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9-03-19 20:09 (화)
   |   
불기 2563(2019)년 03월 20일 수요일
중국불교연수기-⓵ 자각스님(총무원 사서국장)
중국불교연수기-⓵ 자각스님(총무원 사서국장)
  • 한국불교신문
  • 승인 2018.12.09 20: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천녕선사 전경, 천녕보탑은 목탑으로서 건축미가 뛰어나고 매우 아름답다.
천녕선사에서 제11차 한국 전통문화 중국소개 프로그램에 참가한 각 종단 참가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중국불교협회의 안내를 받고 있다. 좌에서 네 번째가 자각스님. 세 번째는 청보스님.
많은 방문객들이 끊임없이 천녕선사를 찾고 있다.

나는 지난 1123일부터 30일까지 중국 장쑤성 창저우시 천녕선사에서 실시한 한국 전통문화소개 프로젝트와 성지순례를 목적으로 중국불교연수를 다녀왔다. 이번 중국행은 한국불교종단협의회와 중국불교협회에서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에서 후원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총무원장스님을 비롯한 부장스님들의 추천과 배려로 총무원 사서로서의 바쁜 일정임에도 중국불교연수를 다녀왔는데 너무나 유익한 경험이었다. 11231030분 인천국제공항 제 1터미널 3층 출국장 아시아니 항공 C 카운터에 집결한 우리 일행은 단장인 종단협 사무총장 지민스님의 지시를 받으면서 출국 수속을 밟았다. 인천에서 남경까지는 2시간 20분이 소요됐다. 남경 국제공항에 도착한 일행은 약 2시간 30분이 걸리는 상주로 이동했다. 상주에 있는 천녕선사(天寧禪寺)에 도착함과 동시에 공식 일정이 시작됐다.

인천-남경-창주(상주).

천녕선사는 당대(唐代)에 창건되었고, 산문(山门), 금강전(金刚殿), 대웅보전(大雄宝殿), 약사전 (药师殿) 등을 중심구조로 하고 있다. 이 중 중심건축물인 대웅전은 송원(宋元)시대의 유물인 목조 건축물로 건물의 높이는 약 40m에 달했다. 무엇보다도 천녕선사는 최근에 세운 불탑이 압권이었다. 탑의 정상인 지붕은 금과 신주로 만들었으며 주변은 옥으로 장식했다. 불탑 건립에는 50억 원이 소요됐다고 하니 정말 어마어마한 금액이었고, 탑의 정상 가까이에 있는 제일 위층에는 33톤의 범종이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창주 시장은 천녕선사의 발전은 바로 창주시의 발전이라고 할 정도로 불심이 강한 시장님이었다. 문화혁명(19661976) 기간에는 불교가 중국에서 박해를 받았지만, 지금은 엄청난 인구가 불교를 신봉하고 있다는 천녕선사 지객스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첫날밤을 보내게 됐다.

천녕선사는 당나라 때는 광복사(光福寺)였고, 개산조사는 금릉(남경) 우두산에 주석했던 우두 볍융선사였다. 북송 때(1111) 지금의 이름으로 개명해서 지금에 이르고 있고, 1983년부터 전국중점불교사원으로 지정됐다.

우두 법융(牛頭法融 594658) 선사는 중국 선종(禪宗)의 하나인 우두선(牛頭禪)의 종조(宗祖)이다. 법융선사는 19세에 이미 경사(經史)에 정통했으나, 대반야경(大般若經)을 읽고 진공(眞空)의 이치를 깨닫자, 그때까지 배운 유교와 도교의 학문에 회의를 느끼고 모산(茅山)의 삼론(三論) 경법사(炅法師)를 찾아 출가한 뒤 20년간을 숲속에 묵좌(默坐)하여 깨우침을 얻었다고 한다. 그 후 우두산(牛頭山)의 유서사(幽棲寺)에 머물면서 칠장(七藏)의 경서(經書)를 풀어 8년 만에 그 초략(抄略)을 지었는데, 이어서 우두라는 호칭이 붙었다고 하는데, 천녕선사는 법융선사를 개산조사로 하고 있다.

우두(법융) 스님이 젊은 시절에 혼자서 정진(精進)을 하고 있노라면, 온갖 새들이 꽃을 물어 와서 공부하는 자리에는 항상 꽃이 수북이 쌓여 있었고, 공양(供養) 때에는 천녀(天女)들이 공양을 지어 올렸다고 하며, 하루는 우두 스님이 4조 도신(道信) 선사를 찾아뵙고 그간에 공부했던 것을 말씀드렸다. 도신 선사께서 그것을 들으시고는,

 

"네가 그러한 삿된 소견(所見)을 가지고 어찌 불법(佛法)을 알았다고 할 수 있느냐?"

하시며 직하(直下)에 방망이를 내리셨다는 고사가 전해지고 있다. 그 후 오랜 세월이 지나서 어느 스님이 남전(南泉) 선사께 여쭈기를,

"우두 스님에게 새들이 꽃을 물어다 바치고 천녀가 공양을 지어 올리는 것은 어떻습니까?"

하니, 남전 선사께서는

"걸음걸음이 부처님의 계단을 올라간다."

라고 답하셨다고 한다.

"도신 선사로부터 방망이를 맞은 후, 새들이 꽃을 물어오지 않고 천녀들도 공양을 올리지 아니한 때는 어떻습니까?"

"설령 온갖 새들과 천녀가 오지 않은 때라도 나의 일선(一線)의 도()에도 미치지 못하느니라."

이와 같이 부처님 진리에도 깊고 얕은 세계가 있다. 그러니 공부를 지어가다가 반짝 나타나는 하찮은 경계들을 가지고 살림을 삼아 자칫 중도(中途)에 머무르게 되는 오류를 범하지 말고, 부처님의 정안(正眼)을 밝히는 데 근간(根幹)을 두고서 철저히 수행해야 할 것이다.”라는 일화가 경내에 소개되고 있어서 시간 나는 대로 메모해서 가져왔다.

 

중국 창주 천녕선사=자각<사서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