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하는 자가 비단을 걸친 것은 개가 코끼리 가죽을 덮어 쓴 격”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에 보면, ‘무릇 모든 부처님들이 열반의 궁전에 장엄하게 자리하신 것은 억겁의 바다에서 욕심을 버리고 고행하신 때문이다.’라고 했다.

모든 중생들이 불타는 집의 문 안에서 윤회를 거듭하는 것은 무량한 세상에서 탐욕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로막는 자 없는 천당이건만 가서 이르는 자가 적은 까닭은 삼독과 번뇌로서 자기 집의 재물을 삼은 때문이며, 유혹하는 자 없는 지옥이건만 가서 들어서는 자가 많은 까닭은 네 마리의 뱀과 다섯 가지 욕심으로 망령되이 마음의 보물로 삼은 때문이다.

사람 가운데 그 어느 누가 산으로 돌아가 道를 닦고자 아니 하겠는가마는 그렇게 나아가지 않은 까닭은 애욕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깊은 산으로 들어가 마음을 닦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힘에 따라 착한 것을 행하는 일은 버리지 마라.

스스로 쾌락을 능히 버릴 수 있으면 성인과 같이 믿음과 공경을 받을 것이며, 행하기 어려운 일을 능히 행할 수 있으면 부처님처럼 존중 받을 것이다. 재물을 아끼고 탐하는 자는 바로 마귀의 권속이며, 자비를 베푸는 자는 바로 법왕(法王)의 자식이다. 높은 산의 험준한 바위는 지혜로운 사람이 거처하는 곳이고 푸른 소나무 깊은 계곡은 수행하는 자가 머무는 곳이니 배고프면 나무 열매를 먹어 주린 창자를 달래고 목마르면 흐르는 물을 마셔 갈증 나는 마음을 쉬게 할 것이다.

좋은 음식과 사랑으로 이 몸을 기를지라도 반드시 허물어질 것이며 부드러운 옷을 입어 지키고 보호하더라도 이 목숨은 필연코 마침이 있을 것이다. 메아리가 울리는 바위굴을 염불하는 불당으로 여기고 애처로이 우는 기러기 소리를 기쁜 마음의 벗으로 삼으라.

절하는 무릎이 어름같이 시리더라도 불기운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없어야 하며, 주린 창자가 마치 끊어지듯 하더라도 음식을 구하는 마음이 없어야 한다. 백년도 잠깐인데 어찌 배우지 않는다 말할 것이며 한 평생이 얼마나 되관데 수행하지 않고 노는 것만 할 것인가? 마음속에 애욕을 떨쳐 버린 이를 사문이라 하고 ,세속을 그리워하지 않는 것을 출가라 한다.

수행하는 자가 비단을 걸친 것은 개가 코끼리 가죽을 덮어 쓴 격이며, 도를 닦는 수행이 없더라도 산 속의 처소에 거주하는 자는 뭇 사람들이 그런 성인들로 인해서 하여금 기뻐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된다.

법장<문화부장 겸 편집국장>

저작권자 © 한국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