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고종과 나, 이제는 종단을 위해서 나서려 한다!

원명스님
원명스님

요즘 나는 바늘방석에 앉아 있는 기분이다. 나를 격려하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다소 의아하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나 원명은 출가 승려이다. 동진출가해서 배운 것이라고는 중 노릇하는 것 밖에 없다. 처음부터 기도 승려여서 염불하고 기도하는 것이 승려 노릇하는 줄 알았다. 큰스님들은 항상 말씀하시기를 중이란 염불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탁자 밥 내려 먹으려면 목탁 제대로 쳐야 된다고 귀에 못이 박도록 들었다. 그래서 강원 공부도 조금  밖에 못했다.  그렇지만 기도정근이라면 누구 못지 않는 정진력으로 장시간 염불삼매에서 정진한다.  

지금 시대의 불교는 염불만 가지고도 안 되는 것 같다. 시대가 많이 변했다. 그래서 가능하면 외국에도 가서 다른 나라 불교를 보고 듣고 하려고 한다. 시간이 허락하지 않는다. 바쁘게 움직이다보니, 마구 돌아다닐 시간이 그렇게 자주 나지 않는다. 또 거의 매일 신도님들이 찾아오니까. 시간을 헛되이 보낼 수도 없다.

대만에 가서 한 사원을 방문하여 찍은 기념사진.
대만에 가서 한 사원을 방문하여 찍은 기념사진.

나는 대만 불교에서 많은 감동을 받았다. 우리나라 불교도 언젠가는 대만불교처럼 자리 잡을 때가 오리라 본다.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중국의 큰 스님들이 대만으로 이동했다고 한다. 조그마한 섬이지만, 불교만큼은 중국 정통 불교가 전해져 왔고, 대륙은 공산화되면서 불교가 관제불교가 되고, 결국 불교가 침체하게 되었다가 최근 중국불교는 다시 소생하고 있다.

요즘 우리 종단사태를 겪으면서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되는데, 참으로 안타가운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너무 지나치게 속인 마음을 쓰는 종도들을 보노라면 정말 가슴이 미어진다. 도대체 왜 출가했는지 하는 느낌을 받는다. 또 어떤 스님들을 보면 너무 계산적이고 영악해서 계산이 매우 빠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절집 문화를 모르고 중이 무엇인지도 모른 분들의 짧은 생각 때문이다. 불교는 속세의 공동체가 아니다.

세속적 잣대를 들이대면 안 되는데, 지도자급에 있는 분들이 그런 행동을 할 때는 저건 아닌데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중이라면 불망어죄는 짓지 말아야 한다. 

모처럼 여유로운 시간을 갖게 된 대만여행에서 불자들의 돈독한 신심을 학인 했다.
모처럼 여유로운 시간을 갖게 된 대만여행에서 불자들의 돈독한 신심을 학인 했다.

이제 우리 종단은 좀 새로워져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너무 구태의연하다. 사회는 화살처럼 빠르게 변해 가는데, 우리 태고종은 너무 낡은 생각을 하고 있어서 답답하다. 종교란 것이 무엇인가. 물론 나 자신을 위한 수행도 필요하고 인격완성도 좋지만, 사회와 대중을 위한 이타정신이 없다면 종교로서의 생명력은 상실되는 것이다.

불이성 법륜사 대중 방에서 환담을 나누고 있는 원명스님.
불이성 법륜사 대중 방에서 환담을 나누고 있는 원명스님.

큰스님들을 모시면서 항상 불교를 생각하는 큰스님들의 모습을 보고 성장했기 때문에 그 분들을 생각하면 나만 생각하고 내 절만 생각하는 옹졸한 생각을 할 수 없다. 나보다는 다른 사람을 내 절보다는 불교 전체를 생각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사명감이 앞선다. 욕을 좀 먹더라도 이제는 종단을 위해서 뭔가 좀 해보려는 의욕을 갖게 된다. 모두가 인심을 잃지 않으려고 소극적으로 나가다보면, 종단은 누가 이끌어가고 종단발전은 누가 시킨단 말인가. 시간을 내서 종단에 봉사하는 분들이 없다면 공동체는 시들해지고 만다.

제44기 합동득도식에서 혜초 종정예하의 법어를 대독하고 있는 원명스님.
제44기 합동득도식에서 혜초 종정예하의 법어를 대독하고 있는 원명스님.
인도 아잔타 담마찰 우파굽타 마하테로(대장로)로부터 선물을 증저받고 있는 원명스님.
인도 아잔타 담마찰 우파굽타 마하테로(대장로)로부터 선물을 증정받고 있는 원명스님.

우리 태고종도 이제는 좀 변해야 한다. 질보다는 양을 추구하다보니, 생각이 다른 스님들이 많이 모여든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보니까. 어떤 공통분모의 의견을 갖기가 힘이 들었다. 사찰들이 영세하다보니 자기 절 가꾸는 데에만 신경을 쓰게 되고, 종단이나 종무원에는 소홀했던 것도 사실이다. 또는 좋은 게 좋다는 생각으로 가능하면 서로 이해하고 관용하면서 참으면서 살아왔다. 이렇다보니 개중에는 이런 사정을 교묘하게 악용하는 분들도 있다. 중 마음을 써야 하는데 속인 마음을 써서 종도 간에 불화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용서할 수 없는 승가의 악덕이다.

서울 관악경 경찰서 경승 실장으로 임명장을 받고 있는 원명스님
서울 관악 경찰서 경승 실장으로 임명장을 받고 있는 원명스님

이제 우리 종단도 정신 차리지 않으면 하위 종단으로 전락하고 만다. 종도 한 분 한 분 들이 대오 각성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이제는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 적당하게 주먹구구식으로 넘기려고 한다면 분명 화가 미친다는 것을 알자. 종단 지도자일수록 거짓으로 살지 말자.

 

청화 큰스님의 다비식에서 오열하는 상좌 원명스님(곡성 성륜사).
청화 큰스님의 다비식에서 오열하는 상좌 원명스님(곡성 성륜사).
무주당 청화대선사님의 유적비 앞에서 문도들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가평 반야사).
무주당 청화대선사님의 유적비 앞에서 문도들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가평 반야사).

기도정진하면서 중생제도만 하면서 포교 전법하는 생활만 하려고 했는데, 본의 아니게 내 자랑만 한 것 같아서 얼굴을 못 들겠다. 보잘 것 없는 나의 수행 이력을 드러내고 보니 부끄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를 오해하는 분들을 위해서는 도움이 되었다. 몇 분들은 내가 적당히 중노릇하는 것으로 오해했는데, 은사스님이 그 분이었군요 하면서 아는 척을 했고, 기도 정근을 그렇게 많이 하신 것을 몰랐다면서 격려하는 분들도 있었다. 나는 본래 상내기를 싫어하는데, 공연히 나를 자랑한 것 같아서 종도들에게 죄를 짓는 기분이다. 거슬리는 점이 있었다면 용서를 바라면서 참회의 말씀을 드리면서 1차 적으로 나의 수행일기를 이쯤해서 마무리 짓고자 한다.

 

해남 대흥사 천불전에서 1,000일 기도를 드릴 때 풋 중 시절의 원명스님
해남 대흥사 천불전에서 1,000일 기도를 드릴 때 풋 중 시절의 원명스님

아직도 나는 대흥사 천불전에서 3년간  1,000일기도 정진했던 마음과 자세로 살고 있다. 천일기도 성취 회향 기운으로 오늘의 원명이 존재한다고 굳게 믿고 열심히 정진하고 포교하고 있다.  이제는 종단 일에 신경 좀 쓰려고 원을 세웠다. 우리 종단 마저 어지러워진다면 한국불교 그 자체가 희망이 없어진다고 생각한다. 이제 80을 앞둔 노승이 무엇이 두려우며 누구를 의식하면서 이 눈치 저눈치 보겠는가. 오직 한 마음은 불교를 위하고 종단을 위하고 중답게 살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펴서 일체중생이 다 성불하고 이 땅이 불국정토가 되자는 발원이다.  그리고 우리 태고종이 새롭게 발전하자는 간절한 소망뿐이다.    

원명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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