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마경에서는 대승 보살의 당위적 삶을 “높은 언덕이나 육지에서는 연꽃이 나지 않고, 낮고 습한 진흙에서 연꽃이 피어난다”고 비유한다.

 

수행자가 “큰 바다에 들어가 몸을 적시지 않으면 진주 같은 값비싼 보배를 얻을 수 없는 것처럼, 생사와 욕망과 번뇌의 세상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중생을 구하는 일을 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우주 어느 곳에도 속세 아닌 곳은 없다. 깊은 산중 암자나 토굴도 이 국토 바깥에 있지 않다. 달나라 별나라에 몸을 숨기면 우주를 벗어난 것일까? 우리들은 혹여 공간적 고립과 사회적 격리를 출세간이라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마음 밖에는 먼지 한 톨도 없다. 마음 밖에는 아

무것도 없다. 아니, 마음에는 안과 밖이 없다. 어느 시대, 어느 곳에 처해 있든 우리는 그 마음 안에 있다. 잠깐 마음을 잊는다고 해도 그 마음은 사라지지 않고 생생하게 현존한다. 생명이 흐르고 있는 한 숨을 쉬고, 허공이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마음은 마음이 아닌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마음에서 피어난 허공 같은 망상도 마음이겠지만, 그 망상의 허공에서는 어떤 꽃도 피지 않는다. 고원육지에서는 연꽃이 피지 않는다. 설사 이 모든 것이 헛된 춤, 헛된 꽃, 헛된 꿈이라 할지라도 아름다운 춤을 추고, 진리의 꽃을 피우고, 지혜와 자비의 꿈을 꾸어야한다.

코로나19는 부부와 가족, 사회적 관계들을 소강상태에 빠지게 만들었고, 집과 나라를 찾아오는 손님들을 기피하게 하였으며, 이루 다 열거할 수 없는 다양한 분야의 활동들을 위축시켰지만 우주적 관계와 네트워크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어떤 부류는 호리피해의 저급한 인간의 탐진치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위기의 진흙 밭에서 고통을 나누는 고결한 인간의 품격을 보여주었다. 삶속으로 들어가 그 삶을 치열하게 극복하는 것이 보살정신이지 삶 밖 어디에 보살정신이 따로 있겠는가? 허공에다 누가 청정한 불국토를 세울 수 있으며, 낮고 습한 속세가 아니면 어떻게 연꽃을 피울 수 있겠는가? 우리에게는 이 땅 위에서 집을 짓고, 밥을 먹고, 노동하고, 사랑하면서 장엄하게 세상을 장식하는 것만이 허용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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