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암사로 가는 길

관암사 전경
관암사 전경
대웅전
관음전
관음전

대구시 동구 갓바위로 350(능성동)자락에 자리한 관암사(주지 혜공(慧空)스님)로 가는 길은 짙푸른 녹음으로 가득했다. 칠석과 백중 기도에 동참한 불자들이 남긴 발자국들이 아직도 진흙 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는지 곳곳에 도장처럼 새겨져 있다.

밤새 많이 내린 비 때문인지 계곡마다 쏟아지는 물소리, 그 찬불가 소리가 우렁차다. 관암사(冠巖寺)는 신라시대의 돌탑과 백제 시대의 나무뿌리 흔적들 그리고 고려시대의 숨소리까지 곳곳에서 묻어난다.

관암사의 용궁당이 보이는 해탈교에 서서 모월 모시에 아무도 모르게 무지개가 핀다하여, 숨 죽여 합장하고 섰다.

갓바위 ‘관봉 약사여래좌상’의 눈물

팔공산 능선, 갓바위 ‘관봉 약사여래좌상’의 눈물이 계곡을 따라 용궁당 아래 고였을까. 간절하게 기도하면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는 입소문 때문일까. 용궁당에 흐르는 물 위에 켜놓은 촛대마다 촛불이 환하게 불을 밝혔다. 무지개가 피어나길 두 눈을 감고 미동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그리고 눈을 떴다. 아, 그런데 정말 무지개가 떴다. 마음의 무지개였을 수도, 잠시 물보라가 일으키는 착시현상이었을 수도.... 하지만 곱디고운 무지개는 해탈교의 작은 타원형을 닮아 있었다.

관암사 능선을 따라올라가면 높이 1,192.9m가 되는 팔공산(八空山)이 솟아있다. 팔공산의 유래는 백제 견훤의 공격을 받을 무렵 고려 태조 왕건을 구하기 위한 충신이었던 신숭겸, 견훤이 이곳 진지에 뛰어 들어 여덟 명의 장수와 함께 전사하여 왕건의 목숨을 구했다한다. 그 후 팔공산(八空山)으로 불렸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관암사(冠巖寺)에서 1365계단을 밝고 올라서면 갓 바위 ‘관봉석조여래좌상(冠峰石造如來坐像)’이 세상을 향한 환한 미소를 볼수 있다.

팔공산 관봉(850m) 암벽에 조성된 5.48m 원각상 ‘갓바위’는 보물 제431호로 ‘약사여례불’이라고도 한다.

‘갓바위’ 라는 이름은 머리에 자연판 석으로 갓을 쓰고 있는 형상이라 유래 된 것이며, 누구에게나 한 가지 소원은 들어준다하여 수많은 불자들이 찾아와 기도를 올리고 있다. 세상 밖에 갓 바위 ‘관봉석조여래좌상’이 알려지기까지 혜공 스님의 선친이었던 백암 대종사 스님의 월력이 컸다.

백암 큰스님이 기도 중에 발견하였다는 ‘석조약사여래좌상’은 신라 선덕여왕때 의현대사가 어머니의 명복을 빌기 위해 만들었다는 문헌이 남아있다. 불상과 좌대는 한 덩어리로 팔공산의 남쪽 봉우리 관봉 정상에 있는 석불 좌상을 하고 있다. 이 불상의 특이한 점은 두께 15㎝, 지름 180㎝의 판석이 올려 있어 갓의 형태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갓 바위 ‘관봉 석조약사여례불’로 가는 길목에 자리한 관암사(冠巖寺)! 한국불교 태고종파의 사찰로 신라시대 창건되었으나, 조선시대 억불정책으로 말미암아 폐사되었던 역사의 기록이 전해진다. 그러다 태고종 14세 종정예하 백암 대종사 스님의 기도 중에 불상과 흔적들을 발견하게 된다. 1965년 10월 관암사를 복원하기에 이르렀고, 현 주지 혜공스님의 부단한 노력으로 오늘날 관암사의 가람을 갖추게 된 것이다.

백암 큰스님은 갓 바위 불상을 처음 발견하여 관봉 ‘석조약사여래좌상’이라 명하고 당시 문교부에 보물 등록을 하였으며 관리자로 임명받았다. 갓 바위에서 900M 아래에 위치한 옛 절터 ‘관암사’에 불사를 하게 된 인연 또한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관암사 불사를 시작할 당시에는 길이 좁아 복원이 쉽지 않았다. 종각을 세우기까지 산 아래에서부터 종을 모셔 와야 했는데, 한 달이나 걸렸다 하니 얼마나 길이 좁고 험난했는지 짐작하고도 남았다.

혜공(慧空)스님 10년 계획 중창불사(重創佛事)

관암사 제2대 주지인 혜공(慧空)스님은 2004년 10년 계획으로 중창불사(重創佛事)를 시작하기 시작해 2010년 5월 대웅전(大雄殿)을 낙성식을 함으로 해서 지금의 가람(伽藍)의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이다. 대웅전 증축을 하는 동안 도르래를 이용해 나무 기둥을 끌어올리고 기와를 옮겼다. 부처님의 가피가 관암사 도량 가득했던 그 모습이 상상이 갔다.

경내를 돌며 자세히 도량 설명을 하던 혜공스님은 종각에 올라 종대를 힘차게 올려 잡는다. 꽝! 종소리가 어찌나 깊고 여운이 긴지 가슴 속을 깊이, 머릿속 깊이 가득가득 파고든다. 우렁찬 계곡 물소리마저도 잠시 소리를 멎는다. 대웅전을 비롯하여 관음전(觀音殿) 지장전(地藏殿) 칠성각(七星閣) 산신각(山神閣) 종각(鐘閣) 용왕당(龍王堂) 요사(寮舍) 등 12동의 전각(殿閣)을 보유하여 전통가람의 면모를 갖추고 팔공산의 정기를 간직한 영험기도도량(靈驗祈禱道場)으로 사부대중(四部大衆)이 수행정진(修行精進)과 중생교화(衆生敎化)에 매진하고 있다는 관암사, 그곳에 관해 혜공스님의 자세한 설명을 듣는 동안 팔공산 갓 바위에 걸려있던 구름이 모두 걷히고 햇빛이 환하게 도량 가득 내비췄다.

혜공스님은 1967년 백암 스님을 은사로 득도해 1967년 사미계, 2001년 구족계를 수지했다. 총무원 부원장 총무부장 재무부장, 중앙종회의원, 법규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한국불교문화예술사연구회 이사장과 생명나눔실천본부 이사 등을 맡았으며, 2013년 중앙종회의장에 선출 된 바 있다.

혜공스님은 관암사 관음전에 남다른 애착이 느낀다며 그 사유를 밝혔다.

오래 전 혜공스님은 직장암이란 선고를 받았다. 팔공산 능선 갓 바위 ‘관봉 약사여래좌상’ 아래 초막을 짓고 기도를 하던 중에 몸의 적신호를 느꼈던 것이다. 검사 결과 직장암라고 했다. 수술을 하루 앞둔 혜공스님은 모든 것을 미루고 선암사 관음전에서 들어가 삼칠일 기도를 간절하게 올렸다. 기도의 마지 날, 별과 달이 관음전 처마에 걸릴 시간 잠시 잠깐 잠에 빠져들었는데, 관세음보살님이 현몽하시어 반짝이는 물건을 내리셨다. 너무도 간절한 기도 덕분이었던지, 그 후 병원에서 암세포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는 기적 같은 진단결과가 나왔다.

그런 이유 때문에 혜공스님은 중창불사를 하는 동안 무엇보다도 관음전에 모실 관세음보살님과 탱화 하나하나에 온 정성과 예를 갖추었다고 한다.

천년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사찰 관암사(冠巖寺)!

일천 삼백 육십오 계단을 오르면 갓 바위 ‘관봉약사여래좌상’이 품어 안은 전설 깊은 도량이었다. 무엇보다 치성으로 기도하면 한 가지 소원을 꼭 들어준다는 부처님의 가피! 그 가피를 꼭 품어 안는다. 관암사를 휘돌아 흘러나오는 계곡물, 그 곳에서 꽃향이 났다. 관암사를 내려오는 길, 모든 게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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