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이 다하도록 모래로 밥을 짓는 꼴

채근담에 이런 말이 있다. 관직이나 공적인 지위에 있는 자는 두 마디 말이 있으니, 매사가 공정하면 밝음이 생기고, 오로지 청렴하면 위엄이 생긴다 함이 그것이다. 집 안에 있는 사람 또한 두 마디 말이 있으니, 오직 너그러우면 불평이 없고 일상이 검소하면 모자람이 없다 함이 그것 이다.

도불원인인원도(道不遠人人遠道) 산비이속속리산(山非離俗俗離山)

도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는데 사람은 도를 멀리 하려하고 산은 세속을 떠나지 않았것만, 세속이 산을 떠나려 한다는 고운 최치원 선생이 고려 헌강왕 12년(서기886년) 묘덕암에 와서 속리산의 빼어난 정취를 보고 남긴 말이다.

도불원인은 중용(中庸)에 나오는 말로 사람을 떠나 도를 말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풍전등화와 같은 태고종단의 위기는 얽힐 대로 얽힌 실타래처럼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총체적 난맥상을 여지없이 들어내고 있다.

불교집안이 무능과 협잡이 판을 치는 형국이다. 승가 공동체가 나아갈 방향과 비전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양심과 염치도 없고 위계에 의한 질서도 없이 안하무인으로 사자충과 다름없는 기생충과 같은 속물근성을 버리지 못한 자들의 놀이터로 변질되어 버린 현실은 아마도 부처님이 오신다고 해도 해결 할 수 없는 형국이다.

법정스님은 입적 전날 밤 내 것이라고 할 것이 조금 이라도 남아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에 사용해 달라, 이제 시간과 공간을 버려야 겠다는 말을 남겼다. 스님은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소유하지 않는 것이라 했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富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라 했다.

조주선사를 찾아간 한 선사가 말하길 “한 물건도 가지고 오지 않을 때는 어찌 합니까”라고 하니 조주선사 께서, ‘방하착’ 하라고 말했다.

되묻기를 “이미 한물건도 가져오지 않았는데 또 무엇을 내려놓으라 하십니까”라고 하자 조주선사는 “그래 내려놓으라니까” 라고 말했으나 그래도 깨닫지 못하자 “그럼 내려놓지(放下)말고 다시 지고가라”고 했다고 한다.

세속에서 채우지 못한 탐욕심을 출세간에서 챙기려든다면 겁이 다하도록 모래로 밥을 짓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법장 <총무원 문화부장 겸 편집국장>

저작권자 © 한국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