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단위계질서 확립으로 종단위상 높여야”

태고종의 산증인 지산 지성 원로스님
태고종의 산증인 지산 지성 원로스님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지성 원로스님과 원응 주필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지성 원로스님과 원응 주필

  지산 지성 원로스님은 종단의 산증인이다. 현재는 호명산 감로암에 주석하고 계시는데, 모처럼 총무원에 들렸다고 한다. 지성 원로스님은 태고종을 떠나서 자신의 불교를 논할 수가 없다고 했다. 지금이야 도시계획에 절이 수용되어서 흔적도 없어졌지만, 왕십리 승가사에서 태어나서 자랐다. 성균관대 심리학과를 수료하고 직장생활을 할 수도 있었지만, 부친이자 은사인 충담노사의 뜻에 따라서 득도수계하고 바로 사문의 길에 들어섰다고 한다. 집이 바로 절이고 친부가 스님이어서 뭔가 처음엔 좀 낯선 출가가 되었지만, 이왕 불문에 들어설 바엔 제대로 한번 해보자 해서, 전국의 유명 산사를 1년여 동안 만행을 했다 한다. 그때만 해도 전국의 사찰들이 비구-대처 싸움이 한창이어서 가는 절마다 시끄러워서 오래 머무를 수도 없어서 금방 걸망을 메야 하는 일이 습관처럼 일어났다고 한다.

승가사가 도심에 있는 사찰이다 보니 수행 기도처 사찰이 필요하다고 은사스님께서 호명산에 감로사를 창건하고 나보고 가 있으라고 해서 시골 절에 가서 100일 정근 기도도 하고 철야정진도 한 것이 지금 지나놓고 보니, 추억이 되고 참된 수행 기간이 아니었나 하는 값진 수도 기간이었음을 생각한다고 했다. 이후 종단에서 이런저런 소임도 보고 했지만, 승려는 어느 일정기간 공부하고 수행하고 나면 생활불교하고 포교하는 전법사 포교사가 되어야지 무사안일하게 나태하게 허송세월하면 안 된다고 했다.

종단이 앞으로 어떻게 가야하느냐고 물었더니 원로스님은 말문을 열었다.

“ 국묵담 종정, 대륜 종정 덕암 종정, 남채스님, 정암스님 등, 태고종의 기라성 같은 큰 스님들을 옆에서 지켜봤지만, 그 분들은 부처님 같은 분들이었어. 휴암스님 현암스님 이루 다 열거할 수도 없을 정도야. 다 대본산에서 공부하고 살았던 큰 스님들입니다. 분규 때문에 도시에서 힘들게 지내셨지만, 지금은 그런 큰스님들 같은 분들을 찾기가 힘들어.”

요즘의 젊은 후학들은 이런 종단의 큰스님들을 잘 모르지만, 지성 원로스님이야 태고종의 역사를 훤히 꿰뚫고 있어서인지 태고종 창종이전 부터의 큰스님들의 비화를 말했다. 태고종이 창종될 때는 승가사가 태고종 소속 1호 사찰로 문교부에 등록할 정도로 승가사와 은사스님은 태고종과는 한 몸이었다고 했다. 지성원로스님은 말을 이었다. “하루는 시자 종묵 스님이 대륜 종정 스님을 모시고 예고도 없이 승가사에 오신 적이 있었어요. 종정 스님, 총무원장 스님, 종단의 부장스님들을 부처님처럼 대하던 시절입니다. 그만큼 종단에서 일하는 스님들을 존경하고 신뢰했었어. 앞으로 종단의 위상이 올라가야 합니다. 종단기강이 이렇게 해이해지고 위계질서가 서지 않는다면, 앞으로 종단이 어떻게 되겠어요. 편백운 총무원장스님이 종단을 안정시키고 기강확립하고 위상 찾는 데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당분간은 불가피하다고는 하지만, 말썽부리는 종도들도 포용해서 함께 갔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총무원장스님에게도 주문했다.

원로스님은 이곳 법륜사에 오면, 대륜 종정 스님이 생각나서 눈물이 날 지경이라고 했다. 부친이면서 은사이신 충담스님은 본래 안정사(청련사) 변보안(능해) 스님의 상좌이지만, 대륜스님의 참회상좌가 되었고, 참회상좌게문에 만월(滿月)이란 법명을 내렸고, 자당에겐 만월심(滿月心)이란 법명을 같이 내려서 참회상좌게문에 법명을 같이 써서 준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지성 원로스님은 요즘 젊은 스님들에게도 따끔하게 한마디 했다. “태고종이 어떻게 만들어진 종단인데, 잘해야지, 요즘은 초선 재선의원들이 더 설치는 것 같아. 묵묵히 공부하고 선배들로부터 배우고 종단을 생각해야지. 마구 떠든다고 되는 것이 아닌데, 아무튼 종단기강 바로 서야 하고, 위계질서 바로 서야 합니다.”라고 쓴 소리를 하셨다.

지성원로스님은 학부 시절에는 심리학에 빠져서 책권이나 읽었다고 했다. 특히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매료되었고, 서양의 심리학자들이 불교의 구사. 유식(俱舍.唯識)을 연구해서 지금은 인도나 동양의 불교학자들보다도 서양에서 더 깊이 연구했다고 말했다. 19세기 말, 프로이트 같은 정신분석학의 대가는 인간 행동을 무의식과 의식, 자아와 초자아라는 독특한 개념으로 설명하였지만, 이런 분석을 불교에서는 2천 5백 년 전에 벌써 다 체계화 했다고 《아비달마구사론》과 《유식학》 논리를 전개했다. 하지만 지성원로스님은 “이런 수준 높고 깊은 심리학을 일반신도들에게 말하면 다 도망간다.”고 했다. “그러므로 불교에서는 중생의 근기에 맞는 대기설법(對機說法)을 해야 하고, 자력문(自力門) 타력문(他力門)을 잘 활용할 줄 알아야 포교도 잘하는 것.”라고 강조했다.

인터뷰정리=원응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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