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석 처 수원 법흥사에서 문도와 신도들 참례

제8대 태고종 총무원장을 역임한  남허당 이남채 대종사 진영
제8대 태고종 총무원장을 역임한 남허당 이남채 대종사 진영
남허당 이남채 대종사 각령 위패
남허당 이남채 대종사 각령 위패

태고종 제 8대 총무원장을 역임한 남허당 이남채 대종사 40주기 열반다례제(음 9월 12일)를 남허문도회(회장 편백운) 주관으로   10월 10일 오전 수원 법흥사에서 법흥사 신도와 문도들이 참례한 가운데 조촐하게 봉행됐다. 불이성 법륜사에서 봉행하려 했으나 종단사태로 인하여 올해는 평소 주석했던 법흥사에서 모시도록 하여 남허문도회 총무 지상 스님이 주관하였으며 법상좌 법진, 도광스님이 집전했다.

남허당 남채 대종사는 금강산 유점사 출신으로 일본 유학을 마치고 유점사에서 설립한 통천중학교장을 역임했으며 강원도 홍천 수타사, 서울 옥천사 주지를 역임하고 불이성 법륜사 포교사로 포교활동을 했으며, 분규 때는 법륜사측 대표로 활약했고, 태고종 중앙종회의장과 제8대 태고종 총무원장을 역임했다.

남허스님은 태고종단을 현대화하고 개혁하려는 원대한 계획을 세우고 총무원장에 취임하자, 운산 인곡 운경 백우 벽파 인공 대운 등 젊은 승려들을 과감하게 기용하여 종단발전을 위하여 종무를 추진하던 중, 입적하였다. 남허스님은 생전에 편백운 스님 등 제자들에게 종단의 현대화 대중화 세계화를 통해서 개혁불교를 해야 한다고 하면서 종단개혁과 발전을 강조했다.

 남허 대종사는 1917년생으로 금년 탄신 102주년이 된다. 1934년 금강산 유점사에서 해월화상(대륜화상 상좌)을 은사로 득도한 이래, 유점사 강원을 졸업하고 혜화전문(동국대전신)과 일본 고마자와 대학을 졸업하고, 해방 전까지 금강산 유점사에서 주석하면서 강원도 고성군 통천중학교장을 역임하고 나서는 홍천 수타사(고아원 운영) 주지, 조계종 총무원 부장 등을 역임했으며, 불교법난 때는 사간동 법륜사 측 대표로 활약했다. 태고종 창종 이후에는 1970년 중앙종회의장을 역임했으며, 1974년 태고종 총무원장에 선출되었고, 1978년 재임되었다. 1979년 11월 2일 병환으로 입적했다. 법랍 46세 세수는 63세였다. 문하에는 다수의 은법 제자들이 태고종에서 활약하고 있다. 편백운 총무원장, 원묵 원로회의 수석부의장, 고 영우(전 종회의장), 원응(주필), 법진(보운), 지홍(청련사), 지상(가사전문가), 용담(봉원사), 종연(성주암), 홍제(인천종무원장 역임), 동우(송덕암), 도광(안양) 스님 등이 있다.

<편집국>

저작권자 © 한국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