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념 사라져야 진정한 자기 볼 수 있어

지혜의 등불은 밝은 태양과 같지만 몸과 마음은 신기루와 같다.

밝은 빛에 어둠이 사라지듯 온갖 번뇌 잠시 머물 수 없고,

망념이 아직도 남아 있다면 너란 나란 모습을 보게 되지만

오묘한 지혜로 오롯이 밝게 비추면 오로지 하나 공이라 할 것이다.

연기를 아는 자는 법을 알고 법을 아는 자는 연기를 아는 자이다.

 

조선시대 초기의 함허득통 스님이 저술한 금강경오가해 설의(設疑)내용 즉,

<금강경오가해>는 구마라슴(鳩摩羅什)이 번역한 <금강경>에 대한 주석서로서, 당나라 종밀(宗密)의 찬요(纂要),

양나라 부대사(傅大士)의 찬(贊),당나라 혜능(慧能)의 구결(口訣),송나라 야보(冶父)의 송(頌),송나라 종경(宗鏡)의 제강(提綱)등의 책을 가리킨다. 저자는 이들 주석의 어려운 부분에 해석을 붙였는데, 이를 `설의`라고 하였다.

<금강경오가해>에 대해 저자가 주석을 가한 곳은 <금강경>본문과 야보와 종경의 저술에 대해서이다. 종밀.부흡.혜능 등의 주석에 대해서는 오자의 정정에 그치고 있다. 이렇게 부분적으로 설의를 한 것은 저자의 선사상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강경오가해> 중 종밀의 <찬요>는 인도 유식학파에 속한 무착(無着)의 18주설(住說)과 세친(世親)의 27단의 설(斷疑說)을 계승하여 철저하게 논리적으로 주석을 한 것이다. 종밀은 화엄종에 속한 고승이지만 선에도 밝았으며 선과 교가 하나임을 주장한 사람으로서, 그의 <찬요><금강경>에 대한 인도의 전통적인 사상을 받아들여 중국의 화엄학과 선을 접목시킨 입장에 있었다. 그리고 부흡이 생존했던 중국의 남북조 시대에는 대승불교의 공사상(空思想)을 노장학(老莊學)의 입장에서 해석하던 시대이다. 부흡의 <협송>은 그시대의 선의 풍조를 풍기고 있으며, 선의 측면에서 <금강경>을 보는 데에 없어서는 안될 문헌이다. 그리고 야보의 <협주>는 송나라 때의 선에 입각해서<금강경>을 주석한 것이며, 종경의 <제강>도 사상적 견지에서는 야보의 저술과 같은 성격을 띠고 있다.

이 두 사람의 <금강경> 풀이에서 특히 주목되는 점은 교학적인 색채가 사라지고 순전히 선적이니 해석을 베풀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이 <금강경오가해><금강경>에 대한 인도 유식학파의 논리적인 해석으로부터 중국 선의 형성과 완숙에 이르는 노선에 이르기까지 대표적인 주석을 의식적으로 배열한 것이라 할 수가 있다. 기화득통스님은 <금강경>에 대한 역사적 흐름을 파악하게 하고 불교의 참다운 뜻이

일상생활에 직결되는 것임을 밝히고자,<금강겨오가해설의>를 저술하였다. 이 책이 저술된 뒤로는 우리나라의 <금강경>유통이 이 책에 의해 주도 되었다.

석가여래께서 사람 몸 얻는 것이 얼마만큼 어려운가를 삼천대천세계 대지(大地)가운데 흙에 비유하시어 손톱에낀 흙과 같이 어렵다고 고구정녕 이르셨다.

`수보리여! 어떤 선남자 선여인이 항하의 모래 수만큼 목숨을 보시한다고 하자, 또 어떤 사람이 금강경의 사구게 만이라도 받고 지니고 읽고 다른 사람을 위해 설해 준다고 하자, 그러면 이 복이 저 복보다 더욱 많으리라!!

인생은 번개 불의 광음과 같은데 속절없이 허망한 중생놀음에 빠져 해탈 옷을 입고 망나니의 칼춤을 추는구나..할

법장<한국불교신문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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