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몽골불교 전통, 달라이 라마

목로불교와 티베트 불교 전통은 유사하다.
몽골불교와 티베트 불교 전통은 유사하다.

몽골에 전해진 불교는 티베트 불교였다. 몽골은 지리적으로는 중국과 가깝지만 종교적으로는 티베트의 영향을 받았다. 물론 원나라 때는 통불교적인 전통이 지배했지만, 몽골제국이 패망하고 몽골이 북막(지금의 내몽골과 몽골)으로 물러간 뒤에는 티베트 불교가 본격적으로 수용되었다. 몽골제국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원나라는 1368년경 패망하고 북쪽으로 밀려나게 된다.

원나라의 강역(1294년경)
원나라의 강역(1294년경)

승승장구하던 원나라는 자국인 제일주의라는 이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몽골인(국족)→색목인→화북인(한인)→남송인(남인)의 계급 순으로 구성된 신분 제도를 실시했는데, 이때 한족은 3~4등급의 피지배층으로 분류되어 중앙의 장관이 되어서는 안 되었다. 10 가구의 한인 당 한 명의 몽골 병사의 시중을 들어야 했으며, 몽골족은 이들의 반란이 두려워서, 여러 사람이 만나거나 모이는 것을 금지시키고 10 가구에 오직 하나의 부엌칼만 가질 수 있게 하는 등 민족 차별 정책이 극심했다.

1348년 절강의 방국진(方國珍)이 해상에서 반란을 일으킨 것을 시작으로 전국에서 차례로 반란이 일어나, 1351년에는 가노에 의해 황하의 개수공사를 시키던 백련교도인 홍건당이 봉기했다. 1354년 대규모 토벌군을 이끈 토크토가 그가 강대한 군사력을 가지는 것을 두려워한 토곤 테무르에 의해 경질되어 살해당하자, 이것을 대칸의 권력회복과 맞바꾸어 군벌에게 의지하던 원나라의 군사력을 크게 약화시키게 되었다. 이때 홍건당에서 두각을 나타낸 주원장이 기타 반란자들을 차례로 쓰러뜨리고 화남을 통일해 1368년 난징에서 황제로 즉위하여 명나라를 건국하였다.

몽골 불자들이 사원에 와서 신앙 상담을 하고 있다.
몽골 불자들이 사원에 와서 신앙 상담을 하고 있다.
북원의 영역.
북원의 영역.

몽골은 중국 땅에서 더 이상 설 자리를 잃고 북쪽으로 밀려나서 북원(北元)을 세우게 된다. 

북원(北元, 1368년~1635년)은 명나라의 주원장에게 밀려 몽골 고원의 초원지대로 돌아간 이후의 원나라를 부르는 말이다. 1368년 원 순제(토곤 테무르)는 대도(大都)를 버리고 만리장성 북쪽의 상도(上都)로 패주했다. 1370년 토곤 테무르는 응창(應昌)에서 서거했다. 이로써 중국은 명나라에 의해 통일되었다. 토곤 테무르의 아들인 원 소종(元昭宗)은 외몽골로 들어갔고, 이후 코케 테무르가 죽고, 나하추가 명에 항복하자 북원의 세력은 더욱 쇠퇴하고, 1388년 브이르 노르의 동북에서 명군에게 대패하였으며, 소종의 뒤를 이은 동생 토구스 테무르도 투울 강 기슭에서 살해되었다.

이제 몽골 불교에 대해서 논해보자. 몽골불교는 티베트 불교의 겔룩파와 가규파의 맥을 잇고 있다. 몽골불교 역사는 원나라(1271〜1368) 때에 원 황제가 티베트 불교로 개종한데서 부터다. 원래 몽골 종교는 샤마니즘이었다. 지금도 이런 전통과 영향은 지대하다. 몽골제국인 원나라가 망하고나서는 몽골인들은 북막으로 밀려나면서 다시 샤머니즘으로 돌아가게 되며, 불교는 한동안 휴지기에 들어간다. 몽골 땅에서 불교가 다시 주목받게 된 것은 16〜17세기이다. 사실상 지금의 몽골불교 전통은 이 무렵부터 형성된 불교 전통이라고 할 것이다. 북쪽으로 밀려난 북원은 한동안 숨죽이며 잠잠하게 힘을 길러갔다. 원나라가 망한지 200여년이 다가오면서 몽골(북원)은 서서히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역사란 돌고 도는 것, 흥망성쇠가 반복하는 것이다. 1566년 북원은 티베트를 침략했다.

그 당시 티베트는 불교가 막강했으며 종교와 정치가 하나인 상황이었다. 북원의 장수와 함께 티베트 고승 세 명이 북원을 방문하게 되었고, 1576년에는 가규파의 고승을 초청했다.

인도 다람살라에서 온 티베트 라마와 함께.
인도 다람살라에서 온 티베트 라마와 함께.

1578년 알탄 칸은 제3대 달라이 라마를 초청했다. 알탄 칸은 북원의 왕인 다얀 칸의 손자이다. 다얀 카안(Dayan Qa'an, 達延汗 1464~1543년)은 북원의 카안이었다. 휘는 보르지긴 바투뭉케(Borǰigin Batumöngke, 孛兒只斤 巴圖蒙克)이다. 바투뭉케는 17살의 나이로 카안이 되어 37년 간 통치하였으며, 그가 만든 정치·사회적 구조는 20세기까지 지속되었다.

북원의 다얀 칸의 손자이며 튀메드부의 군주인 알탄 칸.
북원의 다얀 칸의 손자이며 튀메드부의 군주인 알탄 칸.

알탄 칸은 오르도스 지방에 분봉된 다얀 칸의 손자이다. 알탄 칸은 16세기 중기부터 빈번하게 중국에 침입하여 1550년에는 북경을 포위하는 경술의 변을 일으키기도 했다. 1551년 다라이손 구덴 칸은 알탄 칸에게 게게엔 칸이라는 직위를 주어 타협하였다. 결과적으로 다라이손 구덴 칸은 차하르로 근거지를 옮길 수밖에 없었으며, 대칸의 권력은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다. 알탄 칸은 1582년 죽었다. 그의 아들 셍게 뒤렝이 그의 뒤를 계승되었다. 알탄 칸의 정치적 생애는 이렇다고 할지라도 그의 종교적 위상은 대단했다. 알탄 칸은 티베트 불교를 몽골에 수용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쯤해서 티베트 불교의 달라이 라마와 겔룩파에 대해서 잠시 일별해야 몰골 불교 이해가 빨라진다. 달라이 라마 제도는 몽골의 알탄 칸이 부여한 칭호이다. 오늘날의 티베트 불교권에서 달라이 라마란 칭호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북원(몽골)의 알탄 칸에서 비롯된 티베트 불교 라마에게 부여되는 최고의 칭호이다.

제 3대 달라이 라마 소남 갓쵸의 초상
제 3대 달라이 라마 소남 갓쵸의 초상
몽골불교 간단사 함보라마(주지) 쵸이잠츠 스님과 청보스님(태고종 기획실장).
몽골불교 간단사 함보라마(주지) 쵸이잠츠 스님과 청보스님(태고종 기획실장).

알탄 칸은 티베트 불교의 수장인 소남 갓쵸(1543〜1588)를 초청했다. 소남 갓쵸는 1543년 티베트 라싸에서 탄생했다. 그는 제2대 달라이 라마의 환생으로 드레 퐁 사원에 머물고 있었다. 소남 갓쵸는 사실상 초대 달라이 라마이지만, 앞서의 선대인 스승과 스승의 스승을 제1대와 제2대로 추존하였기 때문에 제3대 달라이 라마가 되었다.

 

보검<세계불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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