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란 무엇인가?

석가모니 부처님 고행상(苦行像), 파키스탄 라호르 박물관 소장.
석가모니 부처님 고행상(苦行像), 파키스탄 라호르 박물관 소장.
라호르 박물관 전경. 1865년 설립.
라호르 박물관 전경. 1865년 설립.

불교타임스(미국 LA) 웹마스터 제월 법사의 통계에 의하면, 불교타임스 사이트 방문객들의 대부분은 명상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는 말씀을 듣고, 이 시리즈를 기획하게 됐다. 너무 전문적이거나 학술적 접근을 지양하고 semi scholastic(半학문적) 그리고 저널리스틱한 기조에서, 대중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명상이란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전개해 보고자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은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항상 사색의 끈을 놓지 않고 탐구해왔다. 인류가 지능이 제대로 작동되면서 인간 내면에 대한 응시를 통해서 부단한 명상을 해왔고 사색을 해 온 것이다. 고래로부터 인간은 마음 밖의 경계와 저 먼 우주의 세계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지만, 그것은 상상의 수준을 넘어설 수가 없었지만, 천문학과 물리학의 발달로 특히 망원경의 발명으로 별을 관찰하고 태양계의 조직을 간파해 내면서 인간은 우주로의 상상의 날개를 펴게 되었다.

무한한 우주공간속에서 인간이란 겨자 씨 보다도 더 작은 왜소한 작은 하나의 물건에 지나지 않지만, 그 마음은 무한한 우주공간을 넘어서 무한대의 그것처럼 도저히 정체불명의 불가사의한 존재로서 내 자신이 지니고 있지만, 알 수 없는 영역인 것이다. 인공우주선이 달에 착륙하고 인간이 만든 로봇 우주 탐사선이 화성에 착륙하는 등, 그야말로 인간지능의 과학은 고도의 발달을 가져오고 있다. 달에 가보고 화성에 가보고 혜성에 가보지만, 공기와 물만 없다뿐이지 지구와 별반 다름없는 원소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과학자들은 물의 존재와 생명체의 존재 여부에 더욱 관심이 집중되어 인류생명의 기원을 찾고자 초점이 맞춰져있다. 아무튼 현대과학의 발달 그 자체는 경이로울 뿐이다. 상상해 보라! 조그만 인공 탐사선이 화성까지 날아가서 착륙한다는 사실 그 자체를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공 탐사선 그 자체나 태양을 도는 행성들에 관심이 가게 되겠지만, 결국 따지고 보면 결국 이런 인공위성이나 탐사선은 인간의 두뇌에서 나온 것이다. 두뇌란 무엇인가. 두뇌는 마음과 의식이라는 무형의 존재에 의해서 작동되는 인체의 기관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아무리 외계를 향해서 무한히 나아가면서 우주공간 상의 미지의 영역을 탐험한다고 하지만, 결국은 인간 지능과 마음의 움직임에 의한 발로(發露)가 아니겠는가. 과학이 발달하고 인간지능이 무한하게 확장된다고 할지라도 출발점은 마음인 것이다. 그러므로 예로부터 선인(先人)들은 마음에 대해서 주목해 왔고, 탐색해 왔던 것이다. 마음의 역사는 원시시대부터 존재해 왔는데, 사람은 자기 아닌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고, 남녀백흑(男女白黑)을 인지하게 되고, 지나간 경험이나 무엇을 기억하고, 희로애락의 감정을 표출하게 되고, 무엇을 하려는 의지를 또는 하지 않으려는 무의지를 내게 되고, 상상에 의한 지능과 의식을 갖게 되는 등, 그야말로 이런 총체적인 복합체로서 표현되는 ‘마음’이란 정체는 참으로 불가사의하고 신비하기까지 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현대인지과학에서는 뇌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뇌란 마음 그 자체는 아니며 뇌의 인지작용을 통해서 마음에 연결된다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한다. 마음이 생각, 인지, 기억, 감정, 의지와 상상에 의한 지능과 의식을 포함한 총체적인 것이라면, 의식은 대상의 경험과 관계가 깊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관념론에서는 의식은 물질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며, 물질은 의식의 자식이라고 하지만, 여기서 섣불리 물질이 의식에서 독립 분리된 존재라고 단정하기 보다는 명상을 통해서 이런 결론을 증명해 내야 한다. 지능으로나 생각으로 ‘그럴 것이다.’ 라고 한다면 이것은 가정이나 추론에 불과한 것이다. 불교를 비롯한 모든 종교에서는 명상(묵상)을 통해서 이런 근원적인 문제를 실제적인 경험을 통해서 얻어 내야 하는 것이다. 불교의 명상은 이 포인트에서 시작된다. 불교의 명상은 고오타마 싯다르타에서 기원하지만, 고오타마 싯다르타 이전에도 명상이나 사색은 존재했었다. 하지만, 고오타마 싯다르타는 그 이전의 명상가들이 얻은 경지와는 다른 그야말로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을 실천적 명상수행을 통해서 얻었기 때문에 고타마 붓다(覺者)가 되었고, 부처의 깨달음은 완전하고 전지(全知)적인 것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고타마 붓다가 어떻게 무엇을 깨달았는가를 알아보고 우리도 그렇게 함으로써 고타마 붓다의 경지에 도달할 수가 있지 않겠는가. 앞으로 이런 전제하에서 차근차근 탐구해 가보자. 명상의 역사와 발달과정을 알 필요가 있고, 끝내는 한국불교에서 주된 수행법으로 하는 간화선에까지 이르는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불교명상에 대한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되고 고타마 붓다의 제자로서 자긍심을 갖고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불자로서의 진정한 모습을 갖게 되는 것이다.

지금 세계적으로 명상이 뜨게 되는 이유는 여러 종교나 컬트(cult 小 宗派)의 명상을 뇌 훈련이나 건강 또는 마음 치유적인 차원에서 관련지어 활용하다보니 현대인의 관심을 갖게 되는 것 같은데, 불교명상의 진정한 목적은 명상을 통해서 마음의 정체를 알아서 번뇌 망상(妄想)을 여의고 열반(정신적 해탈자유)을 성취하는 데에 그 참모습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불교명상의 창시자인 고오타마 싯다르타가 무상정등각을 이룬 이후부터 탐구해야하겠지만, 고타마 붓다 이전에 동서의 명상은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학구적 호기심도 참고가 되지 않을까 해서 천착해 보고자 한다. 고오타마 싯다르타도 명상을 처음부터 자신이 혼자 시작한 것은 아니다. 고대 인도에서 내려오는 전통과 실천적 방법을 접해서 명상수행을 시작했고, 수행하는 과정에서 발상의 전환과 어떤 계기에 의해서 독자적인 방법과 내적 경지의 획득으로 고타마 붓다로 등극하게 된 것이다. 고타마 붓다는 너무나 완전하고 큰 깨달음을 성취했기에 인도 명상 세계를 주도하고 많은 추종자들이 문하에서 승가공동체를 형성해서 어언 2천6백년의 역사를 지탱해 오고 있다.

마정 보검(磨汀 寶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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