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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64(2020)년 04월 09일 목요일
[선시산책]분별을 뛰어넘은 경계가 진여의 세계
[선시산책]분별을 뛰어넘은 경계가 진여의 세계
  • 김군도
  • 승인 2020.02.17 12: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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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건너다 그림자 보고 깨우쳐
글과 말로 설명 안 되는 무정설법

-동산양개의 오도송

아예 타자에게 구하지 말지니

멀고 멀어 나하고 떨어지리라

나는 이제 홀로 가면서

어디서건 그와 만나나니

그는 이제 바로 나여도

나는 이제 그가 아니로다

응당 이러히 깨달아야

바야흐로 진여와 하나 되리라.

切忌從他覓 招超與我疎

我今獨自往 處處得逢渠

渠今正是我 我今不是渠

應須恁磨會 方得契如如

조동종을 창시한 동산양개(洞山良价 807∼869)의 오도송이다. 먼저 그의 깨달음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배경부터 살펴보자. 동산은 일찍이 무안이비설신의(無眼耳鼻舌身意)라는 구절에 큰 의심을 냈다. 또한 효성이 지극했던 그로선 무정설법(無情說法)에 관한 참구를 계속하던 중 위산영우의 소개로 운암선사를 만나게 된다. 동산은 운암선사에게 물었다.

“스님이 돌아가신 후 어떤 사람이 스님의 초상화를 그려보라 요구한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하겠습니까?”

운암선사의 진면목을 물으면 무어라 답해야 하느냐는 물음이었다. 다시 말해 도는 무엇이냐고 우회적으로 질문한 것이다. 이에 운암선사가 말했다.

“그 사람에게 말해 주려무나. 오직 이것이 이것(這箇是)이라고.”

‘이것이 이것’이라니 동산은 결코 쉽지 않은 이 말을 듣고서 더더욱 의심을 풀지 못했다. 며칠을 두고 이 말은 동산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물을 건너다 문득 물에 비친 그림자를 보고 대오했다. 그 순간 운암선사의 말뜻도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의 육근이 없다는 것에 의심이 걸려 참구하다가 마침내 말로는 표현할 수 없고 생각으로 헤아릴 수도 없는 무정설법의 경지를 크게 깨친 것이다. 그리하여 지은 것이 이 시다. 물을 건너다 지었다 하여 '과수게(過水偈)'라고도 일컬어진다. 그렇다면 '이것이 이것'이란 무엇인가.

‘아예 타자에게 구하지 말지니 멀고 멀어 나하고 떨어지리라’에서 밝히고 있는 것은 그가 제자들을 교화할 때 언급한 만리무촌초(萬里無寸草)와 직결된다. 동산이 만리를 가도 풀 한포기 없는 곳으로 가라고 제자들에게 법문했다고 하자 석산경저(805∼881)선사가 '문만 나서면 바로 풀'이라고 했고 이에 동산이 그를 크게 칭찬했다고 한다.

'만리무촌초'는 사량분별이 완전히 끊어진 진공무상(眞空無相)의 경계로 나를 의식해 분별하면 진여와 나는 별개의 것이 되지만 내가 분별을 끊어버릴 때에는 나 자신이 진여와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진여와 하나인 내가 곧 나의 본래면목이다. 본래면목을 찾았기 때문에 '그는 나여도 나는 그가 아니다'라는 종교적 체험의 소식을 전할 수 있다. 분별을 뛰어넘은 그 경계가 '이것이 이것'이며 진여의 세계인 것이다. 동산이 비로소 스승의 초상화(본래면목)를 바로 접했고 그 자신 물에 비친 그림자로 무착행(無着行)의 대오를 얻었다. 그의 오도시 ‘과수게’는 이것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불교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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