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백운산 보림사에서 열반, 태고종 12, 15세 종정역임

원주 백운산 보림사에 모셔진 보성 정두석 대종사 탑비
원주 백운산 보림사에 모셔진 보성 정두석 대종사 탑비
보성 대종사 탑비와 사리탑
보성 대종사 탑비와 사리탑

태고종 제 12세와 15세 종정을 역임한 보성 정두석 대종사는 한국불교태고종 뿐 아니라, 한국불교 교육계에 남긴 공적이 매우 크신 선지식이다. 보성 대종사께서는 1998년 9월 3일 입적하셨다. 법랍 79년 세수 92세였다.

스님은 1906년 4월 함경남도 이원에서 출생하셨으며, 1919년 강원도건봉사에서 김보련 화상을 은사로 출가하였고, 1933년 박한영 대종사를 계사로 비구계 및 보살계를 수지했다. 이후 태고종 종승위원장, 중앙종회 의장, 승정 등을 역임한후, 제12세와 15세 종정을 역임했다.  또한 숙명여대 문리대학장을 비롯해서 동국대학교 총장을 역임한 불교교육계의 석학이셨다.

보성 종정께서는 열반에 드시면서 열반송을 남겼는데, “제진법아시멸도(除盡法我是滅度) 청정무여열반심(淸淨無餘涅槃心) 습기번뇌영불생(習氣煩惱永不生) 방도생사대해고(方度生死大海苦) (법과 나를 모두 다하니 이것 멸도인지라 청정하여 남김이 없으니 이것이 열반심이요 습기와 번뇌가 영원히 생겨나지 않으면 바야흐로 생사대해고를 건넘이로다)”라고 하셨다.

탑비에 새겨진 열반송.
탑비에 새겨진 열반송.
백운산 자락에 봉안한 보성 대종사 탑비와 사리탑가 보림사 대웅전 뒤뜰에 안치되어 있다.
백운산 자락에 봉안한 보성 대종사 탑비와 사리탑이 보림사 대웅전 뒤뜰에 건립되어 있다.

보성대종사는 일찍이 금강산 건봉사에서 축발하고 건봉사 강원에서 경학을 배우고 동국대 전신인 중앙학림을 졸업하고 일본에 유학 일본대학 종교학과를 졸업한 당대로서는 신구학문을 겸수한 엘리트 승려였다. 이후 여러 사찰의 포교사를 거쳐서 불교교육계에서 종사하시면서 동국대 총장을 역임한 대석학이었다.

은퇴 후에는 남허스님의 권유로 종단에 나오셔서 중승위원장 중앙종회의장 종정을 역임하시면서 종도들에게 감로법우의 지혜법문을 내리시고, 종단이 한국불교정통종단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시는데, 큰 역할을 하셨다. 보성 대종사께서는 종단의 소임을 보시면서도 감악산 범륜사와 천중사에서 비구니 강원을 여시고 후학을 지도하셔서 태고종 비구니 교육에도 남다른 역할을 하셨다.

필자는 보성 대종사님께서 종정으로 추대되는 현장에 있었고, 감악산 범륜사에 주석하실 때는 법암스님 건당식에 참석하기도 했다. 사람의 인연이란 참으로 소중하다. 보림사에 주석하실 때, 한번 찾아 뵌 적이 있었고, 그 후로는 뵙는 기회가 없었다.

모처럼 원주 백운산 보림사에 들려서 보성 정두석 대종사 탑비와 사리탑에 참배하게 되니 옛날 생각이 절로 난다. 항상 온화하신 성품으로 조용조용 말씀하시던 보성 대종사님의 생전 얼굴이 떠오른다. 항상 단주를 손에서 놓지 않으시고 ‘관세음보살’을 염하던 생전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보성 종정예하를 모시고 기념촬영(바로 뒤에는 평생 시봉했던 성수비구니 스님의 얼굴이 보인다.)
보성 종정예하를 모시고 기념촬영(바로 뒤에는 평생 시봉했던 성수비구니 스님의 얼굴이 보인다.)
편백운 총무원장스님이 보성 대종사 탑비와 사리탑에 친견하고 종단안정을 기원했다.
편백운 총무원장스님이 보성 대종사 탑비와 사리탑에 친견하고 종단안정을 기원했다.
원응 스님이 사리탑비 앞에서 보성 대종사님을 추억하면서 상념에 잠겨 있다.
원응 스님이 사리탑비 앞에서 보성 대종사님을 추억하면서 상념에 잠겨 있다.

우리 종단에는 이렇게 훌륭하게 수행 전법하다가 자신의 소임을 다하고 열반하신 선지식들이 많이 계시는데도 열반 후에는 종단이나 문도들도 크게 관심을 갖지 못하고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가는 것이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생존 시에는 앞을 다퉈서 서로 잘 모실 것처럼 하면서도 세월이 지나면 다들 시들해지는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스승과 제자 사이는 법으로 맺어진 인연이다. 소중함을 알아야 하는데, 정말 딱한 일이다.

성수 비구니 스님은 보성 종정 예하께서 생존하실 때나 열반하시고 난 후에도 마음 변치 않고 스승님 시봉하는 정성은 여전해 보였다. 무상대도에 입문하는 길을 가르쳐 주신 스승님의 은혜를 어이 잊을 것이며, 그 은혜는 산보다도 높고 바다보다도 깊다고 했다.

보성대종사 사리탑전에 서서

가고 옴이 본래 허공 속의 바람이어라!

선지식께서 금강산 건봉사에서 축발하시고

백운산 보림사에서 눈썹이 떨어지신 경계는

어떠하오며, 시방 종장(宗匠)께서는 어디에

정처(定處)를 두고 계시 온지요!

시(時)와 공(空)이 없다하지만, 큰스님께서는

너무 많은 것을 남겨 놓으셨습니다.

그렇다고 무심하게 흔적도 없이 구름처럼

홀연히 가신다면 정 많은 군생들에겐 슬픈 일이겠지요

불조의 정맥에는 심인(心印)이 제일이라 하지만,

그래도 후학들에게는 탑비와 사리탑은

두고두고 거울이 되니,

흰 구름 시도 때도 없이 오고가고

청풍은 흔적도 없이 스쳐만 갑니다.

육조 가풍은 보림사에서 면면히

계승해 가니, 해동 백운산 보림사에도

회상이 빛이 날 시절이 올 것을 기약하오며

돈수 삼배하옵니다.

백운산 보림사 보성 대종사 사리탑전에서

원응 돈수 구배

 

원주 백운산 보림사=원응<주필>

 

 

저작권자 © 한국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