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흥사 천불전에서 천일기도 회향

해남 대흥사 천불전에서 100일 기도를 드릴 때 풋 중 시절의 원명스님
해남 대흥사 천불전에서 1,000일 기도를 드릴 때 풋 중 시절의 원명스님

 

지금 돌이켜 생각하니 절간에서 60여년을 오직 기도발원정진으로 일관해 온 나 자신이 너무나 대견하기도 하다. 나는 참선만 하는 스승을 만나서 처음에는 참선을 했는데, 나의 성향에 맞지 않았다. 스승님은 일본 유학까지 하신 분으로 당대의 대석학이면서도 그 분은 사교입선(捨敎入禪)한 선승이었다. 대개 우리나라 큰스님들을 보면 처음부터 참선을 하는 분이 있는가 하면 나중에 교학을 다 배우고 나서 두타행(만행참선)을 하는 분들이 있기도 하는데, 또 어떤 스님들은 평생 강사로 일관하신 분들도 있다. 스승께서는 일본 유학시절에 이미 철학 종교 등을 다 이론적으로 통달하시고 절에 와서는 염불과 참선을 주로 하셨는데, 일종의 선정(禪淨) 수행을 하셨다. 참선과 정토사상을 구현 하신 것이다. 말하자면 참선도 하시면서 염불수행을 하셨다.

나도 처음에는 참선도 하면서 염불수행을 했는데, 좌선하면서 염불을 하려고 하니 화두공안을 들기만 하면 졸음이 쏟아졌다. 여름 한철을 진불암 토굴에서 스승님과 함께 나는데, 앉으면 졸음이 오고 머리가 개운치가 않았다. 스승님께서는 “원명이 너는 아무래도 염불 기도 쪽으로 나가야 되겠다. 큰 절로 내려가라”고 하셨다. 날아갈 듯이 기뻤다.

주지스님께 문안을 올렸더니, 천불전 노전을 보면서 천일기도를 해보면 어떻겠는가 하고 제안하셨다. 나는 너무나도 쉽게 대답해버렸다. 토굴생활이 답답했던 점도 있었지만, 기도도 한번 해보고 싶었다. 이렇게 해서 시작한 천일기도는 100일이 고비였다. 100일이 지나자 마음이 가라앉으면서 한번 목탁을 들면 2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하루에 4분(네번) 정근을 했는데, 하루 8시간의 강행군이었지만, 시간이 너무나 잘 지나갔다.

6개월 정도 되니 염불삼매가 되었다. 천수경을 먼저 독송하고 새벽과 사시에는 석가모니불 정근을 하고 오후와 저녁에는 관세음보살 정근을 했다. 그러다가 관음정근으로 일관해서 하루 4분 정근을 열심히 했다. 기도할 때는 너무나 정신이 맑아지고 마음이 청정해짐을 느꼈다. 음식도 많이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다.

1년쯤 지나니 꿈이 맞아 떨어지기도 했고, 눈 깜짝할 사이에 스승님의 모습이 나타나면 그날은 꼭 은사스님께서 오셔서 격려하시면서, 영험이랄까 기적 같은 이적이 생기더라도 그 경지를 넘어서야 된다고 경책하셨다. 은사스님께서 어떻게 이런 나의 경지를 아실까 해서 겁이 나기도 했지만, 은사스님께서는 기도 중에는 절대 이런 천기누설을 하면 안 된다고 하시면서 토굴로 돌아가셨다.

나는 이때부터 진정으로 스승님의 도력을 믿게 되었고, 기도정진의 힘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나는 공부에는 취미가 별로 없었다. 경을 배우는데, 한자는 많이 몰라도 강사스님이 해석을 하면 이치가 금방 깨우쳐 졌다. 마음속으로는 훤한데 자전(옥편)을 일일이 찾아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대교(화엄경) 과정은 마치지 않았지만, 나중에 화엄경을 한번 읽어 보니 이치가 그대로 이해되었다.

대흥사 천불전에서 천일기도를 회향하고 나서는 광주와 대구 등지의 절에서 주로 노전을 보면서 기도염불 정진으로 일관했다. 광주에서 서울로 옮겨와서도 나는 주로 기도정진으로 포교를 하고 있고, 주로 신묘장구대다라니 기도를 했는데 지난 60여 년간 수십 만 독은 했다. 지금도 새벽 3시면 기상하여 기도를 해야 하루가 편안하게 시작된다.

전국유명사찰 기도처를 찾아 다라니 기도를 하던 중선실 앞(염화실)에서 포즈를 취하다.
전국유명사찰 기도처를 찾아 다라니 기도를 하던 중 선실 앞(염화실)에서 포즈를 취하다.

나는 80이 다되어 가도 지금도 기도정진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전국에 이름난 기도처는 가보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고 소문난 기도처는 다 다녀봤다. 운문사 사리암, 설악산 봉정암, 낙산사 홍련암, 강화 보문사, 남해 보리암 등 가보지 않는 기도처가 없을 정도로 전국 기도처는 다 다니면서 기도정진을 했다. 지금은 대명사에서만 기도에 전념하고 평창 절에도 가서 기도를 하고 있다. 한참 기도에 열중할 때는 태아감별법이라고도 할 수 있는 감별사로서 적중률에 나도 놀랄 정도였다.

그렇지만 나는 스승님의 경책에 항상 조심하고 있다. 자칫하면 사도에 떨어진다는 말씀이 귀에 쟁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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