문사수(聞思修) 삼혜(三慧) 가운데 하나로 경전을 귀로 들어서 통달하는 것이다. 나아가 진리를 생각하여 마음을 두는[存心] 즉 앎이 사(思)이며 선정과 보시 등으로 잘 닦아서 익히는 수(修)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문’은 계정혜 삼학 가운데 계를 지니며 선정을 닦으며 지혜를 구하는 수행의 시작이라 할 수 있으며 ‘신해행증(信解行證)’의 시작인 ‘신’ 즉 믿음의 영역이기도 하다.

002 [별서(別序)] 후(後)육성취

[원문언해]一時에 佛이 在舍衛國 祇樹給孤獨園하사 與大比丘衆 千二百五十人으로 俱하시니라. 爾時에 世尊이 食時에 着衣持鉢하시고 入舍衛大城하사 乞食하실새 於基城中에 次第乞已하시고 還至本處하사 飯食訖하시고 收衣鉢하시고 洗足已 敷座而坐하시니라.

[직역]부처님께서 한 때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서 1250명이나 되는 큰 비구 대중들과 함께 했다. 이때 세존께서 공양 시간이 다가오자 옷을 입으시고 발우를 지니시고 음식을 구걸하기 위해 사위대성으로 들어가셨다. 성 안에서 차례대로 구걸을 마친 뒤에 본래 계시던 처소로 돌아오셨다. 식사를 마치신 후에 가사와 발우를 정리하신 뒤 발을 씻고 자리를 펴고 앉으셨다.

[신론][계정혜의 계(戒)] 부처님께서 인도 북부 코살라(憍薩羅=Kosala)국 사위성 부근 ‘제타 태자의 숲에 급고독 장자가 세운 절’이라는 뜻을 가진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 : 기원정사]에서 1250명[교진여(憍陳如)등 5명, 가섭파(迦葉波) 3형제 등 1000명, 사리불(舍利弗) 등 200명, 야사(耶舍) 등 50명으로 정확히는 1255명]이나 되는 덕높은 큰 비구[포마(怖魔)·정계(淨戒)·걸사(乞士)의 성문(聲聞)] 대중들과 함께 하시는 바로 그 때[매일 매일의 일상 같지만 다시는 안오는 희유한 시간]의 일이다. 평소와 같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분이신 세존께서 공양 시간인 사시(巳時 : 10∼11시)가 되자 옷[법복/가사(袈裟)가운데 외출복인 승가리(僧伽梨)]을 입으시고 크기와 색깔이 모두 법도에 맞는 밥그릇인 바리때[발우]를 지니시고 보다 많은 사람을 교화하며 한편으로 교만한 마음을 버리는 실천을 하고자 몸소 밥을 구걸[걸식/탁발]하러 사위성(舍衛城)에 들어가셨다. 큰 성 안에서 차례대로 부잣집 가난한 집 가리지 않고 일곱집의 탁발을 마친 뒤에 본래 계시던 처소로 돌아오셨다. 식사[진지]를 잡수신 후에 가사와 발우를 정리하신 뒤 더러움이 다하셔서 발을 씻을 필요가 없지만 모범을 보이고자 손과 발을 씻으셨다. [정(定)] 길상초(吉祥草) 자리를 펴고 가부좌(跏趺坐)를 틀고 의젓하게 앉아 선정 삼매[반야경은 등지왕삼매(等持王三昧)]에 드시자, [혜(慧)] 불보살은 물론 1255명의 대중과 함께 일상이 곧 수행이 되는[불이론(不二論)]의 생활선(生活禪)에 들어가 반야경의 참뜻을 아는 지혜[般若智慧]를 얻어 일시에 보살이 될 금강경 회상이 열렸다.

2 선현기청분(善現起請分) : 선현[수보리]이 수행하는 법을 물었다 / 본론[정종분(正宗分)]

003 수보리장로의 질문

[언해] 時에 長老-須菩堤 在大衆中하시다가 卽從座起하사 偏袒右肩하시고 右膝着地하시고 合掌恭敬하사 而白佛言하사대 希有世尊하 如來 善護念諸菩薩하시며 善付囑諸菩薩하시나이다. 世尊이시여 善男子 善女人이 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하니는 應云何住며 云何降伏其心하리이까.

佛言하사대 善哉善哉라. 須菩堤야 如汝所說하야 如來 善護念諸菩薩하시며 善付囑諸菩薩하시나니 汝今提請하라. 當爲如說하리라. 善男子 善女人이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하니는 應如是住하며 如是降伏其心이니라. 唯然世尊하 願樂欲聞하노이다.

[직역]이 때 장로 수보리가 대중가운데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 어깨를 벗어 메고 오른 무릎을 땅에 꿇고 합장(合掌)하고 공경하며 부처님께 아뢰었다.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보살들이 잘 호념하도록 하시고, 보살들이 잘 부촉하도록 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선남자와 선여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배우고 닦으려는 마음을 낸 후에는 어떻게 머물러야 하며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시키오리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좋은 말이다. 참으로 좋다. 수보리야, 네 말처럼 여래께서는 보살들이 잘 호념하도록 하시고, 보살들이 잘 부촉하도록 하시니 네가 지금 듣기를 청하니 마땅히 너희들을 위해 말해 주리라. 선남자와 선여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고는 이와 같이 머물러야 하며 이렇게 그 마음을 항복시켜야 되느니라.” “네, 세존이시여, 기꺼이 듣고자 원합니다.”

[신론]이와 같이 금강경 회상이 열리자 이 때 논쟁을 가장 잘하고 공의 이치를 잘 이해하는 장로 수보리가 대중가운데 있다가 일어났다. 세상의 가장 위대한 스승인 세존께 법을 묻기 위해 오른 어깨를 벗어 메고 앞으로 나와 오른쪽 무릎을 땅에 꿇고 합장(合掌)하고 공경의 예를 다하며 부처님께 아뢰었다. “말없는 설법으로 늘 일상에서 하심을 실천하시며 무한한 환희[법열(法悅)]를 얻게 해주시는 만나기 어려운 위대하신 세존(世存)이시여,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진여(眞如)의 모습 그대로 우리에게 오신 여래(如來)께서는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 즉 위로는 보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하기를 서원하신 깨달은 보살(菩薩)들로 하여금 중생들이 이 한 생각을 잘 지키게 하고 보살들께 중생들도 잘 교화하도록 부탁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무상(無上)정편(正編)정각(正覺)의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의 진리를 배우고 닦은 보살과 같은 선한 남자나 선한 여인이 어떻게 머물러야 되며 그 머물려고 하는 마음을 어떻게 항복시키며 다스려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좋은 질문이다. 참으로 훌륭하다. 수보리야, 네 말처럼 여래께서는 보살들로 하여금 중생들이 이 한 생각을 잘 지키게 하시고, 보살들께 중생들도 잘 교화하도록 부탁하셨다. 마침 수보리 네가 지금 듣기를 청하니 마땅히 너희들을 위해 다 말해 주리라. 선남자와 선여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고는 ‘다음과 같이’ 머물러야 하며 ‘다음과 같이’ 그 마음을 항복시켜야 되느니라.” “네, 세존이시여, 기쁘게 듣고자 하오니 이어서 가르침을 펴 주시기 바랍니다.”

‘이 한 생각’이란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를 비롯한 금강경이 전하는 가르침을 부득이하게 일합(一合)하여 표현한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자세히 설명된다.

-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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