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하룻날 어스름 새벽녘, 집을 나설 때마다 큰스님께서 아침 차도 드시지 않은 채 우리 자매를 기다리신다는 말씀을 듣고 우리 자매의 발걸음은 항상 빨라졌다.

 

그리고 그때마다 말할 수없는 감동의 물결이 우리 자매의 얼굴에서 햇살처럼 빛났다.

절에 도착해 큰스님께 삼배를 올린 뒤 차를 준비하고 있노라면, 차담을 나룰 보살님들이 모여 앉는다. 그러면 큰스님께선 보살님들의 세간 이야기를 하나라도 놓칠세라 귀를 쫑긋 기울이신다. 큰스님께서는 항상 그렇게 겸허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우리에게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알도록 큰 가르침을 일깨워주시는 분이다.

사실, 법회 때 듣는 큰스님 법문도 좋지만 이렇게 차담을 나눌 때 듣는 큰스님 법문이 더 좋을 때가 많다. 그리고 그것을 내 마음속에 저장해두었다가 곧바로 행으로 옮길 때가 더 많다. 그뿐만이 아니다. 큰스님과 보살님들과 함께 차를 마시며 세상살이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큰스님한테 여유로움이 묻어나와 우리들까지도 마음의 여유로움이 생겨 더욱 넉넉해진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간다.

어느 날 지팡이를 짚고 다니시는 83세 노보살님께서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큰스님께 여쭈었다. “스님,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해요?” 노보살님께서 공부는 하고 있었지만 무엇인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던가 보다. 그러나 큰스님께선 그 연세에 공부를 물어오시는 노보살에게 큰 감동을 받으신 모양이었다. 큰스님께서는 “관세음보

살!” 하며 합장을 하시더니 “자기 그릇대로 하세요. 자기가 하는 일을 늘 살피는 것이 공부지 뭐 있나요. 자신의 삶과 존재를 억지로 꾸미려하지 않고 매순간 맑은 정신을 긍정적으로 주시

하다보면 어떠한 일에도 흔들림이 없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되는대로 하되 메여 있지 않고 깨어 있으라는 말씀을 하셨을 때 나는 속으로 ‘그래, 나에겐 『금강경』 담을 그릇이 있어 행복하구나. 내 삶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것도 오로지 『금강경』

이 내 안에 있기 때문이구나’ 하고 중얼거렸다. 스님의 권유로 『금강경』 독송을 시작한 지 15년, 『금강경』 독송은 이제 내 삶의 동반자이자 내 생활의 필수도구이다. 내 삶이 간절할 때 사용했고 설움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견디기 힘들 때도, 도저히 미움이 가시지 않을 때도 『금강경』에 의지하며 위로받고 살았다. 하루 7독씩 2백일, 3백일, 5백일 회향한 것도 여러 번,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내가 생각해도 그런 내 자신이 대견하고 감사했다. 『금강경』 독송을 일상화한 후론 생활은 물론 내 모습과 얼굴까지도 변했다.(주변 보살님들이 해주신 말씀이다)

내 친정어머니는 지금 백세인데도 새벽이면 어김없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수보리야, 수보리야” 비몽사몽 『금강경』 독송을 해 나를 불러 앉히신다. 백세의 친정어머니는 아직도 『금

강경』으로 하루를 여신다. 어느 날 밤이던가. 어머니께서 잠이 안 온다며 스탠드로 된 돋보기로 『금강경』 독송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얼른 안아 드렸다. 『금강경』이 어머니의 명을 이어주는 것 같아서였다. 지난해 어버이날 카네이션 바구니를 사들고 집으로 들어오는 내내 나는 간절히 기도했다. 올해도 꼭 카네이션을 살 수 있도록 해달라고. 올해도 카네이션과 함께 케이

크를 꼭 사다드릴 거다. 정말 내 그릇만큼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것이 내겐 부처님한테 바치는 일이다.

박영애

(서울시 동대문구 장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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