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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63(2019)년 12월 12일 목요일
나의 수행일기-④원명 스님(추강사 시절)
나의 수행일기-④원명 스님(추강사 시절)
  • 한국불교신문
  • 승인 2019.10.16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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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사스님의 은혜는 하해와 같다
광주 추강사에서 사미.사미니계를 받은 기념촬영.
광주 추강사에서 사미.사미니계를 받은 기념촬영.

나는 이미 대흥사에서 사미계와 구족계를 받았기 때문에 추강사에서는 후배들이 계를 받는데 뒷바라지를 했다. 태고종에 와서 가끔 조계종에 있을 때 5조 가사를 수하는 것을 보고 시비를 거는 자들이 있는데, 이들은 한국불교 교단사 승단사를 모르고 하는 말이다. 태고종이 1970년에 창종되었다. 그리고 1962년부터는 통합종단이라고 해서 한국불교가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통합종단이 결렬되면서 우리 같은 젊은 승려들에게는 어려운 시절이 닥쳐 왔다. 이른바 분규사태에 직면하게 되었다. 은사스님은 계속해서 조계종에 적을 두고 계셨다. 나 역시 한동안 조계종에 몸담을 수밖에 없었고, 조계종 승려로 몇몇 사찰에서 수행 포교 전법을 해왔다.

은사이신 청화 큰 스님께서는 2003년 세연을 다하시고 열반에 드셨다. 은사스님께서는 일본 명치대학을 졸업하시고 1947년 백양사 운문암에서 득도하셨는데, 1985년에는 태안사 주지를 하셨고, 성륜사 조실, 태안사 조실을 하셨다. 조계종원로의원도 역임하신 대선사이셨다. 나는 비록 태고종에 몸을 담으면서도 은사스님을 자주 찾아뵈었다. 2003년 입적하셨을 때는 은상좌로서 상주 노릇을 톡톡히 하기도 했다. 은사스님 이야기를 하려면 끝도 한도 없다.

큰 스님께서는 참선과 염불을 병행하셨다. 참선만 하면 수행자가 편협해질 수 있다고 경계하셨다. 참선을 하지 않으면서 염불만 하면 자칫 재 바지중이라고 손가락질 받기 쉬우니 이판사판을 넘나들면서 수행 정진해야 한다고 항상 경책하셨다. 나는 이런 은사스님의 말씀에 따라서 염불 기도 주력에 집중하면서도 틈틈이 참선을 하는 것이 일과처럼 되어 있는데, 지금 80세가 다 되어 가지만, 어느 곳에 있던지 아침 도량석을 하고 예불을 모시고 참선 기도정근을 한다. 특히 신묘장구대다리 진언 수행은 수십 만 번 독송했다. 어떤 때는 나 자신이 놀란다. 너무나 식()이 맑아져서 나 자신이 마장에 이끌려 가는 것이 아닌가 하고 스스로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2003년 11월 12일 입적하신 청화 대선사 다비식 장면.
2003년 11월 12일 입적하신 청화 대선사 다비식 장면(곡성 성륜사).
태고총림 선암사 종정원에 주석하시는 혜초 종정 예하를 친견하고 기념촬영.
태고총림 선암사 종정원에 주석하시는 혜초 종정 예하를 친견하고 기념촬영.

은사스님의 가르침은 필설로써 다 표현해도 모자랄 정도이다. 은사스님께서는 항상 겸손을 강조하셨다. 엊그제는 전승관 총무원 대불보전에서 행자교육 특강을 했다. 나는 이제 입문하는 후배들을 보고 있으면 너무나 반갑고 즐겁다. 이들이 결국 우리 교단 즉 승단을 이어갈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을 보면 존경심이 절로 난다.

그런데 때로는 일부 후배 스님들의 언행을 보면서 실망할 때도 크다. 신도 수 좀 많고 경제적 여유가 있다고 아주 거들먹거리면서 선후배도 몰라 보는 것을 보면 정말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출가한 사문은 항상 마음을 자비심으로 가득하게 하고, 자세를 낮춰야 한다, 나는 행자 시절부터 이렇게 배워서 80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