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는 1천 7백년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불교문화를 간직하고 있다. 한국역사와 문화에서 그리고 한국 사상사나 지성사에서 불교란 빛과 그림자를 떠나서 생각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시대적으로 불교는 지금 엄청난 위기에 직면해 있다. 한반도에 불교가 수용된 이래로 조선조에서 받았던 핍박보다도 지금의 시련과 압박은 그 강도가 더 세다고 하겠다. 하지만 우리 불교 내부에서는 둔감하게 느끼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불교는 내우외환에 사면초가의 형국인양, 자칫하면 큰 봉변을 당하고 사자신충의 속담처럼 뭔가 조짐이 좋아 보이지가 않다. 아무리 좋게 해석하고 긍정적으로 보려고 해도 자꾸만 사방에서 조여 오는 보이지 않는 중압감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지금과 같은 민주시대에 외부에서 노골적으로 불교를 폄훼하고 얕잡아 보지는 않지만, 말없는 시선이 더 걱정된다. 등하불명이란 말처럼 우리의 일을 외부에서는 훤히 들여다보지만 내부에 있는 우리는 만성과 타성에 젖어서 우리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남의 종단을 거론하기 전에 우리 태고종도는 이제 진심으로 자아비판과 자성을 해야 할 시점이라고 본다. 너무 타성에 젖고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대중들의 시선에 둔감한 반응을 보이는 무력증에서 빨리 탈출하는 용단과 지혜가 필요하다. 우물 안 개구리의 사고와 케케묵은 가치관과 안일무사한 구습에 젖어 있는 습관을 벗어나야 한다. 아직도 불공시식이나 해서 사찰을 운영하겠다는 타성에 젖어 있는 한, 그 사찰의 운영은 해가 갈수록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어렵더라도 법회를 열고 포교를 해서 신도들을 합리적으로 계도시켜 정법을 가르쳐서 올바른 신행활동을 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이런 포교활동을 하려면 일단은 출가승니(僧尼)가 있어야 한다. 전법사니 교임이니 해서 승니의 보조역할도 절대 필요는 하지만, 그래도 불교란 종교는 출가하여 삭발염의한 승니 공동체가 절실히 요청된다.

본종이 역사 속에 존재하려면 우리의 후계자들이 있어야 하고 이들이 종단을 계승해 가야한다. 그렇게 하려면 무엇이 급한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출가한 승니가 많아야 한다. 지금의 종단 기성세대들은 이점에서 너무 소극적이고 노력을 하지 않는다. 자신만 편하고 만족하면 된다는 생각을 할는지 모르지만, 이런 추세로 가다가는 승단존립 자체가 위태로울 지경이다. 발을 벗고 나서서 출가자를 모집하여 수계득도 하도록 해야 한다. 인구감소로 인하여 출가자 수의 감소를 당연한 것처럼 여기고 현대인의 성향은 무종교 시대적이라는 인식을 갖는다든지 하는 것은 출가 수행자로서 정당한 관점이 아니다. 직업적으로 생계를 위해서, 노후에 편안하게 삶을 보장받기 위해서 출가를 한다면 이런 출가목적은 정당하지가 않다. 설사 그렇다고 할지라도 일단 불문에 들어오면 가치관이 변해야 한다. 이런 책임은 기성 승니들의 책임과 역할이다.

승복은 화려하게 반듯하게 입고 다니고 법계는 높지만, 지금 당장 무엇이 급한 일인지도 인식을 못하는 종도들이 있다면 생각을 빨리 고쳐먹어야 한다. 득도수계란 불문에 들어오는 하나의 통과의례이다. 《율장》에 의한 구족계 그 자체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 한다기보다는 출가하여 승단에 입문하는 절차 정도로 인식해서 입문의식(入門儀式)을 치루는 의식절차로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 같은 시대에 2천 5백 년 전에 제정된 《율장》대로 출가생활을 하라고 한다면 버틸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차라리 법계제도를 강화해서 법계를 취득하는데 심혈을 기울이도록 해서 승니의 자질을 높이는 교육이나 연수프로그램을 잘 활용해서 법력과 도력이 높은 스승들을 양성하는데 종단은 심혈을 기울이고 최선의 방안을 강구해서 실행에 옮기도록 해야 한다. 파당이나 형성하고 종권이나 쟁취해서 자신의 입지나 구축하려는 아집과 이기주의를 버리고 부종수교의 정신을 갖자. 종단에서 추진하는 합동득도 수계 산림에 많이 동참하도록 발 벗고 나서서 종단에 태고 법손들이 넘쳐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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