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한 조각의 인연

 음력 유월 초하루, 춘천으로 가는 이른 아침, 구름 한 조각이 해를 살포시 가렸다. 차 시동을 걸자, 구름 한 조각이 바짝 꽁무니를 따라 붙는다. 스물여덟 개 쯤 되는 터널을 지나고, 서른 세 개가 넘는 개울과 강을 건너 드디어 춘천시에 도착했다.‘번개시장 길’을 조심스럽게 타고 오르니, 뒤로는 야트막한 ‘봉의산’이 솟아있고, 앞으로는 ‘소양강’이 흐르는 곳에 도착했다. 곧 내비게이션이 목적지 종료를 알린다. 드디어 ‘석왕사’에 도착한 것이다. 뒤 따라오던 구름 한 조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뜨거운 뙤약볕이 경내 가득 내리비치고 있었다.

그 때였다. 범종이 크게 울었다. 그 우렁차고도 은은한 범종소리가 심장 속으로 파고들자 머릿속이 혼미해졌다. 마음 속 깊이 있던 오욕(五慾)을 에둘러 몸 밖으로 부려놓는다. 범종이 또 다시 크게 운다. 33번 범종을 치고 있는 손성환 처사의 손이 종대의 끈을 힘차게 잡는다. 심장의 흔들림과 멈춤은 정확하게 서른 세 번이었다. 범종 소리는 석왕사 초하루 기도에 동참한 불자들의 마음을 위로하고도 넘쳐 번개시장 길을 따라 소양강으로 흘러간다.

쌀방 김영순 보살이 복단물품을 정리하는 모습이 보인다. 신도가 농사지은 쌀을 구입해 공양미로 올릴 수 있도록 포장하고 판매하는 일을 맡고 있었다. 그 수익금은 불우이웃과 국군장병들을 위해 쓴다고 말한 김영순 보살의 입가에 부처님의 미소가 가득하다.

‘쌀방 보살은 내 짝꿍입니다.’

서른 세 번의 종을 치고 쌀방으로 들어선 손성환 처사의 말이다. 그랬었다. 종치기 처사와 쌀방 보살은 짝꿍이었다. 두 사람의 얼굴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 꽃!’이 피었다.

 해를 정수리에 가득 이고 핀 연꽃이 눈에 들어왔다. 열여섯 송이 연꽃이 화분 가득하다. ‘봉의산’ 기운과 ‘소양강’에 머문 슬픈 연가를 품고 있는지 빛이 참 곱다.

대웅전 문틈으로 찬불가가 흘러나왔다.

‘봉의산 맑은 터에 자리 잡은 대석왕사, 맥국의 향이 서린 유서 깊은 도량’

‘편백운 스님’이 작사하였다는 ‘석왕사 사가’를 박순해 보살이 선창하자, 기도에 동참한 보살들의 음성과 합을 이룬다. 곧 대웅전 안은 피안(彼岸)의 소리로 가득하다.

‘석왕사’ 그곳에는 새 인연의 발화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잠시 숨을 고른다.

춘천 석왕사에만 보이는 도솔천

‘편백운 큰스님’은 대웅전 댓돌에 신발을 얌전히 벗어 놓고, 매화가 새겨진 중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다. 합장하고 삼보전에 삼배를 올린다. ‘편백운 스님’의 상좌 ‘도정스님’의 목탁소리와 ‘천수경’이 하나가 되어 연등에 부처님의 자비(慈悲)가 걸리자, 석가모니불, 약사불, 지장보살의 얼굴에서 도솔천이 보인다.

‘옛 인연을 이어서 새 인연을 맺도록 대자대비를 베푸사 법을 설하옵소서’ 불자들이 청법가를 부르자, 편백운 (片白雲)스님의 법문이 시작되었다.

‘석왕사 33평 도량에 지게로 벽돌을 날라 축대를 쌓고, 대웅전을 새로 짓던 때가 아득합니다. 벌써 40여년이 흘렀습니다.’

편백운 스님은 어떻게 해서 이곳 ‘봉의산’ 자락에 터를 잡을 수 있었을까? 궁금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도를 이룰 수 없다.

편백운 스님이 1972년 33평 숭덕암에 부임한 후 사찰명을 석왕사로 개명하였다. 당시 숭덕암 신도는 20세대에 불과하였다하니, 편백운 주지스님의 부단한 정진과 각고의 노력이 필요했다.

그 결과 40여년이 흐른 뒤 대웅전, 삼성각, 무설전을 신축하였으며, 요사채와 강의실을 지었다. 또한 종각을 세웠으며, 유치원 건물을 포함하여 총 530여 평의 건물과 700평의 대지를 확보하게 되었다.이 과정에서 사찰 진입로 마을 집 열 채 이상을 매입하여 주변을 정리하였고, 점차적으로 대승교화 도량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석왕사 현재의 도량이 있기까지 편백운 스님과 선덕화 원주보살의 희생과 석왕사 신도들의 힘이 뭉쳐진 결과였다. 그 어떤 국가 예산도 받지 않고 오로지 부처님 원력과 편백운 스님의 집념 그리고 신도들의 불심으로 지어진 도량이었던 것이다.

옥불탁 불성기 (玉不琢 不成器) 옥돌도 다듬지 아니하면 그릇을 이룰 수 없고

인불학불지도 (人不學 不知道)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도를 이룰 수 없다.

편백운 스님은 가슴에 품은 큰 뜻, 그 목표를 머리맡에 걸어두고 도량 불사가 끝나갈 쯤 불자교육에 열을 올렸다.

1989년 2월 석왕사 유치원을 설립해 유치부, 유아부, 영아부로 연령차에 따라 운영했다. 현재 석왕사 유치원 졸업생은 정치인에 입문하거나 교육자 또는 다양한 곳에서 활약하고 있다.

한편 강원지역 불자들의 참된 불교교육을 위하여 1994년 3월 ‘강원불교대학’을 열게 된다. 스님과 뜻을 함께 했던 동국대학교 교수들와 불교교리, 동양사상, 철학 등 강원도 불자들에게 삶의 지혜와 양식을 제공하였는데, 종단으로부터 인가를 받아 설립된 교양대학이었다. 아쉽게도 석왕사 유치원은 현재 인구감소로 운영 중단에 있다. 하지만 ‘강원불교대학’은 아직도 문을 활짝 열어두고 있다. 또한 편백운 스님의 전통적인 승가교육을 위하여 종단으로부터 승인을 받아 ‘삼장불학원’을 개원했는데, 2002년 3월 17일 설립한 승려교육기관이다. 부처님의 일대시교인 내전을 중심으로 사미과, 사집과, 사교과, 대교과, 의식과를 개설하여 교육하고 있다. 편백운 스님의 행적을 살펴보는 동안 잠시 서산대사가 입적하기 전 읊었다는 해탈문이 떠올랐다.

生也一片浮雲起(생야일편부운기)-삶이란 한조각 구름이 일어남이오

死也一片浮雲滅(사야일편부운멸)-죽음이란 한조각 구름이 없어짐이다

浮雲自體本無實(부운자체본무실)-구름은 본시 실체가 없는 것

生死去來亦如然(생사거래역여연)-죽고 살고 오고감이 모두 그와 같다.

편백운(片白雲)스님의 법명처럼 우리 일행과도 깊은 인연의 사슬로 얽혀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른 아침 ‘흰구름 한 조각’이 춘천 ‘석왕사’ 가는 길을 인도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 또한 우연은 아닐 터, 거리상 아주 멀게만 느껴졌던 ‘석왕사’가 가깝고도 친숙하게 느껴진 이유 또한 인연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편백운 스님의 또 다른 숙제

편백운 스님은 인연법에 따라 1963년 예산 수덕사에서 출가해 수계를 받았다. 1965년 양산 통도사 불교전문강원 사미, 사집과를 수료했다. 1985년 한국불교태고종 동방불교대학 졸업했으며, 태고종 강원교구 제13대 종무원장, 종정예경실장, 총무원 부원장을 역임한 바 있다. 2017년에는 한국불교태고종 제26대 총무원장에 당선되어 중책을 맡았다.

‘6월 초하루, 중책의 소임을 맡게 된 그날이 바로 오늘입니다. 갑자기 떠올랐습니다. 우연하게도 오늘이 바로 한국불교태고종 제 26대 총무원장 당선된 날이었던 것입니다. 총무원장이 된 후, 아침에 일어나면 청와대를 향해 국가안녕을 위한 108배를 합니다. 바로 일 년 전, 당선된 날을 회상해보니 감회가 새롭고 막중한 책임을 느낍니다. 한국불교태고종의 종단 정립과 발전을 위해 혼신을 다할 것입니다. 또한 북한 사찰에 홍 가사 백 여벌을 기증할 계획을 갖고 있으니 십시일반 동참해 주셔야겠습니다.’

편백운 스님의 숙제가 또 하나 생긴 유월 초하룻날이다. 도량을 짓고, 교육사업을 벌이고, 이제 태고종 종단을 위해 혼신을 다해야만 한다. 더구나 국가 안녕을 위한 큰 바램도 생겼으니 스님의 숙제가 또 하나 생긴 셈이다.

편백운 스님은 ‘한결같은 마음과 초심으로 총무원장을 소임을 다할 것이다. 지게로 돌을 날라 축대 쌓고, 벽돌을 등에 지고 올라와 대웅전 도량을 쌓던 예전의 그날처럼, 태고종 종단의 석축을 바르게 쌓을 계획이다. 마지막 소임을 다하는 그날, 참 잘했다.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다. 스스로에게 그런 말을 하면서 춘천 석왕사 주지로 내려올 것이다. 다른 불교 종단과도 화합을 할 것이며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고 교류할 것이다. 참 불교 발전에 마지막 남은 힘까지 쏟아 부을 것을 다시 한 번 약속한다.’라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춘천 ‘석왕사’를 빠져나와 인근에 위치한 대추나무 막국수 집에 들러 강원도 막국수와 감자전을 먹었다. 아주 오래전 강원도 남자를 ‘감자바우’라고 불렀단다. 산이 많아 감자가 주식이었던 시절, 그 시절에 서울에 가면 강원도 사나이를 ‘감자바우’라고 하대했다는데.....

‘요즘은 강원도 감자가 전국적으로 으뜸으로 친다지요? 강원도에는 감자만 있는 게 아니라 비싼 산삼도 있다지요. 이젠 예전과 전혀 달라요. 눈이 많이 오기 때문에 강원도에서 동계올림픽도 하는 세상이 되었어요? 감자바위 힘이 보통은 넘어요. 하대하면 큰 코 다쳐요.’

강원도 ‘감자바우’ 기백이 느껴지는 편백운 스님의 말씀이 올곧게 느껴지는 유월 초하룻날, 하루가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었다.

합동 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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