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천득은 말했다.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몰라보고, 보통 사람은 인연인줄 알면서도 놓치고, 현명한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살려낸다’고. 그렇다. 우리는 다양한 인연을 만나면서 살아간다. 그리고 그런 인연으로 우리는 인생의 오미(五味)를 경험하게 된다.
『금강경』에서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뇩다라삼먁삼보리(가장 완벽한 깨달음)를 구하려는 마음을 낸 선남자 선여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까?”라고 질문했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자아라는 생각, 인간이라는 생각, 중생이라는 생각, 목숨이라는 생각을 갖지 말라”고 하셨다. 왜냐하면 생각이나 관념은 집착으로 이어지고 견해로 굳어져 탐욕과 증오심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생각에 얽매여도 안 되지만 빛깔·소리·향기·맛·감촉·의식의 내용에 얽매이는 마음을 내서도 안 되고,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마음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뜻에서 이번호부터 법안 스님의 집착을 떠나 모두가 부처가 되는 길목에서 만나는 『화엄경』을 연재한다. 누구나 쉽게 화엄의 맛을 접하고, 우리도 부처님같이 살 수 있는 법열을 누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편집자 주>
0. 들어가면서
『화엄경(華嚴經)』은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의 약자다. 그 글자를 하나씩 풀어보면, 大는 크고 위대하다, 方은 기울거나 비뚤지 않고 바르고 정확하다, 廣은 넓고 광대하다, 佛은 부처님의 세계, 華는 보살의 다양한 실천의 꽃, 예를 들면 아름다운 꽃과 같은 말씨⦁행동⦁마음씨 등, 嚴은 이 세상을 꾸미는 내용, 經은 경전, 즉 위대하고 바른 광대한 부처님의 세계를, 보살들의 꽃과 같은 실천으로 아름답게 꾸미는 내용을 설명한 경전이란 뜻이다.
우리가 공부할 『화엄경』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많이 보는 『80권 본 화엄경』이다. 새로 번역하였다 하여 『신역(新譯) 화엄경』또는 당나라에서 번역했다고 해서 『당역(唐譯) 화엄경』이라고도 한다.
당나라 당시 이미 『화엄경』 60권 본이 번역되어 있었지만, 측천무후(則天武后, 624~705)의 명령으로 당나라 승려 실차난타(實叉難陀, 652~710)가 80권 본 『화엄경』을 번역했다고 전해진다.
[80화엄의 구성]
80화엄은 7처 9회 39품으로, 7처는 『화엄경』이 설법된 장소가 7곳, 9회는 설법의 횟수가 9번, 39품은 내용적으로 분류될 수 있는 부분(品)이 39품인데, 별도로 독립되어 읽혀지고 있는 [보현행원품(普賢行願品)]을 곁들여 다음의 <표>와 같이 총 40품으로 정리된다.
1. 세주묘엄품(世主妙嚴品)
세주묘엄(世主妙嚴): 세상의 주인이 아름답고 장엄하다.
*世세상, 主주인, 妙아름답고, 嚴장엄하다.
여기에서 세상은 무엇이고, 주인은 누구이며, 아름답고 장엄하다는 무슨 뜻일까? 이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더없이 아름답고 존귀하며 소중하다는 의미이다. 차별과 분별없는 지금 이대로의 모습으로 모두가 주인으로서 당당하게 그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으며, 또한 그 모습은 지극히 아름답고 장엄하다. 따라서 이 품에 등장하는 세상의 주인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인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모든 존재들을 다 열거하여 세상의 주인이라고 표현하였다.
一. 시성정각(始成正覺): 비로소 바른 깨달음을 얻었다.
*始비로소, 成이루다, 正覺바른 깨달음(정각).
정각(正覺)에는 본각(本覺)과 시각(始覺)이 있다. 부처님께서 이제 비로소 깨달음을 이루었다고 하셨는데, 진정한 깨달음은 본래로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지닌 깨달음이 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사람이 곧 부처님이라는 인불사상(人佛思想)을 주장하고, 이러한 깨달음에 대한 믿음을 실천하고 직접 체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의 일에는 관심을 갖지 않고 새로운 이상만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파랑새증후군’을 앓고 있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본각을 일깨우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如是我聞하시오니 一時에 佛이 在摩竭提國阿蘭若法菩提場中하사 始成正覺하시니라.
여시아문(如是我聞): 저는 이와 같이 들었습니다.
일시불재마갈제국아란약법보제장중(一時佛在摩竭提國阿蘭若法菩提場中): 한때, 부처님께서 마갈제국 아란야법보리도량에 계실 때에
시성정각(始成正覺): 비로소 깨달음을 이루셨습니다.
*如是이와 같이, 我聞나는 들었습니다.
一時(『화엄경』을 펼치신)순간, 佛부처님, 在摩竭提國阿蘭若法菩提場中마갈제국(마갈타국이라고도 하며, 고대인도 중부에 있던 부처님이 성도하신 나라) 아란야법(고요한 법, 아란야: 현상 이전 본체의 입장)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始비로소 처음, 成이루다, 正覺정각(바른 깨달음)-성도(成道).
二. 장엄(莊嚴)
1)지(地)의 장엄
其地가 堅固하야 金剛所成이어든 上妙寶輪과 及衆寶華와 淸淨摩尼로 以爲嚴飾하고 諸色相海가 無邊顯現하며 摩尼爲幢하야 常放光明하고 恒出妙音하며 衆寶羅網과 妙香華纓이 周帀垂布하며 摩尼寶王이 變現自在하며 雨無盡寶와 及衆妙華하야 分散於地하니라 寶樹가 行列하야 枝葉光茂어든 佛神力故로 令此道場一切莊嚴으로 於中影現하니라.
기지견고(其地堅固): 그 땅은 견고한
금강소성(金剛所成): 다이아몬드로 이루어졌으며
상묘보륜(上妙寶輪): 가장 묘한 보배로운 바퀴와
급중보화(及衆寶華): 갖가지 훌륭한 꽃과
*其그, 地땅, 堅固견고하다.
金剛다이아몬드, 所成되었다.
上최고, 妙묘한, 寶輪보배로운 바퀴.
及와, 衆여러가지, 寶華보배로운 꽃.
청정마니(淸淨摩尼): 깨끗한 마니로
이위엄식(以爲嚴飾): 장엄하게 꾸며져
제색상해(諸色相海): 온갖 빛깔들이
무변현현(無邊顯現): 그지없이 나타났다.
*淸淨깨끗하다, 摩尼보물의 일종.
以함으로써, 爲嚴 장엄하게 되다, 飾 장식하다.
諸色모든 색깔, 相海 바다처럼.
無邊 끝없이, 顯現드러나다.
마니위당(摩尼爲幢): 마니로 된 깃발에서는
상방광명(常放光明): 어느 때나 광명을 비추며
항출묘음(恒出妙音): 아름다운 소리를 쉼 없이 내었고
중보라망(衆寶羅網): 갖가지 보석으로 된 그물과
묘향화영(妙香華纓): 미묘한 향기가 나는 꽃다발이
주잡수포(周帀垂布): 사방에 드리워졌다.
*摩尼보석, 爲幢깃발이 되다.
常항상, 放발산하다, 光明밝은 빛.
恒계속, 出내다, 妙音아름다운 소리.
衆갖가지, 寶보석, 羅網그물.
妙香미묘한 향기, 華꽃, 纓노끈.
周두루, 帀두르다, 垂드리우다, 布걸쳐놓다.
마니보왕(摩尼寶王): 으뜸가는 마니 보배가
변현자재(變現自在): 변화하며 나타나 자유자재하였고
우무진보(雨無盡寶): 끝없는 보물로 된 비와
급중묘화(及衆妙華): 갖가지 묘한 꽃들이
분산어지(分散於地): 땅에 흩뿌려지고
보수항열(寶樹行列): 줄지어선 보배 나무의
지엽광무(枝葉光茂): 가지와 잎은 반짝였다.
*摩尼보석, 寶王으뜸인 보배.
變변화하다, 現나타나다, 自在자유자재하다.雨비, 無盡끝이 없는, 寶보물.及와, 衆많은, 妙華오묘한 꽃.分散분산되다, 於地땅에.
寶樹보배나무, 行列줄지어 서다.枝葉가지와 잎, 光빛, 茂빽빽하다. 불신력고(佛神力故):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영차도량(令此道場): 도량에는일체장엄(一切莊嚴): 일체의 장엄함이
어중영현(於中影現): 그 가운데 나타났다.
*佛부처님, 神力위신력, 故말미암아.
令하여금, 此그, 道場도량一切일체, 莊嚴장엄하다.
於中가운데에서, 影現나타나다.
이와 같이 부처님께서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을 이루셨을 때, 무수한 보물들이 비처럼 내리고, 꽃으로 꾸며진 그물이 나타났습니다. 형용할 수 없는 빛들이 바다를 이룬 것은 부처님의 위신력 때문입니다. 우주에서 가장 장엄한 순간, 가장 묘한 아름다움이 바로 부처님께서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을 이루셨을 때에 펼쳐졌던 것입니다.
『화엄경』은 부처님께서 성도(成道)한 직후 깨달음의 세계와 그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수행법에 관한 내용이 총체적으로 담겨 있어 대승경전의 꽃으로 불리며, 불교 경전 가운데 그 내용이 가장 방대하고 집약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게 느껴진다. 그러나 우리가 인생길에서 아무리 힘든 일을 만난다 해도, 악연도 인연이라 생각하고 스스로 자신을 추스르며 앞을 향해 전진할 수 있는 것이 경전의 힘이다.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 없이 살기를 바라는 것이 보살의 마음이자, 우리 불자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의지하며 수행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정작, 화엄의 세계에 들어가면 내가 바뀌고 세상이 바뀐다. 중생과 부처가 하나라는 부처님의 말씀은 나와 남을 존중하고 사랑하며, 사소한 일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내는 일이다. 부처님 말씀을 거울삼아 불교의 향기를 피우며 사는 우리는 참으로 행복한 존재다.
<한국불교태고종 중앙승가강원졸업⦁밀양 가지산 청량사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