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한국불교신문 발행 700호 기념시리즈-③

한국불교신문 제9호(1989년 1월11일자)
한국불교신문 제9호(1989년 1월11일자)
조계종 서의원 총무원장과 이운제 태고종 총무원장은 ‘화합의 공존체제 이루자고“ 회동한 내용
조계종 서의원 총무원장과 이운제 태고종 총무원장은 ‘화합의 공존체제 이루자고“ 회동한 내용

전호에서 운제스님이 신임 총무원장에 만장일치로 선출되었음을 잠깐 언급한 바 있다. 총무원장 운제스님, 부원장에 우백암스님, 사정원장 박지암 스님, 사정부원장 홍인곡, 종승위원장 이성환스님이 취임하고, 사무총장 이규범(운산), 종무부장 윤자월, 교무부장 박운곡, 재무부장 이지성스님으로 진용을 갖췄다. 제57회 종회에서는 신임 총무원장에 운제스님을 선출하고, 종단혁신의 새로운 계기로 삼자고 했다. 한국불교신문 제9호(1989년 1월11일자)에 따르면 덕암 종정예하의 신년법어 “동체대비로 불국토 건설”이란 법어에서 이타정신으로 민족 대화합을 이루고자 역설하고 있다. 제4.5대 총무원장을 역임한 지암 박영지 대종사가 원적에 들었다는 보도다. 지암 박영지스님은 1912년 충북 진천에서 출생, 12살 때인 1924년 속리산 법주사에서 박면우 스님을 은사로 득도 수계한 이래, 법주사 강원에서 일대시교를 마치고 혜화전문 불교과를 졸업하고 불법홍포에 매진하다가 불교법난이 발생하자 끝까지 태고종 편에 서서 충북교구 종무원장 제4.5대 총무원장을 역임했다. 법랍 65세 세수 77세로 제천 원각사에서 원적에 들었다.

새로 취임한 운제 총무원장스님은 태고종은 이념종단으로서 계율문제에 대한 정립을 주장하고 있다. 둘째는 의식과 법복문제, 종전(宗典) 편찬 문제를 거론하고 있다. 아직도 우리 종단에서는 계율관이 확실하게 정립이 되어 있지 않다. 구족계를 통과의례로서 기준을 삼는다면 태고종승니는 20세 이상이 되면 누구나 구족계를 수지해야 한다. 종단 3원장 가운데 구족계를 아직도 받지 않고 슬그머니 정당화하려고 한다면 이것은 아니라고 본다. 학자출신 총무원장인 운제스님도 이 부분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또한 의식(儀式)과 법복 문제도 어떤 체계가 필요함을 인식하고 이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이다. 7면에서는 조계종 서의원 총무원장과 이운제 태고종 총무원장은 ‘화합의 공존체제 이루자고“ 회동한 내용을 보도하고 있다.

제10호(1989년 2월 1일자)는 총무원장 이.취임식 기사를 톱으로 뽑고 있다. 한국불교상조회 가 설립되었음을 보도하고 있으며, 3면에는 지암 박영지 대종사의 종단장 엄수 보도가 실렸다. 제11호(1989년 2월 15일자) 2면에는 ‘지방종무원에 종무행정 대폭이관’을 보도하고 있으며, 3면에는 보문학원인 보문 중.고등학교를 태고종 종립으로 귀속한다는 보도가 실리고 있다. 조옥환 사장이 15억 원을 출연하고, 종단 측에서 4명, 이사장 측 3명으로 이사진을 구성하고 학교장은 태고종 승적을 취득한 자를 이사회의 결의로 이사장이 임명한다는 합의가 이루어졌음을 보도하고 있다. 이후 보문학원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주목해 볼 문제이다. 삼각산 태고사를 총무원 직영체제로 운영한다는 기사가 실리고 있다. 4면에는 총무원장 운제스님이 《종조론》을 간행했다는 보도가 실렸다. 제12호(1989년 3월1일자) 1면 중간 톱에는 춘천 석왕사에서 춘천지역에서는 처음으로 불교유치원을 개원했다는 보도이다. 3면에는 종법개정공청회가 실리고 있다. 제14호(89년 4월 1일자) 1명은 제58회 임시중앙종회에서 재단법인 설립문제를 중점 토의한다는 톱뉴스이다. 3면에는 수륙방생대법회 봉행 기사가 톱으로 실렸다.

제16호(89년 5월 1일자) 2면 사설 ‘태고종 승려는 좀 더 떳떳해야’한다가 돋보인다. 내용가운데 “대처승은 보다 떳떳한 자세와 몸짓으로 교화활동을 전개해 할 것이며... 승복을 입은 채로도 부부가 손을 잡고 광화문 네거리를 활보할 수 있어야 하고... 취처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등, 그야말로 태고종적 현실에서 적나라하게 이 문제를 논하고 있다.

제20호(89년 7월1일자) 3면 에는 태고신협이 재무부로부터 특별 법인으로 정식 인가받았다는 소식과 동방불교대 학장으로 이재복스님이 취임한다는 기사가 실리고 있다. 제21호(89년 7월18일자) 3면에는 승려권속을 위한 교양대학 개설 기사를 싣고 있다. 제22호(89년 8월1일자) 1면에서 계율 개정심의안을 확정했다는 보도이다. 그만큼 종단에서는 계율문제에 대하여 고민이 많았음을 시사해 주는 기사이다. 현재도 이 문제는 핫 이슈다. 제23호(89년 8월 15일자)에서는 1면 톱으로 종도연수교육을 실시한다는 대서특필이다. 3면에는 해종 행위자 징계방침 기사와 이교도들의 사찰피해 기사를 싣고 있다.

제24호(89년 9월 1일자) 3면에서는 종단업무 전산화를 보도하고 있다. 제25호(89년 10월 1일자)는 3면 ‘국제불교문화원’설립 기사를 싣고 있다. 제26호(89년 10월 15일자)는 1면 톱기사로 ‘불교관계법개정서둘러’를 다루고 있다. 제27호(89년 11월 1일자) 1면 톱기사는 ‘재일동포모국사찰 순례‘기사이다.

정리=원응<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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