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원사 선암스님 “뜻있는 종도 누구라도”“지난 40여 년간 수행교화 활동을 제외하면 오로지 사진찍기 하나로 일관해 온 삶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작가도 됐고, 좋은 작품들을 통해 불교 및 종단 홍보에도 나름 기여해 왔다고 자부합니다. 이제 그간의 작업을 정리도 하고 후배들에게 회향도 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던 차에 주변에서도 이를 적극 권유해 발심해 본 것입니다.”사진작가로 유명한 봉원사 선암스님은 올해부터는 사진에 관심이 많은 종도들을 대상으로 사진예술을 가르치고자 계획을 세웠다. 주변의 요청도 많은 데다, 부처님 가피로 불교전문 사진작가로 위상을 세운 터라 부처님께 회향하고 싶은 마음도 부쩍 드는 요즘이다. 더욱이 한국불교계에 종단을 불문하고 사진을 전문으로 찍던 노스님들이 한둘씩 열반하고 이를 제대로 이을 후진이 아직 선명하지 않은 상황을 보더라도 후학양성은 중요한 문제일뿐더러, 선암스님 스스로 한국사진작가협회 창작분과위원장을 오래 역임하며 쌓은 노하우를 전수해야 한다는 사명감마저 이는 탓이다. “공군본부를 제대하며 생애 처음으로 월간불교사에 사진을 제공한 이래 많은 세월이 흘렀네요. 당초 작가가 되려고 한 것도 아니고, 그저 내가 좋아 보수도 없이 보시겸 포교활동으로 셔터를 눌렀습니다. 1970년대 초반만 해도 사진찍기가 지금처럼 흔한 일은 아니었지요. 제가 승려인지라 연꽃과 영산재 사찰 등을 주로 찍었는데 우연찮게 공모전 등에도 당선되고 그저 내가 좋아 열심히 하다 보니 오늘에 이르렀습니다.”예전에는 스님이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걸 탐탁찮아 하는 이들도 많았다. 심지어 계사스님도 “굳이 들고 다녀야겠느냐”는 말씀을 하시기도 했다. 그래도 선암스님은 사진을 통해 부처님 공덕을 알린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지금은 너도나도 사진을 부탁하는 상황이다. 영산재 사진은 그야말로 엄청 많이 찍었다. 영산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일에는 스님의 사진들도 일조했다. 한국유네스코의 박원모 팀장에게 건내준 수많은 사진들은 다 스님이 아끼는 작품들이다. 연꽃 사진부터 시작된 연꽃사랑은 결국 봉원사 연꽃축제로까지 승화됐다. 연꽃축제는 서울시의 지원까지 받는다. 언론매체 등에도 많은 사진을 제공했다. “사진을 찍으며 좋은 사람들과 좋은 연연도 참 많이 맺었습니다. 사진 덕에 친구 중매도 했다. 이제 환갑도 지났고 개인전 등 전시회 16회(프랑스, 대만, 벨기애 독일 등 외국 전시회 포함)를 했고 하다보니, 제가 갖고 있는 모든 자료와 사진 노하우를 뜻있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동방불교대에서 강의도 했고, 그런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노하우를 전수받고 싶어했다. 일반인들은 많이 지도했는데. 이제는 스님들을 대상으로 불교관련 사진찍기를 전수하고픈 것이다.“사찰홍보 포교활동에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사실 현재 우리나라 공모전의 70% 정도가 불교사진입니다. 봉원사 삼천불전 건축과정을 사진기록으로 남겼는데, 지금도 좋은 자료로 활용됩니다. 열반한 만봉스님 등 인간문화재들, 단청문양, 일주문 등의 불교사진은 우리에게 신심과 환희심을 가져다주지요.” 관광공사 공모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참선’ 사진은 지금도 인구에 회자된다. 일본에 한국을 알리는 ‘일본관광신문’에는 고문으로 추대받아 우리의 세계문화유산이나 사찰 사진 등을 제공하고 있다. 월간 ‘차의 세계’에도 다완 등 스님의 사진이 실리고 있다. 스님은 아직도 우리 사회가 사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사진을 아무렇게나 취급하고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 것을 볼 때면 안타깝다. 선암스님이 굳이 사진예술을 전수하고자 하는 이유는 이와도 관련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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