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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63(2019)년 04월 20일 토요일
여래칼럼-②: 히말라야 영봉처럼
여래칼럼-②: 히말라야 영봉처럼
  • 한국불교신문
  • 승인 2019.02.08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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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스님의 '승려취처론(僧侶娶妻論)'을 생각하면서

우리 불교인들은 히말라야를 동경하면서 수행하고 포교한다. 많은 사람들이 가보지도 않았으면서도 마음속으로 뭔가 정신적 고향으로 삼는다. 이 땅에 불교가 수용되면서 배운 것이 설산고행(雪山苦行)’이란 그 한마디 때문이다. 부처님께서 설산에서 ’6년 고행 했다는 가르침에 우리 불도들은 이 말에 휠(feel)이 착()해서 평생토록 붙어 다니는 화두가 된 것이다. 석존께서 히말라야 설산에서 고행을 하셨던지 아니면 보드가야 전정각산에서 고행하셨던지 무슨 상관이랴! ()을 하는데 무슨 장소가 그리 중요하리요. 그렇지만 우리의 교조이신 석존께서 인연을 맺으신 땅이 그곳이기에 그곳은 성지(聖地)가 된 것이다. 마음의 정토요 마음의 성지라고 한다면 이 세상 어디인들 성지가 아니겠는가. 삼천리금수강산이 불국토요 인연처가 아니리요. 각자 터 잡은 도량에서 성지처럼 가꾸면서 도를 닦고 포교전법을 한다면 그곳이 바로 정토라고 믿으면서 석존의 가르침을 펴는데 정진했으면 한다.

그런데 요즘은 정말 신심이 떨어진다. 종단의 정체성을 생각하면서 종단을 좀 업그레이드 시킬 연구는 안하고 그저 찍는 모습만 보이니 정말 피로감이 쌓인다. 왜 우리 종단은 솔직히 대처종단이라는 프레임을 극복하지 못하고 기 죽어 살아가는지. 이런 근본문제를 좀 담론하면서 극복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종도들에게 자신감을 불어 넣어주는 정체성 연구를 하는 분들이 없는지 안타깝다. 그저 따지고 큰 소리치고 잘난 척하고 전화공세나 하고, 감사니 견제니 하는 용어에만 능숙하지, 종단의 정체성에 대한 담론은 없다. 정말 우리 종회는 할 일이 많다.

불교정화니 불교법난이니 하면서, 불교법난이라면 이에 대한 이론적 근거와 체계를 세워서 떳떳하게 행세해야 하는데 대외적으로는 말도 못하면서 집안에서만 떠들고 야단이다.

타종교에서는 독신에서 비 독신으로 개혁이 이루어지고, 체제가 바뀌는 전통을 세워서 전도만 잘하고 교세만 강해지는데, 우리 종단은 옛 프레임에 갇혀서 전연 개혁이나 변화를 바라지도 않고 기복과 재 의식에만 매달려 있으니, 참으로 뭔가 탈출구를 찾았으면 한다. 당장 사찰운영에는 영합하지 않을 수 없다고는 하지만, 차차로 이런 전통은 사라져 갈 수밖에 없다. 과감하게 생활불교 체제로 종단체제를 바꿔나가야 하는데, 무슨 그리 대단한 권력이라고 큰소리치면서 문자 폭탄에 전화에 정말 종도들은 피로감이 쌓인다.

만해 한용운 스님은 100년 전에 승려취처론(僧侶娶妻論)을 주장하고 조선총독부에 건의했다. 이런 만해스님의 취처론을 연구하고 받들어 왜 그랬는지(?) 연구하고 담론하고 토론해서 우리의 정체성을 대변하는데 이론무장을 해야 하는데, 도대체 대의기관에서는 무엇을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정말 논객(論客)이 없음을 한탄한다. 시위선동 꾼은 좀 있는 것 같은데, 우리 종단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논객이 그립다. 나는 능력의 한계가 있을 뿐이고, 종회의원 가운데 그런 분 안 계시는지요? 응답해 주세요. 피로감 쌓이는 속물적인 문자 폭탄 전화 말고요.

비슬산 여래선방에서 일도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