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침은 미진함이 없어야
일체를 비워야 오도의 길
자유자재함 당당히 과시

-보화의 오도송

선시가 저마다 독특한 맛을 안기듯 당대(唐代)의 보화(普化)가 쓴 오도시도 그의 날카로운 선기만큼 도리깨로 한방 맞는 기분이다.

보화는 당대(唐代)의 승려로서 선종(禪宗)의 일파를 이룬 인물이다. 즉 보화종의 개조라 할 수 있다. 남악 회양(南嶽懷讓)의 법사인 반산 보적(盤山寶積)의 제자로 알려졌다. 출신지는 정확하지 않다. 진주(鎭州, 허베이성 정정현)의 시중에서 광인(狂人)인 체하고 늘 방울을 흔들고 다녔다고 전해진다.

임제(臨濟) 와의 문답이 『전등록(傳登錄)』, 『오등회원(五燈會元)』 등에 기록되어 있다. 함통연간(860~874)초에 사망했다. 일설에는 그가 죽은 직후에도 방울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그의 일화가 너무 유명하다보니 선종회화의 화제(畵題)로 방울을 가진 그림이 그려지고 있다.

보화의 오도시는 거침이 없다. 마치 번뇌의 완벽한 제거를 암시하듯 그의 오도시는 막힘이 없으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안겨준다.

밝음에서 오면 밝음으로 치고

어둠에서 오면 어둠으로 치고

사방팔면에서 오면 회오리바람 일으켜 치고

허공에서 오면 도리깨로 치고.

明頭來明頭打

暗頭來暗頭打

四方八面來旋風打

虛空來連架打

보화는 갖가지 기행으로 무수한 일화를 지니고 있던 사람이다. 그는 길거리를 다닐 때 으레껏 방울을 흔들면서 이 노래를 불렀다 한다. 실제로 시어와 운율이 노래에 가깝다.

그런데 무엇을 왜 친단 말인가? 사방팔면에서 혹은 허공에서 오는 것도 가차 없이 친다고 말한다. 보화가 말하고 있는 깨침은 미진함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설령 그 어떤 것이 최고의 진리라 해도 '가졌다', '얻었다'는 의식이 남아있는 한 완전하지 못하다. 일체를 비워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모두를 치는 것이 보화가 추구하는 깨달음의 세계다.

보화 자신이 어느 하나에도 의지함 없는 불의일물(不椅一物)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그 어느 것으로도 안 올 때는 어찌하겠느냐"는 임제의현의 추궁에도 "내일은 대비원에서 재가 있다더군"하면서 전신(轉身)의 자재함을 보일 수 있었던 것이리라.

이렇듯 오도시는 깨침의 경지를 미학으로 열면서도 그 근기의 자유자재함을 온 천하에 당당하게 과시하고 있다. 그래서 영원히 살아있는 언어로 여전히 우리의 본능을 자극하고 감성을 여지없이 깨뜨린다.

-불교언론인

 

저작권자 © 한국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