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엉뚱한 이야기 같지만 일상의 우리 삶을 점검해볼 수 있는 사건과 그 사건처리에 얽힌 일화에 대해 말하려 한다. 기억에도 가물가물 잊혀져가는 1998년 IMF 당시와 연관되었으니 이젠

 

오래 전의 일이 되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IMF를 극복하는 과정을 겪어낸 아주 특별한 사람 중 한 분이다. 특별한 분으로 지칭하고 싶은 그는 IMF 이전에 비교적 규모가 큰 출판사를 경영하고 있었다. 50여명의 직원과 함께 독자들의 시대요구에 부응하는 기획출판을 하는 등 나름대로 의욕적인 경영을 하였다. 교육에도 관심을 갖고 동화와 동시를 주로 취급하는 어린이 잡지도 창간하며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경영수완이 탁월했던 그도 하지만 쓰나미로 몰려온 IMF 경제위기의 파고를 이겨내지 못하고 그만 회사를 부도처리하기에 이르렀다.

자신이 받아야 할 외상매출금은 받지 못하고 외상매입금을 갚아 나가다가 전혀 예기치 않은 자금 경색으로 부도가 난 것이다. 그는 자신이 마지막까지 갖고 있던 남은 자금은 직원들의 밀린 월급 일부로 사용했고 그만 빚더미에 주저앉았다. 회복 불가능한 최악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대로 포기하지 않았다.

몇 년이 흐른 뒤 그는 출판업을 다시 시작했다. 예전처럼 큰 규모는 아니지만 소규모로 경영하면서 예전에 자신이 갖고 있던 스테디셀러와 수익중심으로 빼어난 기획출판을 하면서 회사를 내실 있게 경영해 나갔다. 그는 수익이 증대하자 자신의 부채인 외상매입금을 변제하기 시작했다. 빚을 서서히 갚아나가기를 계속하였다. 주거래 은행에서 채무변제의 책임이 소멸되었다고 통보해 왔지만 그는 그것과 상관없이 자신이 진 부채를 갚아나가는 일을 멈추지 않고 계속 진행했던 것이다.

그가 자신이 진 부채를 남김없이 청산한 것은 최근의 일이었다. 거의 20여년에 걸쳐 인척들과 친구들에게 진 빚까지 모두 다 갚은 것이다. 부채를 청산한 그날부터 그는 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인생에서 버킷리스트의 최우선 목표를 실행했음을 보여주는 밝은 얼굴이었다. 미소가 번지는 그의 얼굴은 보는 사람에게도 즐거움을 주었다. 그래서 그에게 질문했다. 부도 당시, 그가 외상매출금인 소위 받을 돈을 일부라도 받았느냐고? 하지만 그는 자신이 받아야 할 돈은 단 한 푼도 못 받았다고 대답하였다. 그 순간 그가 아주 특별한 사람으로 보였다. 자신이 받을 돈은 한 푼도 못 받고 자기가 갚을 돈만 다 갚다니, 아직도 저렇게 미련할 정도로 양심 바른 사람이 있다니, 갑자기 그가 위대한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었다.

은행에서 그만 갚으라고 권유하는데도 그가 자신의 부채를 남김없이 청산했다는 것은 아마도 자신이 부채의식을 벗어나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자신이 진 빚을 갚아야 한다는 것은 어쩌면 자신이 자신에게 한 약속이행이었을 수도 있다. 자신의 생에서 그 누구에게도 부채를 남겨둘 수 없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일이 그에게는 최우선이었던 것이다. 그는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이 아닌 바르게 형성된 자신만의 생을 살고 싶었다고 할 수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생은 자기가 살고 끝까지 자신의 생을 완수해야 한다. 그 누구도 자신의 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다. 최근의 ‘코로나19’사태를 보면서 어떤 경우라도 자신의 방역은 일차적으로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함을 강조하고 싶다. 지하철에서 ‘코로나19’에 대비하며 주위의 승객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코로나19’에 걸리지 않기 위해, 너도 나도 모두 마스크를 하고 있는데 자신만이 안하고 있다면 지하철의 사람들은 마스크를 안 하고 있는 사람을 위험인자로 보고 모두 그를 책망하고 외면할 것이다.

지금과 같이 ‘코로나19’위기경보가 ‘심각’단계로 격상된 경우,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은 기본예의다. 자신이 남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지극히 초보적인 예법이다. 그 또한 각자 자신의 문제이며 타인을 위해 베푸는 무조건적인 배려이다.

갚지 않아도 된다고, 그만 갚으라고 은행에서 통보까지 하는데도 끝까지 자신의 진 빚을 다 갚았다는 그 사람을 누가 어리석은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다. 절대 아니다. 그 사람에게는 자신이 살아야 할, 즉 사회적으로 자신을 온당하게 위치시키려는 자신의 생이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자신은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존재이기 때문에 사회적 관계의 구성원으로 자신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 그 역시 자신에게 부여된 사회적 책무와 소명을 다하기 위해 자신의 부채를 갚으며 자신이 존재하는 당위성을 확인했을 것이다.

위의 사례에서 보듯이 그는 인간관계의 회복과 유지라는 측면에서 사회적 부채의식을 벗어나기 위해 자신이 진 빚을 갚지 않으면 안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그 무엇보다 자신이 자신에게만큼은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는 근본적 인간의식이 우선했을 것이다. 그에게는 진정한 자기발견과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그의 삶은 한마디로 불교적 사유가 충만한 연기적 삶으로 우리 모두가 희원하는 삶이기도 하다. 확장되는 ‘코로나19’사태가 하루빨리 진정되고 사회질서가 회복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시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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