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 금강스님 수행 포교결실

달마산 미황사 대웅보전, 주지 금강스님은 조석예불이 끝나면 참가대중과 함께 30분 정도라도 참선을 한다.
달마산 미황사 대웅보전, 주지 금강스님은 조석예불이 끝나면 참가대중과 함께 30분 정도라도 참선을 한다.

삼천리금수강산 대한민국 어디를 가더라도 절이 있다. 명산대천에는 필히 절이 자리 잡고 있음은 우리나라 풍경이다. 산 좋고 물 좋은 대한민국! 달마산 미황사는 남도의 끝자락인 해남군 송지면에 위치하고 있다. 달마산은 병풍을 둘러놓은 것처럼 경치가 빼어나서 옛 부터 남도 금강산이라고 불렀다. 실제로 금강리라는 마을도 있는데,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다. 아마도 옛날 뱃길로 다닐 때는 금강리가 포구였을 것이고, 달마산 미황사는 바로 이 금강리 포구를 관문으로 이용했으리라. 미황사는 신라 경덕왕 8년(749)에 창건되었으니, 1270여년의 역사가 겹겹이 쌓인 묵은 절이다.

미황사 사적비(1692년)에 의하면, 서역 우전국왕(곤륜산)의 배려로 경전과 불상이 가득한 배가 땅 끝에 도착, 의조화상과 향도(香徒) 100여명이 그 배를 맞이하러 가보니, 배안에는 검은 소가 있었고 소가 경전을 등에 얹고 가다가 멈춰서 일어나지 못한 지점에 미황사를 세웠다고 한다. 미황사의 미(美) 자는 소의 울음소리의 아름다울 미에서 따오고, 황(黃) 자는 배안의 금인(佛像)의 누런빛에서 황자를 따서 미황사라 명명하였다고 한다.

헝가리에서 온 청안스님이 외국인들과 함께 템플스테이를 하기 위해 도착하고 있다.
헝가리에서 온 청안스님이 외국인들과 함께 템플스테이를 하기 위해 도착하고 있다.

미황사 범종각에서 바라본 전경이다.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느낌이다. 금강스님은 지운 현공스님과 함께 1989년에 이곳에 와서 명부전, 삼성각, 종각, 만하당, 달마전, 자하루, 백운당, 청운당, 감로당 그리고 부도암과 서래암 등을 복원하고 세심당과 염화실, 향적전을 증축했다. 미황사는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12암자를 거느린 대찰의 모습이었다고 한다.

미황사 대웅보전은 보물 947호며, 삼존불은 전남유형문화재 323호이다. 응진당은 보물 1183호이며 16나한상은 전남 유형문화재 325호이다. 부도전은 21기의 부도와 5기 탑이 있다. 미황사에는 대흥사의 12종사의 한분이었던 벽하 설봉스님과 정련, 정암, 송파, 낭암스님 등 당대의 화엄종장들이 주석했던 명찰이다. 괘불은 보물 1342호이다. 높이가 12m 폭이 5m가 된다. 미황사 괘불재는 매년 10월 넷째 주 토요일 오후 1시, 괘불을 내걸고 큰 행사를 연다.

달마산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면서 달마대사 고향 인도 칸치푸람을 떠올렸다.
달마산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면서 달마대사 고향 인도 칸치푸람을 떠올렸다.
달마산 정상에 자리 잡고 있는 도솔암.
달마산 정상에 자리 잡고 있는 도솔암.

 

금강 주지스님을 모시고 신도님들과 기념촬영.
금강 주지스님을 모시고 신도님들과 기념촬영.

 

도솔암 주련에 ‘조광장엄 동해출(朝光莊嚴 東海出) 야경적정해중월(夜景寂靜 海中月)’이 마음에 와 닿았다. 아침 해가 장엄하게 동해에서 솟고, 밤 경치가 고요한 가운데 바다 한가운데서 달이 떠 있구나!‘라는 정토선경(淨土仙境)의 모습이 상상된다. 절학무위 한도인(絶學無爲 閑道人)의 격외(格外)의 경계가 아니리요.

진홍빛 동백꽃이 봄을 알리고 있다.
진홍빛 동백꽃이 봄을 알리고 있다.
땅 끝 전망대에서 포즈를 취하다. 뒤로는 용처럼 생겼다 해서 어룡도라고 부르는 섬이 보인다.
땅 끝 전망대에서 포즈를 취하다. 뒤로는 용처럼 생겼다 해서 어룡도라고 부르는 섬이 보인다.

남도 끝자락 달마산 미황사와 땅 끝은 보고 또 봐도 싫증나지 않는 진경이다. 불국정토가 따로 있으랴! 땅 끝 전망대서 바라보는 해중선경은 용궁 같은 세계이다.

 

땅 끝= 원응<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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