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고종의 종조는 나옹, 백운 스님과 더불어 여말3가(麗末三家)로 회자되는 태고 보우(太古普愚) 스님이다.

 

태고종 『종령집』의 「종헌선포문」도 ‘태고국사의 정혜겸수와 이사무애의 대승사상과 이념을 구현, 성불도생의 종승(宗乘)을 선양하고자 부종수교(扶宗樹敎)의 일념으로 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정통교단을 재건 발족하는 바’라며 태고 보우 스님의 정신계승 의지를 담고 있다. 하여, 태고 종도에게 태고 보우 스님은 정신적 지주이자 자긍(自矜)이다.

태고종, 어둡고도 긴 터널을 빠져 나왔다. 돌이켜보자. 조계종의 ‘94 종단개혁’을 묵묵히 지켜보았던 태고종에서는 ‘우리도 개혁을 추진해 새롭게 도약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이를 감지한 듯 2000년대 총무원장 후보에 나서는 스님 중에는 제법 굵직한 개혁 공약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러나 당선 이후 종단개혁을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집행부는 없었다.

총무원장의 의지부족도 요인이겠지만 종단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총무원 자체 힘이 약한 점도 크게 작용했으리라 본다. 그런데 태고종이 심각하게 보였던 건 개혁에 실패했기 때문이 아니다. 19대 총무원장 종연 스님 당시의 내홍 이후 20년 가까운 세월 속에서 표출된 건 횡령, 반목, 비방, 갈등, 암투로 점철된 크고 작은 분란·분규였다. 단 한 번의 내홍도 종단의 화합·결집에 큰 균열을 일으키는데 분규마저 연이어 발생했으니 그 틈은 상상 이상으로 커졌다. 특히 ‘편백운 집행부’의 독단전행으로 불거진 분규는 태고종을 나락의 끝으로 밀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태고종은 저력 있는 종단이었다. 종단을 바로 세우겠다는 종도들이 하나둘씩 모이더니 호명 스님을 제27대 총무원장으로 선출하고는 종령에 따라 분규사태를 차분하지만 단호하게 수습해 갔다. 분규종식까지 약 6개월의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이는 종단을 안정시키는 과정에서 불거지는 잡음을 최소화하려는 인고 속에서 안아야만 했던 불가피한 것이었다.

분규종식 이후의 태고종은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례로 ‘코로나 19’가 국가적 재난으로 치닫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잇따른 방역성금 전달과 종단 차원의 코로나19 종식 및 희생자 추모법회를 봉행했다. 아울러 교구종무원 및 산하사찰에 공문을 보내 법회와 행사를 발 빠르게 자제시켰다. 사찰재정과 직결되는 법회보다 생명과 안전에 무게를 둔 총무원의 이러한 신속하고도 준엄한 결단은 미래지향적이면서도 합리적인 총무원 행정을 기대하기에 충분하다. 교계의 시선은 이제 총무원장 호명 스님의 리더십에 맞춰지고 있다. 분규과정에서 불거진 일부 교구종무원과 총무원 사이에 놓였던 대척점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 총무원의 행정집행에 절대적 기반인 재정을 어떻게 충당할 것인지 등의 산적한 문제를 안고 있는데 이 난제를 풀기란 녹록치 않다.

‘카리스마적 리더십’보다는 ‘윤리적 리더십’에 방점을 찍는 시대로 넘어왔다는 사실을 상기해 봄직하다. 타인의 의견을 포용하고, 다른 사람의 이익이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직원들을 공평하게 대우하는 것이 핵심이다. 혁신을 통한 가치창출, 실력을 바탕으로 한 시장에서의 신뢰확보 등이 윤리적 리더십 범주에 포함된다. 태고종 집행부도 이 리더십에 착안해 종무행정을 펼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총무원은 전국 교구종무원의 충언과 중앙종회의 고언을 경청하고, 종무원과 중앙종회는 총무원이 설정한 중·장기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적극 협력해야 한다. 종도들 사이의 상호신뢰와 소통 속에서 혁신적 아이디어가 창출되고, 그 아이디어가 종단발전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단언컨대 태고종에게 필요한 건 ‘개혁’이 아니라 ‘소통과 혁신’이다.

태고법손이라면 종령집 「종헌선포문」의 한 대목을 뼈에 새겨야 한다. ‘본종은 일체의 분쟁

요인을 지양하고 새로운 불교계의 발전을 위하여 제종(諸宗)을 포섭한다.’ 더 이상의 분쟁

은 곤란하다. 고려 말, 대립각에 서있던 5교9산을 오교홍통(五敎弘通)·구산원융(九山圓融)을 주창하며 통합을 선도했던 고승이요 간화선의 뿌리를 이 땅 깊숙이 내리게 했던 대선지식 태고 보우 스님의 원융무애를 품어 대결집을 이끌어보자. 태고종의 새 지평이 열릴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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