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사랑이 나를 찌르고 있는지,

그 여름날, 나는 대학병원 치과 의자에 누워 아픈 사랑니를 뽑았다
얼마나 지독한 사랑이었기에
일반 치과에서는 뽑아낼 수도 없었던 사랑니
잉여의 이빨

잉여의 그 사랑 앞에서 나는 그녀를 생각하고
잉여의 그 사랑 앞에서 나는 그녀의 가시를 생각하고
잉여의 그 사랑 앞에서 나는 그녀의 가시의 뿌리를 생각하고
그 뿌리가 나에게서 비롯되었음을 생각하고

마취에서 깨어나니
어느덧 사라진 내 잉여의 사랑 가시,

그런데 왜 이리 허전하지
그립지
시리지

저물녘 창문으로 흘러드는 뻐꾸기 울음소리가
왜 이리도 차지

괜히, 툭, 남천 가지나 하나 꺾어본다

-유난히도 무더운 여름이었다. 봄부터 어금니 안쪽이 시리고 아프기 시작하더니, 여름이 되자 견딜 수가 없었다. 동네 치과에 갔다. 엑스레이를 찍어 본 의사가 말했다. 오른쪽 왼쪽 어금니 안쪽에 다 사랑니가 박혀 있는데, 사랑니가 너무나 큰데다 누워 있기까지 해서 동네 치과에서는 도저히 수술할 수가 없으니 대학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이빨로 대학병원에 가는 것은 처음이었다. 예약을 하고 갔지만 많은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저 분들도 나처럼 깊은 사랑니 때문에 오셨을까. 아픈 사랑니 때문에 오셨을까. 성인이 된 뒤 새로 어금니가 날 때 첫사랑처럼 몹시 아프다고 해 ‘사랑니’라고 했다는데, 나는 성인이 돼 누구를 사랑하다 사랑니를 만들게 됐을까.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 첫사랑의 사랑니.

이윽고 내 차례가 됐다. 의사가 마취를 한 뒤 사랑니를 뽑기 시작했다. 한참 뒤 깨어났을 때 의사가 말했다. “사랑니가 너무 깊숙이 박혀 있어 뽑기가 매우 어려웠다”고. 그래, 나는 그 의사의 말처럼 첫사랑의 누군가를 그렇게 깊게 사랑했을 거야. 그리곤 그 잉여의 첫사랑을 잊어버린 채 또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 갈망의 바다를 헤엄치고 다녔을 거야. 이제야 그 잉여의 사랑을 기억하게 되다니, 그 통증의 가시를 깨닫게 되다니, 그 통증의 가시의 뿌리를 알게 되다니,

수술하고 돌아온 나는 마당의 남천 한 가지를 툭 꺾었다. 그리곤 큼큼 냄새를 맡아보았다. 머리 파르스름한 여승(女僧)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오늘 알았다, 그 첫사랑이 아직도 내 안에 숨어 있음을. 이젠 잉여의 사랑이 아니라 정법(正法)의 사랑으로 자리하고 있음을.

-시인·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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