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온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몇 달 전 중국의 우한(武漢)에서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나라뿐 아니라 남아시아와 중동, 미국과 중남미 그리고 유럽 여러 나라를 맹공격하면서 쩔쩔 매게 만들고 인구 13억 명의 인도까지 힘든 상황을 맞고 있다. 이 바이러스는 보통 현미경으로는 식별해낼 수 없을 정도의 초미세(超微細) 존재이다. 작디작은 이 바이러스가 수백 년 동안 세

 

계를 지배해 오면서 아시아‧아프리카‧중남미 민족을 억압하고 착취하였을 뿐 아니라 최근까지도 강대국의 지위를 누려온 미국‧영국‧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 등등을 꼼짝 못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 ‘태양이 지지 않는 나라’라면서 스스로를 대영제국(大英帝國)이라 칭하던 영국은 왕세자와 총리가 확진 판정을 받는 등 이 바이러스 공격 앞에 우왕좌앙(右往左往), 갈팡질팡하고 있어서 제행무상(諸行無常)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웃 일본도 올림픽 개최를 하겠다는 욕심 때문이었던지 환자 발생 숫자가 많지 않은 것처럼 하다가, ‘2020 하계 도쿄 올림픽 개최 취소(또는 연기)’가 결정된 뒤로는 아주 빠른 속도로 확진자 숫자가 늘어날 뿐 아니라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심각해지면서 비상사태 선포 단계에까지 이르고 있다.

이처럼 온 세상이 몸살을 앓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 공격이 진정한 의미의 제1차 세계대전이다”라고 말하는 이도 있는데, 일리가 있는 지적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유럽 국가들만 얽혀든(물론 오스만 제국 치하에 있던 중동 지역이 관련되지만) 지역 전쟁이었고, 제2차 세계대전은 그 범위가 확장되었지만 그 때에도 중남미 국가들이나 북부를 제외한 아프리카 대륙은 싸움터가 되지 않았었지만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 대전에서는 세계 곳곳, 강대국과 약소국을 가릴 것 없이 이념의 좌우와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무차별 공격을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행으로 우리나라는 상황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하지만, 언제 어디에서 돌발사태가 발생할지 알 수 없어 마음을 푹 놓기에는 이르다. 특히 “사람이 많이 모이는 대중 집회가 위험하다”는 전문가들과 정부의 당부와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집회(예배)를 이어가는 몰상식‧몰지각한 일부 종교 집단 때문에 더 불안하다. 하긴 이게 우리나라 일부 교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의 극우 복음주의 교단 목사들이 이끄는 교회에서도 똑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하니, 이런 것은 서로 닮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게 어려운 것 같아 답답하고 안타깝다.

이번 바이러스 공격은 우리 사회 곳곳을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바꾸고 있다. 실내에서뿐 아니라 거리를 걷는 사람들도 거의 모두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으니, 그 표정을 알아볼 수 없다. 게다가 정부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으니, 그렇지 않아도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소원해지고 있던 시절 분위기를 더욱 삭막하게 한다. 요양원에 입주해 있는 노인들은 몇 달째 자손들이 찾아오지 못하는 것을 “이놈들이 이제 나를 버리려는가 보다 …”라고 오해하며 병세가 더 깊어지기도 한다. 어느 아파트 단지에 확진자가 한 명 나왔다는 순간부터 그 아파트 주민 전체가 따가운 눈총을 받게 된다. 여야 정치권은 물론이고, 일반 시민들 중에서도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를 둘러싸고 서로 독화살을 쏘아댄다. 이처럼 ‘사회적 거리 두기’ 캠페인과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는 ‘복면 효과’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이 더욱 무거워지고 비난과 비방의 강도는 더 거세진다.

나는 이번 사태 초기부터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말에 문제가 있다고 숱하게 지적했다. 서구에서 처음 ‘social distancing’이라고 쓰기 시작한 것을 그냥 말 그대로 옮겨 ‘사회적 거리 두기’로 아무 생각 없이 쓴 것인데, 이 말의 의미를 정확하게 옮기면 ‘물리적 거리 두기’라고 해야 맞다.

물리적으로는 서로 거리를 두어 이야기를 할 때에도 가능한 2m 거리를 유지하되, 서로의 마음은 예전보다 더 가깝게 다가가야 한다는 말이다. 몇 달, 몇 년 동안 메시지 한 번 주고받지 않았던 이들에게 메시지를 보내 안부를 묻고, 메시지만 보내던 이들에게는 직접 전화를 걸어 내 목소리를 들려주고 상대방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식으로 ‘사회적 거리’는 오히려 더 가깝게 해야 한다는 말이다.

-종교평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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