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를 시작하며

새 학기로 접어든지 2주째 되는 날이다. 벌써 같으면 캠퍼스에 있어야 될 터인데 코로나19로 아직도 방 안에 있다.

 

코로나19로 우리 사회뿐 아니라 전 세계가 혼란에 빠져 있다. 정식 개강은 4주 후로 미뤄지고 그때까지 원격강의를 진행해야 한다 하니 걱정이 태산이다.

왜 학기 이야기로 글을 시작하는가 독자들은 의아해할 것이다. 필자가 처음 뇌과학에 입문하던 1980년대 초반을 기억한다. 그로부터 40여년이 지난 2020년 이즈음, 뇌과학계의 상황과 분위기는 너무 낯설다.

필자가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는 분야는 ‘생리심리학’ 또는 보다 광의로 ‘생물심리학’이라고도 한다. 이 분야는 크게 ‘실험생리심리학’ ‘인지신경과학’ ‘정신생리학’ ‘정신약물학’ ‘진화심리학’ ‘계산신경과학’ ‘사회신경과학’ 등 광범위한 세부 전공 영역들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학문의 방점은 어디까지나 ‘뇌와 행동의 관계’에 찍혀 있다.

학계에서는 통상 ‘뇌과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뇌와 신경계를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분야는 전통적으로 ‘신경과학(neuroscience)’이라 부른다. 그러던 것이 뇌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등에 업고 알츠하이머병, 파킨슨씨병, 뇌졸중, 자폐증, 뇌전증, 조현병 등 뇌 관련 질환과 행동장애들이 만연하고 교육시장과 기업의 영업 전략의 일환으로 사회 전면에 부상함에 따라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뇌과학’이라는 어정쩡한 이름으로 우리 사회에 범람하게 된 것이다.

‘뇌과학’이라는 다소 경계가 모호한 용어의 남용으로 뇌과학자를 자처하는 유사 뇌과학자들의 활동도 활발해졌다. 물론 뇌과학 지식의 확산 보급과 영향력 확대 측면에서 그들도 상당 부분 기여했다. 하지만 지나치게 도를 넘고 주제를 잃었을 때 그 폐해는 의외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가령 정설이 아닌 허위 지식의 난무, 정체불명의 유사 뇌과학 서적 범람, 뇌과학을 빙자한 사교육 시장과 상담 현장의 횡횡, 그리고 영업 현장에서의 악용 등등의 행태는 고스라니 우리의 가족과 우리 자신이 감당해야 할 해악들이다

뇌과학의 범람과 그릇된 유사 뇌과학 지식의 난무

필자가 서점에 가면 항상 느끼는 불편은 ‘뇌과학 서적이 너무 많이 쏟아져 심히 혼란스럽다. 제목은 뇌과학 서적인데 정작 내용은 전혀 아닌 책들도 많고, 뇌과학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분야의 저자가 상술로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제작한 책하며 전혀 과학적이지 않는 여기저기 떠도는 자료와 설들을 묶어 엮은 저작들이 이루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것이다.

그동안 출판사들로부터 의대에서 환자들을 접해 온 임상 경험과 오랜 강의 경험을 책으로 담아 내볼 의향이 없느냐는 제안을 여러 번 받았다. 그럴 때마다 손사래로 집필을 고사한 이유도 바로 그러한 뇌과학 범람과 오용, 그리고 어쩌면 또 하나의 오염원이 아니 될까 염려했던 까닭이다.

그간의 소회는 그렇다 치고 필자가 이제 와서 뇌 과학에 대한 글의 연재를 기꺼이 수락하게 된 연유를 따져보았다. 우선은 불교매체의 손짓을 뿌리치기 어려웠다. 부처님과의 인연과 은혜를 가슴 깊이 새기고 사는 필자로서는 연재로 인한 심적 부담과 스트레스가 상당하였다. 그러나 불자의 입장에서는 외려 천금과 같은 부처님의 가피인 것이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잠시 고등학교 교직에 재직하다 독일로 홀연히 유학을 떠났다. 비록 홀몸으로 외롭고 힘들었지만 공부의 길은 순조로워 유럽에서 가장 저명한 교수님을 은사로 모시게 되었다.

 

교수님의 연락을 받고 처음 연구실에 들어섰을 때 깜짝 놀라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논문사본 자료더미들과 전문서적들로 벽면이 온통 가득한 연구실 한 편에 오롯이 모셔진 티베트 풍 불상과 장엄한 티베트 밀교탱화들 때문이었다.

어찌 세계적 위상의 고명한 유럽 간판 심리학자 연구실에 부처님의 한량없는 자비와 그윽한 법향(法香)이 넘쳐흐르고 있다는 말인가! 바로 불교는 뇌과학이자 마음과학이었던 것이다.

동양에 불교가 있다면 서양에는 신경과학과 심리학이 있다. 앞으로 서구의 지성들이 왜 불교에 매료되고, 동양 사원이나 선방을 들락거리는지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불자로서의 신앙적 자부심과 긍지도 이참에 조금이라도 일깨우고 싶은 발원도 가져본다.

시공을 거스를 수 없는 유정물로서 더구나 덧없는 중생으로서, 특히 백년도 버겁기만 한 인간에게 직장인으로서의 정년은 정신적으로 상당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중노인 오빠들의 지칠 줄 모르는 현역 활동과 무대 장악 그 혁혁함도 빛나지만 조용한 퇴장과 이면에서의 보이지 않는 지원과 따뜻한 응원 또한 그 못지않게 돋보이는 나이 듦의 미덕이요 노장다운 지혜이리라.

경험과 지혜를 흔적으로라도 남겨 스스로를 위안하고 싶다.

필자가 대학에서 강의하는 교과목은 주로 ‘생리심리학’과 ‘인지심리학’이지만 가끔은 ‘미학’도 개설된다. 철학의 ‘꽃’이라고 하는 미학을 주제넘게 맡아서 허우적거리고 헤매던 기억들이 아찔하다. 자의적으로 과목을 맡게 된 것은 아니고 학과의 사정상 어쩔 수 없이 맡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얼마나 소중한 기회였던가 감사하기 그지없다. 우리들 중 평생 ‘미학’이라는 분야를 한 번이라도 접하고 강의를 들어본 사람 몇이나 되랴.

어떻게 불쑥 미학 이야기가 튀어나오게 되었나? 우연은 아니다. 미학의 시작과 끝은 ‘죽음’이다. 그리고 죽음은 중생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죽음을 직시할 때 삶이 새롭게 되살아난다.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익히 배우던 진리지만 필자는 미학을 강의하며 그 죽음을 새삼 절실히 확인하고 제자들에게 그 죽음의 의미의 심오함과 엄중함을 가슴과 뇌리에 깊이 새기도록 강조한다.

필자는 감히 욕심을 가져본다. 필자의 이력과 경험 그리고 그동안의 삶의 여정과 편력이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시간과 지면을 빼앗는 해악은 아니 될는지. 정통 뇌과학자들의 정도를 견지하며 뇌과학의 최신지견과 주변의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전하고 싶다. 노년을 눈앞에 둔 뇌과학자의 식견과 정성을 진솔하게 담고 싶은 것이 집필에 나선 둘째 이유인 셈이다.

‘초고령화사회’, ‘평균수명 100세 시대’, ‘치매의 역습’, ‘고도 불안사회’… 모두 귀에 익숙한 말이 되었다. 뇌과학이 주목해야 하는 시대적 요청들이다. 뇌를 제대로 알고 뇌 지식들을 효율적으로 일상에 적용해 개인과 사회의 건강과 발전을 도모하는 밑거름으로 삼아야 한다. 특히 치매의 예방과 퇴치는 시급한 현안이다. 필자도 목하 당면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스님들께서도 뇌과학으로 새롭게 무장하고 자신의 건강과 불교활동, 불자상담 등에 유념할 필요가 있겠다.

지금이 어느 시절인가?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 ‘초연결시대’, ‘집단지성’ 등등 모두 시대들을 관통하는 ‘열쇠말(keyword)’들이다.

무서운 속도로 다가오는 미래 고도 산업기술사회에 흔들림 없이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4차 산업혁명의 중심이 되고 학문적 배경이 되는 뇌과학과 인지과학의 숙지가 필수적이다. 제품을 사면 해당 제품의 사용법부터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중생으로 태어난 우리에게는 뇌의 구조와 기능을 올바로 파악하고 지혜롭게 활용하여 당당하게 미래의 안녕과 생존을 도모하는 지행(智行)이야말로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의무이자 존엄일 것이다. 뇌과학 탐방길에 자상하고 진지한 도반이 되고 싶다.

연재 순서 예고-뇌과학 심부에서 주변 첨단 지식까지

간략하게 앞으로의 연재 계획을 안내하려고 한다.

먼저, 뇌과학 연구 역사와 이면에 얽힌 연구 비사들을 소개하겠다. 이어 뇌의 육안적 구조와 세부 재원들 그리고 대략적인 기능들을 살펴볼 것이다. 다소 난해하고 건조한 대목이 될 것이다. 하지만 뇌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으로 넘어야 할 작은 산쯤으로 여기고 감내해 주길 바란다. 그 고개를 넘으면 자아의 의식과 나의 본질과 정체 등 우리의 존재의 문제와 마주할 것이다. 흥미롭고 철학적인 실존의 문제를 가까이서 관조하게 될 것이다.

그 다음부터는 뇌과학 혹은 생물심리학의 본격 주제들로 안내하겠다. 인지과학의 핵심인 여러 사고과정들, 주의와 사물 지각, 학습과 기억, 의사 결정과 문제해결, 언어의 이해와 의사소통, 소위 고차 인지과정으로 알려진 전두엽 집행기능과 여러 상위인지 과정들이 다루어질 것이다.

과거 정신질환이나 뇌손상자와 같은 비정상 상태의 연구로 전개되어 오던 학계의 추세가 2,000년대를 전후로 인간의 행복과 감성과 같은 긍정적 측면에 관심을 돌리게 되었다. 감성과 인간의 역동성이 본격적인 조명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본 연재에서도 놓치지 않고 살펴볼 것이다.

눈을 뜨면 신기술 새 제품들이 어지럽게 쏟아지고 있다. 과학기술계의 새로운 전문용어와 일상이 된 고집적 제품들에 익숙해져야 한다. 불편하고 귀찮아서 외면해서는 사회적 고립과 시대적 낙오를 자초한 꼴이 되겠다. 새로운 기술의 등장과 능동적 도전도 세심하게 고려할 것이다.

상명대 감성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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