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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62(2018)년 07월 16일 월요일
681호 사설-한국불교가 극복해야할 과제들
681호 사설-한국불교가 극복해야할 과제들
  • 한국불교신문
  • 승인 2018.07.12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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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장의 사문화와 구족계의 형식주의를 생각하며-

 한국불교는 지금 기로에 서 있다. 어느 종단을 막론하고 극복해야할 과제들을 많이 안고 있다. 현재 각 종단은 종단 나름대로 많은 문제점과 과제들을 안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시급히 정리하고 넘어가야할 현안문제가 ‘계율’을 어떻게 보고 대할 것인가이다. 불교의 계율 문제는 불교에서는 지극히 기본적인 윤리적인 명제이다. 불교의 생명력과 같은 문제가 계율문제이기 때문이다. 계율의 수지(受持)를 떠나서, 계율에 대한 태도와 관점을 어떻게 보고 갖느냐 하는 담론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불교에 있어서, 모든 종단을 초월해서 이 계율문제는 분명히 정의하고 넘어가야만할 시급한 현안문제가 대두되고 있기 때문에 논의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직면해 있다. 논의의 시작은 두 가지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첫째는 승가 고래의 《율장》의 관점이다. 또 하나는 각 종단의 종헌.종법의 의한 윤리규범으로서의 계율관이다.

승니(僧尼)의 승가 윤리적 규범은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율장》에 근거해야 한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나라의 불교에서는 이 《율장》에 의한 승가공동체의 윤리적 규범보다는 <승가법>이나 <종헌.종법>의 규정에 의거하여 통제나 구속을 받는다. 《율장》은 승가의 헌법이나 다름없는 모법이지만, 현실적으로 《율장》에 의한 승가공동체의 규율이나 질서, 승니의 기강(紀綱)의 척도로 삼지는 않는다. 이제 《율장》은 승가에서 이상적인 고문서와 같은 존재로 전락한지가 오래다. 물론 승가공동체에서는 당연히 《율장》을 지키고 그대로 실행해야할 승가의 모법이지만, 현실적으로 ‘《율장》을 제대로 지키면서 승가를 운영하는 종파가 얼마나 되겠는가?’이다. 솔직히 말해서 《율장》대로 살라고 한다면, 승가에 몇 명이나 남아 있겠는가. 남방불교(상좌부)의 비구 227계(비구니 311계)나 북방불교의 빅슈 250계(빅슈니 348계)를 원칙대로 지키면서 승가생활을 하려고 하면 현실적으로 가만히 앉아 있거나 누워 있어야할 형편이다.

부처님 승가 시대와 부파불교 시대만해도 《율장》을 대하는 태도가 달랐다. 그러므로 부파불교에서는 부파에 따라서 《경장》이나 《율장》을 보는 또는 대하는 관점과 태도가 변화하고 달라졌던 것이다. 동남아시아의 <상좌부>는 근본율장에 따라서 비구 227계 비구니 311계의 원칙을 비교적 따르고 있다. 티베트-몽골계는 빅슈 253계 빅슈니 364계인 <근본설일체유부>파의 계목을 준수하고 있다. 동아시아 불교계인 중국 한국 일본은 전통적으로 법장부파의 <사분율>에 의거해서 빅슈 250계 빅슈니 348계이지만, 일본은 대부분의 승려가 결혼을 함으로써 지계(持戒)가 무의미해졌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사분율>에 의한 구족계 수계를 해왔지만, 언제부터인가 《범망경》에 의한 <보살계>를 수용하고 있다. 한국불교에서도 통합종단 이전에는 중국처럼 《범망경》에 의한 <보살계>를 수용해 왔다. 이후에는 한쪽은 비구계(비구니계)를 철저하게 지키고 독신청정을 강조해 왔고, 태고종 같은 경우에는 《범망경》의 <대승보살계>의 정신과 윤리적 규범에 따라서 계율관에 다소 신축성을 기하고 있다.

세계불교 추세가 《율장》의 사문화와 구족계의 형식주의를 비켜가기 어렵지만, <상좌부>나 <근본설일체유부>에서는 원칙대로 지켜가고 있으며, 동아시아 불교권에서도 중국불교는 <사분율>이나 《범망경》에 의한 <대승보살계>를 준수하고 있다. 태고종은 《범망경》에 의한 <대승보살계>를 따르고 있다. 하지만 조계종의 경우에는 법장부파의 <사분율>을 따라야 한다. 비구.대처 정화운동과 통합종단에 의해서 탄생한 조계종은 이런 《율장》이나 계율정신을 따르지 않는다면 조계종의 정체성은 훼손되기 때문이다. 통합종단의 정신은 비구-대처가 화합하여 이판 -사판으로 함께 승가공동체를 운영하면서 한국불교를 중흥시키고 발전하자는 화동(和同)의 정신이 깔려 있었다. 비구 또는 이판은 철저하게 수행승의 길을 가고, 사판 즉 대처는 포교 교육 등을 담당하여 함께 불교공동체를 이끌어가자는 이상이었다. 결국 강경과 온건의 대립과 여러 가지 부수적인 견해차이로 분종의 길을 걸었지만, 화동의 원칙은 함께였다. 최근 설정 조계종 총무원장과 편백운 태고종 총무원장이 만나서 “우리 통합합시다!”라는 의례적 원론적 덕담은 이런 한국불교의 현대사적인 고민과 아쉬움에서의 발로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조계종과 태고종은 한국불교가 존재하는 한, 승가분열의 이런 이념적 갈등과 족쇄에서 벗어 날 수가 없으며 이런 맥락에서 ‘통합’은 항상 잠재되어 있는 과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