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고 깊은 산기슭, 어느 조그만 암자에 스님이 살고 계셨습니다.

스님은 날마다 새벽에 일어나 앞마당을 쓸고, 골짜기에서 흘려내려 오는 물에 목욕을 하고, 법당에 들어가 참선을 하셨습니다. 참선을 시작하면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도 꼼짝 않고 앉아 계셨지요.

 

그런데 누가 바위 뒤에 숨어 이 광경을 유심히 지켜보는 게 아니겠어요.

누굴까......? 바로 방울다람쥐였습니다.

방울다람쥐는 어렸을 적 법당 근처에 친구들과 놀러왔다가 사람들이 목에 방울을 달아줘 그 후부터 달랑달랑 소리를 내며 다니고 있었습니다.

방울다람쥐는 공부도 싫고, 일하기도 싫고, 오로지 먹고 노는 것만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더욱 신나는 것을 찾아냈답니다. 그래서 오늘은 마음먹고 친구들은 잔뜩 불렀지요.

“아이, 배고파......! 언제까지 기다려야 해?”

눈치 없는 친구 다람쥐가 물었지요.

“쉿! 조금만 기다려! 내가 배터지도록 먹을 수 있게 해줄 테니......!”

방울다람쥐는 목에 달린 금빛 방울을 튕기면서 말했습니다.

“알았어! 그런데 너, 거짓말시키는 거 아니지?”

“날 믿지 못하겠다는 거야? 그럼 당장 돌아가!”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알았어! 당장 보여주지. 나를 따라와.”

방울다람쥐는 친구들을 데리고 법당 문을 살짝 밀고 안으로 우르르 들어갔습니다.

눈앞에 펼쳐진 먹음직한 먹거리에 다람쥐들은 신이나 팔딱팔딱 뛰면서 “와......! 맛있겠다. 저거 우리가 다 먹어도 되는 거야?” “물론이지” “와! 너무 좋다, 너무 좋아!” 그러면서 모두들 부처님 앞에 놓인 곡식과 과일을 마구 먹고 물도 실컷 마셨습니다.

그리곤 신나게 뛰어놀기 시작했습니다. 부처님 어깨 위에 올라앉아 밤을 까먹는 다람쥐, 배가 너무 불러 부처님 손바닥 위에 실례하는 다람쥐, 은은한 향냄새에 취해 빙글빙글 도는 다람쥐, 그야말로 다람쥐 세상이었지요.

“애들아, 이곳 주인은 누굴까? 아무도 없는 걸까? 있었다면 우리를 가만 놔두지 않았을 텐데......”

“쉿! 저기......”

방울다람쥐는 몇 시간째 꼼짝 않고 앉아있는 스님을 가리켰습니다.

“거짓말! 움직이지 않는 사람도 있어!”

친구 다람쥐들은 스님에게 다가가 툭툭 건드리기도 하고, 어깨 위에 앉기도 하고, 머리 위에 올라가려다 미끄러져 깔깔 웃기도 하며, 사람인가 아닌가 고개를 갸우뚱거렸습니다.

다람쥐들이 아무리 그렇게 해도 스님은 여전히 꼼짝도 않고 앉아 계셨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방울아! 방울아!”

멀리서 방울다람쥐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엄마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자.”

한 다람쥐가 못내 아쉬운 듯 바깥쪽에 붙은 볼주머니에 밤을 넣으며 ‘나 이거 가져가 아픈 동생 줘야겠다’ 방울다람쥐도 양쪽 볼주머니에 밤을 가득 쑤셔 넣으며 ‘난 이걸로 케이크를 만들어야지’ 하고 중얼거렸습니다. 다람쥐들은 그렇게 각자 남아있는 음식들을 챙겨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다음날 아랫마을 느티나무에 사는 친구 다람쥐 생일잔치에 초대된 방울다람쥐는 어제 암자에서 가지고 온 밤으로 작은 밤케이크를 만들어 가져다주었습니다.

“와! 너무 맛있다. 이렇게 맛난 케이크는 처음 먹어 보는데. 이거 어디서 난 거야.”

느티나무에 사는 다람쥐들이 모두 방울다람쥐를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렸습니다. 방울다람쥐는 친구 다람쥐들의 귀에 대고 어제 일을 속삭였습니다.

“정말이야? 나도 데려가줘! 응. 부탁이야.”

“그러지, 뭐. 그런데 우리가 거의 다 먹고 와서 많지는 않을 거야”

“그래도 괜찮아. 얘들아, 방울이가 우리를 좋은 데로 데리고 가준대. 정말 신난다.”

다음날 방울다람쥐는 또 다른 친구들을 데리고 암자를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법당은 깨끗이 치워져있었고 부처님 앞에는 다시 곡식과 과일들이 잔뜩 놓여 있었습니다.

“와! 마술궁전 같다. 우리가 다 먹고 갔는데 어느새 다시 채워져 있네.”

한 다람쥐가 이 광경을 보고 미안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내일 우리 아빠 생신인데 우리 가족이 다 와도 될까? 여기 촛불도 있잖아.”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방울다람쥐는 자기가 이곳 주인인 양 “그래! 얼마든지 와도 돼.”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한 다람쥐가 스님을 가리키며 방울다람쥐에게 물었습니다.

“저 스님이 누구야? 여기 주인이야?”

“응, 맞아. 그런데 너무 걱정하지 마. 스님 방석에는 자석이 붙어있어. 앉으시기만 하면 꼼짝 않고 몇 시간은 앉아계시거든.”

그러면서 방울다람쥐는 스님이 졸고 계시나 않나 손바닥으로 휘저어본 뒤, “얘들아, 나 좀 봐라!” 하며 스님 머리 위에 사뿐 올라앉았습니다. 그리곤 스님 머리 위에 배를 깔고 누우며 자랑스레 내뱉었습니다. “와! 따뜻하다. 난 이제 잠 좀 자야겠다.” 그걸 본 친구 다람쥐들이 말했습니다. “그래, 좀 쉬어. 우린 조용히 먹고 놀다 갈게.”

한참 만에 방울다람쥐가 눈을 떠보니 친구들은 다 가고 없고, 그때까지도 자신은 스님 머리 위에 누워 있었습니다. 깜짝 놀란 방울다람쥐는 줄행랑을 치며 법당을 빠져나왔습니다.

며칠 뒤 햇살이 점점 더 많이 쏟아지는 시간, 방울다람쥐는 바위 위에 누워 이 생각 저 생각에 잠긴 채 해바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법당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이 달랑달랑 소리를 냈습니다.

방울다람쥐가 냅다 소리를 질렀습니다.

“야! 네가 또 그렇게 달랑달랑 소리를 내면 스님께서는 내가 또 왔는 줄 아시겠어! 좀 조용히 해줄 수 없겠니?”

그때서야 방울다람쥐는 생각했습니다. ‘몇날 며칠 동안 친구들을 법당에 불러 마음껏 먹고 난장판을 벌여놓고 갔는데도 스님께서는 왜 야단 한번 안치신 걸까?’

방울다람쥐는 그제야 후회했습니다. ‘그동안 스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까?’

다음날 아침 일찍 방울다람쥐는 친구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곤 그동안 스님께 입은 은혜를 보답해드리자고 제안했습니다.

“앞마당의 굵은 돌을 고르게 해드리고, 비 오는 날엔 스님 고무신이 비 맞지 않도록 나뭇잎으로 덮어드리고, 법당에 소복이 쌓인 먼지를 우리들 꼬리로 털어드리자.”

“그래, 그래. 아주 좋은 생각이야.”

방울다람쥐와 친구들은 콧노래를 부르며 마당에 있는 굵은 돌을 골라 마당 한 귀퉁이에 화단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이 사실을 아신 스님께서 마당에 빗질을 하시며 다람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스스로들 깨닫게 되어 잘 되었구나. 너희들이 법당에서 음식을 먹고 놀고 가져간 것을 탓하지 않은 이유는 그 음식이 여러 사람들에게 전해져서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고, 그것이 바로 배려라는 것이란다.”

그제야 다람쥐들은 배려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배려라는 것을......!

‘스님, 감사합니다.’

방울다람쥐는 자신의 사랑의 마음 방울소리가 온 세상에 멀리멀리 퍼져나가는 걸 느꼈습니다.

박영애(서울시 동대문구 장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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