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량수 법문처럼,
하늘에서 당목이 내린다
저 당목 돌돌 말아
그녀의 옷 만들고 싶다
그녀 몸에 꼭 맞는
설빔 만들어주고 싶다
저 설빔 입으면
그녀 마음 다시 되돌아올까
그녀 마음 다시 되돌아오면
내 몸 다시 되살아날까
설날 아침
무량수 법문처럼
쌓이는 당목 바라보며
산 넘어간 그녀
온종일 생각한다
-초등학생 때다. ‘오지다’는 말은 그럴 때 쓰는 겔 게다.
밤새 눈이 내렸는데, 마당에 쌓인 눈이 장독대를 완전히 덮고, 돼지막과 외양간으로 가는 길도 완전히 지우고, 사립문으로 가는 길도 완전히 집어삼켰다.
늙은 감나무 가지도 두 개나 부러졌다. 그러고도 오전 나절까지 눈이 쏟아졌다. 그런 눈은 (내 짧은 나이였지만) 난생 처음이었다.
물론 내가 태어난 곳이 삼백(三白)의 고장(쌀, 소금, 눈 혹자는 쌀, 소 금, 누에고치라고도 함)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했지만, 나는 그때 처음으로 눈〔雪〕의 포근함과 절망감, 안락함과 두려움, 평화로움과 아득함을 함께 느꼈다.
그로부터 몇십 년 후, 나는 유년의 그 눈 속처럼 내가 가 닿을 수 없는 아득하면서도 가까운 공간 속의 한 여인을 만났다. 그 공간 속에서 나는 늘 그 여인을 그리워했고, 그 여인 또한 그런 나를 극진히 위해줬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서로가 가 닿을 수 없는 거리만큼의 거리를 두고 서로의 자리에 있었다. 그래서 나는 어느 눈 내리는 설날 아침, 그녀에게 내 유년의 설빔을 입혀보았다.
그렇게라도 나는 내 공간 속에서 그녀와 함께 있고 싶었다. 그리고 내 공간 속에 내 관음(觀音)으로 모셔두고 싶었다. 이벽(시인·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