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채 빚 얻어서 종단 운영했던 태고종 중흥조

간경독서하시는 덕암 대종사님의 생전 모습
곳곳에서 법문하시는 덕암 대종사님의 사자후

덕암 대종사님의 열반 제15주기를 맞아서 언뜻 떠오르는 것은 덕암 대종사님께서는 태고종을 당신의 몸으로 생각하신 분이었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서 종단이 싸움만하는 종단으로 비춰지는 안타까움을 생각할 때 참으로 가슴 아프다. 태고종이라는 종명으로 간판을 달고 정동 총무원시절은 참으로 종단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덕암 대종사님은 총무원장으로서 종단 살림을 꾸려가기 위하여 동분서주했다. 지금 종도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총무원 실상이었다. 보증금을 걸고 월세를 내면서 사무실을 운영하던 시절이었다. 사무실 운영비와 직원 월급을 주려고 사채 빚을 얻어서 해결하고는 다음 달 세를 내기 위해서 또 고민해야 했던 시절이다. 이런 고초를 겪으면서도 태고종 간판을 지켰던 덕암 대종사님의 태고종을 지키고 유지하려는 대승보살행은 필설로써 다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이다.

태고종을 창종했던 대륜 노사나, 대륜 노사의 문하에서 실무를 집행했던 덕암 노사나 이남채 총무원장스님 등은 그야말로 태고종과 한 몸 한 뜻으로 멸사봉공했던 태고종의 중흥조였다. 이런 종단을 이 지경으로 만든 당사자들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종단재산을 만들고 이루었던 노사들의 숭고한 뜻을 저버리고 친척을 끌어들여서 종단을 파국으로 이끌고 간 그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종단을 운영했으며, 지금도 잘했다고 항변하고 있음을 볼 때, 정말 할 말이 없다. 종회는 왜 그렇게도 억지를 부리면서 집행부와 대립각을 세우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1970년 태고종을 창종하고 나서 종단의 기초를 다지면서 종단을 반석위에 올려놓기 위하여 노심초사하던 대륜 종정예하와 덕암 총무원장스님은 그야말로 몸이 열 개라고 부족할 입장이었다. 종단의 모양새를 갖추고 열린 제2회 중앙종회에서 박대륜 종정은 교시를 통해서, 태고종의 종통과 법통을 천명하셨고, 안흥덕(덕암) 총무원장스님은 총무원장 연술을 통해서 태고종의 정체성과 방향과 진로를 제시했다.

“존경하는 의원 여러분!

우리 종도는 보살행도(菩薩(行道)의 실천을 통하여 격동하는 국내외의 정세를 직시하고 개인의 행복과 세계평화의 환경 조성에 노력하고 대승불교운동을 통한 국제친선을 도모하여 인간의 연대성을 깊이 인식하고 청소년의 종교적 정서 함양에 적극 추진해야 할 무거운 직책이 우리의 양 어깨에 걸머져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종단에서는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우리의 사명과 직책을 수행하기 위하여 먼저 종단의 기능을 현대사회에 달성할 수 있도록 포교.교육.사원관리,의식(儀式).의제(衣制) 등 모든 면을 재검토하여 개선책을 마련하고자 하며...“

라고 연술을 했다. 50여 년 전의 총무원장 연술이지만, 너무나 태고종의 정체성과 방향과 진로를 잘 표현한 명 연술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그대로 유용한 명 연술이라고 해야 하겠다. 간단히 압축해서 살펴본다면, 태고종은 대승불교운동을 하는 승가단체라고 정의하고 그 실천 방안으로서 포교.교육.사원관리. 의식, 의제에 대하여 재검토해서 시대의 변화와 사회실정에 맞도록 개선책을 마련한다는 취지의 연술이다.

이런 종단의 정체성과 이념과 실천방향에 대한 진로를 제시했으면, 종회에서는 논의하고 연구하고 어떤 결정을 해서 집행부가 실천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것이 태고종의 종회에 대한 역할과 기능을 천명한 것이다.

지금의 종회를 한번 냉정하게 보자. 집행부를 견제하고 재정출납을 감사하고 하는 기본적인 기능과 역할은 종회의 기본입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능과 역할도 절차와 수위가 있는데, 지금의 중앙종회는 도가 너무 지나치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동안 다 알려져 있는 사항들이기에 여기서 구구하게 논할 문제는 아니지만, 다만 강조하고 싶은 것은 덕암 대종사님의 열반 제 15주기를 맞으면서, 덕암 노사의 종단에 대한 업적을 생각해 보고, 창종 당시 중앙종회에서 행했던 ‘총무원장 연술’을 반추하면서 새롭게 각오를 다지자는 것이다.

덕암 대종사의 종단에 대한 이런 헌신과 보살행이 있었기에 오늘날 ‘태고종’이라는 간판아래 ‘대승불교승가공동체(태고종)’를 운영하면서 전법도생의 사명과 역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덕암 대종사의 열반 제15주기에 우리는 다시 태고종을 생각하는 종도들이 되어야 태고종도로서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원응<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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