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초종정예하 수계 산림 법어 인터뷰

태고총림방장(태고종 종정) 혜초 대종사께서 합동득도 수계식이 있기 전, 종정원 칠전선원 달마선실에서 편백운 총무원장, 도안 충북 종무원장, 혜창 경남종무원장 스님과 기념촬영.
태고총림방장(태고종 종정) 혜초 대종사께서 합동득도 수계식이 있기 전, 종정원 칠전선원 달마선실에서 편백운 총무원장, 도안 충북 종무원장, 혜창 경남종무원장 스님과 기념촬영.
합동득도 수계식에 앞서서 원응 주필에게 ‘태전선사 상상시’를 설명하고 있다.
합동득도 수계식에 앞서서 원응 주필에게 ‘태전선사 상상시’를 설명하고 있다.
혜초 종정(태고총림 방장)예하께서 직접 쓰신 ‘태전선사 상상시’
혜초 종정(태고총림 방장)예하께서 직접 쓰신 ‘태전선사 상상시’

혜초 종정예하께서는 종정원인 태고총림 조계산 선암사 칠전 달마선원 방장실에서 편백운 총무원장 스님 일행을 반갑게 맞이했다. 지난 초여름에 뵙고 3개월 만에 친견하는 자리였다. 종정예하께서는 지난겨울 동안거 때, 빙판에서 미끄러져 발목 부상을 입고, 지금도 완치되지 않아서 거동이 불편하셨다. 종단 소식이 궁금하신지, 일행이 앉자마자 총무원장에게 최근 종단 소식을 묻는다. 총무원장스님이 간략하게 “종단이 이제 안정되어서,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라고 하자, 종정예하께서는 “무엇보다도 종도화합이 우선”이라고 경책하셨다. 시자스님의 전언에 의하면 간간히 총무원장이 쫓겨났다느니, 총무원청사가 점령당했다는 괴전화가 걸려 와서 종정예하께서 당황하시고, 총무원에 확인 전화까지 했었다고 한다. 게다가 종정예하의 거처 이동 등등, 이상한 소문이 들리는 등, 심기가 불편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종정예하께서는 총무원장스님에게 자초지종을 알고 싶으신지 가까이 부르신다. 총무원장스님은 웃으면서, 절대 그런 일은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자신감 있게 말하면서 종정예하께서 총무원장 취임 기념으로 써주신 ‘응세무외(應世無畏) 파사현정(破邪顯正)’ 편액을 총무원장실에 걸어놓고 항상 명심하고 있다고 하자, 종정예하께서는 그제 서야 안심을 하신 듯, 총무원장스님의 손을 꽉 잡았다. 이런저런 궁금하신 것을 묻고 그동안의 생각도 말씀하신 다음, 필자(원응 주필)를 부른다.

시자를 시켜 손수 써놓으신 태전선사 상상시를 가져오게 해서 총무원장스님과 필자에게 보여주신다. 아마도 합동득도 수계식을 의식하여 이 글귀를 써 놓은듯해서 설명을 여쭈었다.

종정예하께서 말씀하신 것을 정리하여 우선 이 시의 설명부터 보자.

 

十年不下祝融峰(십년불하축륭봉)

觀色觀空印色空(관색관공인색공)

如何曺溪一適水(여하조계일적수)

肯墮紅蓮一葉中(긍타홍련일엽중)

찌 조계(曺溪)의 한방울 물로 

십년 동안 축융산 아래 내려간 일 없어

색(色)을 공(空)으로 관(觀)해서 색이 아주 공해졌네

어찌 조계(曺溪)의 한방울 물로

홍련 한 잎을 적실 것인가.

 

참으로 음미하면 할수록 진 맛이 나는 선시다. 혜초 종정예하께서는 쓰진 않았지만, 태전선사의 이어진 다음 시를 설명해 주셨다.

 

虛空刀杖雨我身(허공도장우아신)

寸寸節節割我體(촌촌절절할아체)

我若不渡生死海(아야불도생사해)

終不離此菩提坐(종불이차보리좌)

 

허공 가득 창과 칼 비 내리듯 퍼부어

이 몸이 조각조각 부서져 먼지돼도

나고 죽는 생사 바다 건너지 못한다면

끝내 보리좌를 떠나지 않으리.

 

이 시는 중국 당나라 때 태전선사(太顚禪師)의 유명한 시이다.

혜초 방장예하께서는 이 시를 설명해주는 것은 합동득도 수계식에 즈음해서 이 태전선사 상상시로써 ‘계율’에 대한 동아시아 선사들의 관점을 은연중 피력하신 듯하다.

 

<해설>

  이런 시가 나오게 된 것은 당나라 중기 남양 등주 땅에 태어나 뛰어난 문장으로 후세에 당, 송 팔대가의 한사람으로 추앙받은 한퇴지(한유)에 기인한다. 그는 처음엔 불교를 매우 배척하여 자사 벼슬에 올라 불법을 비방하는 ‘불골표(佛骨表)’란 글을 자주 상소하다가 왕의 미움을 받아 장안에서 8천리나 떨어진 변방의 조주(潮州) 자사로 좌천되었다. 그때 조주 땅에는 태전선사라는 고승이 축융봉에서 수년간 수도에만 전념, 생불(生佛)로 추앙받고 있었다.  한퇴지는 문득 태전선사를 시험해서 불교를 다시 한 번 깎아 내리고자, 고을에서 가장 이름난 기생 홍련에게 계교를 일러 주었다. 만약 백일 안에 태전선사를 파계시키면 후한 상을 내리겠거니와 실패하는 날에는 죽음을 각오할 것을 명하였다. 홍련은 자신의 미모나 수완으로 봐서도 자신만만하였다.

  다음날 몸매를 더욱 아름답게 꾸미고 험한 산길을 올라 해질녘에야 스님의 암자에 도착하였다. 태전선사를 찾아 뵙고 홍련은 "오래 전부터 큰스님의 훌륭한 덕을 흠모해 오던 차 이번에 큰스님 시중도 들면서 백일기도를 올리고 싶어 먼 길을 마다 않고 왔습니다. 자비로 거두어 주십시오. 만일 거절하신다면 소녀는 이 자리에서 목숨을 끊고 말겠습니다.” 라고 하면서 허락을 받았다. 이렇게 하여 깊은 산골 외딴 암자에서 머물게 된 홍련은 일이 성사된 것처럼 마음속으로 기뻐하였다. 다음날부터 건성으로 기도를 하고 태전선사의 시중을 들면서 기회만을 엿보고 있었지만 한 달이 넘어가도 선사는 좌선에만 전념한 채 홍련을 거들 떠 보지도 않았다. 일이 이쯤 되자 마음이 조급해진 홍련은 온갖 수단 방법을 동원하여 선사를 무너뜨리려 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약속한 날은 하루하루 다가와서 마침내 약속한 백일이 내일로 다가왔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홍련은 이미 태전선사의 고매한 인품에 감동되어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경망 스러운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지만 자사 한퇴지 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으니 화를 당할 일이 눈앞에 아른거려 약속한 백일이 되는 날 아침, 태전선사 앞에 나아가 눈물을 흘리며 “큰스님 어리석은 소녀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조주자사 한대감의 명이 스님을 파계시키고 오라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저는 그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대감님과의 약속한 기일이 백일, 바로 오늘 저는 내려가면 큰 벌을 받아야 합니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섧게 울기 시작했다.  흐느껴 우는 홍련을 자애로운 미소를 띄우며 지켜보시더니 “너무 염려 말고 이리 가까이 오너라. 조주자사 한대감에게 벌을 받지 않게 해줄 것이다.” 하고는 붓에 먹을 묻혀 치맛자락을 펴게 하여 단숨에 글을 써 내려가니  홍련의 치맛자락에 상상시를 썼다.

  속치마에 적힌 시를 본 한퇴지는 그 후 태전선사를 참방하여 시험해보고자 말을 걸었다. 선사로 부터 “불교의 어느 경전을 보았습니까?” 하는 물음에 “별로 뚜렷하게 본 경전은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선사가 다그치기를 “그러면 그대가 이제까지 불법을 비방함은 무엇 때문인가? 누가 시켜서 하였는가 아니면 스스로 하였는가? 만약 시킴을 받아서 하였다면 주인이 시키는 대로 따라서 하는 개(犬)와 다름이 없고 자신이 스스로 하였다면 이렇다 할 경전 읽음도 없이 어떻게 불법을 비방하는가? 알지 못하고 비방한 것이니 스스로를 속이는 일이나 다름없다.” 하는 꾸짖음과 함께 한 수 가르쳐줬따.  심오한 가르침을 받아 그 후 한퇴지는 지극한 불자가 되어 마음을 깨치고 불교를 비방하던 그 붓으로 불법을 드날리고 삼보를 찬탄하는 문장을 후세에 남겼다.

  혜초 방장 예하께서는 이 시를 총무원장스님과 필자를 앞에 두고 하신 깊은 뜻은, 합동득도 수계식에 즈음하여 태고종도들이 계율에 얽매여 구속되는 어리석음을 떨치고 태전선사와 같은 도력을 지닐 수 있도록 열심히 수행 정진하는 종풍을 확립하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였다. 또한 천년가람 조계산 태고총림 선암사 칠전 달마선원 방장실에서 물소리 바람소리 새 소리 들어가면서 자연과 함께 노니는 종정예하의 심경을 은연중 암시하는 듯해서 두 손 모아 삼배를 올리고 바쁜 걸음을 재촉했다.

태고총림 조계산 선암사 종정원=인터뷰 법어 정리 원응<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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