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은 12간지로 쥐띠[子] 해이다. 쥐띠에는 갑자(甲子, 푸른 쥐), 병자(丙子, 붉은 쥐), 무자(戊子, 누렁 쥐), 경자(庚子, 흰쥐), 임자(壬子, 검은 쥐)가 있다. 올 새해는 경자년 흰 쥐 해이다. 새해가 될 때마다 사람들은 그 해의 해당 동물들의 특성을 알아보기에 바쁘다. 쥐띠 해에 태어난 사람은 애교가 많고 지혜롭고 영리하며 사교성이 좋고 대인관계가 좋다고 한다. 그러면 왜 쥐띠 해에 태어나면 이러한 특성들이 있을까? 그것은 쥐가 상징하는 긍정적, 또는 부정적인 특성 때문일 것이다.

먼저 쥐에는 어떤 긍정적인 관념들이 있을까?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쥐에 대한 관념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영리하다’ ‘재빠르다’ ‘머리가 좋다’라는 일반적인 관념 외에 어떤 재앙이나 농사의 풍흉, 뱃길의 사고를 예견해 주는 영물로 인식하기도 하였다. 이와 상반되게 농작물에 피해를 입히는 동물로 인식하기도 한다. 그것의 긍정성에는 신성성(神聖性), 예지성(豫知性), 다산성(多産性), 근면함, 재물(財物)과 부(富)의 상징, 현명함, 그리고 귀여움 등이 있다.

다른 한편, 부정적인 관념에는 무엇이 있을까? 쥐는 부정함, 작고 왜소하고 하찮음, 도둑과 탐욕 그리고 야행성으로 재앙을 가져다주는 동물이라고 한다. 그래서 ‘상자일(上子日)’, 쥐불놀이 등에서 쥐를 퇴치하는 다양한 풍속이 전해진다. 여기서 ‘상자일’이란 음력 정월 첫 쥐날[子日]이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따르면, 상자일에는 콩을 볶는다고 하였다. 그때는 주걱으로 솥 안의 콩을 저으면서 “쥐알 볶아라, 콩알 볶아라.”고 외친다. 그러면 그 해에 쥐가 없어져서 쥐가 곡식을 먹는 일이 적다고 믿었다. 볶은 콩은 아이들이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먹었다. 또한 ‘쥐불놀이’는 들판에 쥐불을 놓으며 노는 풍속. 횃불을 들고 들판에 나가 논밭두렁의 잡초와 잔디를 태워 해충의 피해를 줄이고자 하는 의도를 담고 있으며, ‘서화희(鼠火戱)’ 또는 ‘훈서화(燻鼠火)’라고도 한다. 그 내용을 보면, 정월 대보름날 달집에 불이 붙는 것을 시작으로 논둑과 밭둑에 불을 놓는데 정월 첫 번째 쥐날인 상자일(上子日)이나 음력 정월 열 나흗날(14일), 또는 대보름날(15일) 저녁 농가에서 쥐불을 놓는다. 쥐불을 놓게 되면 겨울을 지낸 들쥐나 메뚜기, 해충의 번데기, 각종 병해충들이 알을 낳아 놓은 잡초나 쥐구멍, 해충 서식지를 태워 농사에 유익하고 풍년이 들 거라고 믿었다. 태운 잡초의 재는 논밭의 거름이 되고 풀들이 잘 돋아나 논두렁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된다. 아울러 전염병을 옮기는 들쥐를 몰아내기도 한다.

이처럼 쥐에 대한 관념을 부정과 긍정이라는 이분법적 결론을 도출해 내기는 힘들 것 같다. 그러면 불교에서 쥐와 관련된 일화는 무엇이 있을까?

먼저 ‘쥐와 고양이의 천적관계’가 형성된 고사가 전해온다. “하루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대세지보살(아미타불 오른쪽의 지혜를 관장하는 보살)을 불러 천국으로 통하는 12개 문의 수문장을 동물들 가운데서 선정하여 1년씩 돌아가면서 당직을 세우도록 하였다. 이에 대세지보살은 열둘 동물을 선정하고 서열을 정하기 위해 불렀다. 12마리 동물 가운데 고양이는 동물들의 무술 스승이라 제일 앞자리에 앉혔다. 그리고 그 다음 순서대로 소[丑], 호랑이[寅], 토끼[卯], 용[辰], 뱀[巳], 말[午], 양[未], 원숭이[申], 닭[酉], 개[戌], 돼지[亥]를 앉혔다. 그때 앉아서 기다리던 고양이가 갑자기 배가 아파 화장실에 가려고 자리를 비웠다. 공교롭게도 이 때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도착하였다. 부처님은 보살에게 한 동물이 부족해 물었다. 그때 마침 고양이를 따라 구경 온 생쥐가 달려 나와 말하기를 “저는 고양이 친구인데 고양이는 수문장의 일이 힘들고 번거로워 수문장이 싫다며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어쩔 수 없으니 고양이 대신 쥐에게 수문장을 맡으라고 하였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고양이는 간교한 쥐에게 원한을 품고 영원토록 쥐를 잡으러 다니는 ‘고양이와 쥐는 천적 관계’가 되었다”고 한다.

또한 불경에서 쥐와 관련된 유명한 이야기가 나온다. 『불설비유경』에 나오는 안수정등(岸樹井藤)의 비유가 그것이다.

“옛날 어떤 사람이 ‘들불’이 일어난 ‘황량한 들판’에서 ‘성난 코끼리’에 쫓기던 한 ‘나그네’가 ‘등나무 넝쿨’을 타고 ‘우물’로 피신해 위기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우물 안벽에는 ‘독사 네 마리’가 혓바닥을 날름거리고 있었고, 바닥에는 ‘독룡’이 나그네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며 노려보고 있었다. 나그네가 의지할 곳이라고는 넝쿨밖에 없는데 갑자기 나타난 ‘흰쥐와 검은 쥐’가 그것을 갉아먹고 있어, 곧 나그네는 끊어질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러나 나그네는 어디선지 자신의 입에 떨어지는 ‘너덧 방울의 꿀’에 취해 자신의 위험한 처지를 잊고 만다.”

이 비유는 인간이 사바세계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비유로 표현한 가르침이다. 여기서 ‘흰 쥐’는 낮을 의미한다. ‘낮’을 뜻하는 ‘흰 쥐’가 등나무 넝쿨을 갉아먹어 가늘어지듯 낮 시간은 줄어든다. 시간은 이와 같이 계속 흘러간다. 낮이 지나가면 밤이 찾아온다. ‘밤’을 뜻하는 ‘검은 쥐’가 넝쿨을 갉아먹어 밤이라는 시간도 계속 흘러간다. 등나무 넝쿨이 가늘어지는 것처럼 시간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나이가 든다는 것이다. 또한 우물 아래서 네 마리 뱀은 지수화풍 4대를 뜻하는데 4대 가운데 하나가 균형을 잃으면 몸에 병이 생긴다. 지대(地大)의 균형이 깨지면 몸에 상처 나고 붓고 감염이 된다. 수대(水大)가 균형을 이루지 못하면 부종(浮腫)이 생기고 백혈병 같은 혈액 질환에 걸리기도 한다. 화대(火大)가 균형이 깨지면 고열이 발생한다. 또한 풍대(風大)의 균형이 깨지면 호흡이 조화를 잃게 된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흰 쥐’와 ‘검은 쥐’가 넝쿨을 갉아먹듯이 시간이 유한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등나무 넝쿨이 끊어진다는 것은 목숨 줄이 끊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등나무 넝쿨이 언제 끊어질지 모르듯이 우리는 얼마나 살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입안에 꿀이 떨어지듯이 우리는 끝없는 욕망에 이끌리게 된다. 꿀은 욕망을 상징한다. 꿀의 단맛을 맞보게 되면 욕망의 유혹에 빠져든다. 그래서 사람의 몸을 받고 불법(佛法)을 듣고 깨달음을 일으켜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소중하다. 따라서 자신이 깨달은 것이 있으면 다른 사람도 깨달을 수 있게 인도해야 한다.

사람들이여! 모두가 쥐띠 해에는 모름지기 깨어있는 자로 무탈하게 보내기를 바란다.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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