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사정원장 운곡스님 신년대담각자 本分 지키는 게 가장 重要 爲法忘軀 정신으로 破邪顯正 꼭 종단 중흥 개혁의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한 종단 중추 3원의 수장 스님들의 신년대담, 그 마지막 편으로 중앙사정원장 운곡스님을 친견하러 강원도 홍천의 안양사를 찾았다. 눈발이 희끗희끗 날리는 가운데 하늘은 잔뜩 흐렸으나, 안양사 경내 눈 맞고 선 소나무의 기상은 올곧게 푸르다. 사정(司正)이란 어떤 일인가. 특히 승가공동체에서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비단 승가 뿐 아니라 일반 조직에서도, 한 사람 한 사람은 다 좋은 사람들인데, 조직의 일원으로서의 그는 때로는 안타까운 모습들을 보이곤 한다. 또 허물은 탓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지만, 우리는 때로는 사람이 미워지기도 한다. 자신 또한 완벽히 바르다 할 수 없는 우리가 다른 누구의 허물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현실의 아이러니는 또 어떤가. 그래서 사정(司正)은 지난한 일인가. 운곡스님을 친견한 이유다. (편집자 주)- 친견을 허락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조금 시간이 흘렀으나, 종도들에게 경인년 새해 덕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무엇보다 올해도 건강들 하시고, 본분사 잘 받들어 수행과 교화불사 원만회향 하시길 기원드립니다. 매년 새해는 가고 오는 것이라 새삼 새로울 것도 없다 할 수도 있지만, 시간 속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우리들인지라 한 가지만은 명심하자 말씀드린다면, 자기의 생각과 판단만이 절대적이라 고집하고 행동하는 아만심과 모든 번뇌의 뿌리가 되는 아집을 버려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일이 원만성취 되리라 생각합니다. 소납 출가 50여 성상을 반추하면, 아만심과 아집에 이끌려 살아온 것 같기도 합니다. 여러 스승에게서 배우고 또 후학을 가르치기도 했지만 자칫 그 모든 것이 업장만 쌓은 게 아닐까 여겨질 때도 있습니다. 옳은 길, 좋은 길, 착한 길을 가로막는 게 업장(能防善道 故名業障)이라 했습니다. - 사정원장 스님께서는 과거 10대 중앙종회 의장을 역임하신 데 이어, 이번에 중앙사정원장으로 종단 중임을 맡으셨습니다. 어떤 포부로 임하실 것이지요. = 지난해 제101회 중앙종회에서 호천을 받아 막상 중앙사정원장이라는 막중한 소임을 맡고 보니, 우선 나 자신부터 돌아보게 되더군요. 내가 불교공부를 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받았고, 또 지금도 아끼는 책이 김동화 박사가 지은 ‘불교학개론’과 ‘불교 교리발달사’라는 책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불교 공부한다면 누구나 일독은 해야 하고, 또 불교학의 모든 게 다 들어 있다 볼 수 있는 훌륭한 저작입니다. 그 불교학개론의 서(序)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문필을 농(弄)하기 보다는 사색을 좋아하고, 언론을 변(辯)하기 보다는 이해에 힘쓰고자 하는 일이 나의 성질이다. 그러나 뜻에 없는 노릇을 하게 되는 것은 이것이야말로 인연의 소치인가 싶다...다만 박빙(薄氷)을 밟고, 심연(深淵)에 나아가는 듯한 조심으로...’지금의 내 심정을 대변하는 듯합니다. 남 앞에 나서서 시비를 판단한다는 것은 자칫 커다란 업장을 짓는 일이고, 그만큼 무서운 일입니다. 만사에 공명정대하게 임할 작정입니다. 임기 회향하는 날 부끄럽지 않도록 말입니다. -근자 종단은 불미스런 일들로 위상이 많이 실추됐습니다. 뜻있는 종도들의 종단 위상 회복 의지도 어느 때보다 추상같습니다. 어떤 연유로 종단이 여기에 이르렀으며, 향후 나아갈 바는 어떠해야 하는지요. = 작금 종단 상황은 격랑이 이는 망망대해 한가운데 떠있는 일엽편주와 같은 형국이라 보여 집니다. 한마디로 위기상황입니다. 행여나 선장이 배를 잘못 부린다거나, 탑승자들이 갈피를 못잡고 우왕좌왕 한다면 모두 침몰할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시기입니다. 지금까지의 처사가 고의든 실수든 일단 종단에 엄청난 채무 문제가 걸려 있습니다. 게다가 이 빚은 어떤 방법으로든 곧 해결해야 할 긴박한 상황입니다. 종단을 이 지경으로 만든 분들이 책임져야 할 문제입니다. 전임자 누구누구를 책망하자는 말은 아닙니다. 누구를 일방적으로 매도해서도 안됩니다. 따지고 보면, 요직에 있으면서 이를 견제 못하고 방관한 자들도 책임이 있습니다. 비난보다 해결이 급선무입니다. 향후 문제해결에 있어 본질을 호도해서는 안됩니다. 궤변도 안됩니다. - 그렇다면 부채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 우선 태고종이라는 배를 탄 한 사람 한 사람이 주인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당장 배가 흔들린다고 따라서 흔들려서는 안됩니다. 나 혼자만이라도 중심을 잡아야 합니다. 이에 더 나아가, 위기가 기회일 수 있다는 제행무상의 원리를 깨쳐야 합니다. 현 종단의 위기가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 있음을 믿고,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현재 종단 부채수습대책위원회가 방안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책위원회도 본질이 호도된 채 방책만 강구한다고 해결될 일은 아닙니다. 우리 몸의 질병도 정확한 진단을 통한 원인 규명부터 해야 제대로 치료하는 법인데, 당장 대증요법만 찾는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사안의 핵심은 채무해결입니다. 그러려면 채무 성질을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채무 발생 원인과 절차 정당성 책임소재 등이 규명되고 원인을 제거해야 병을 고치는 것입니다. 빚을 질 때처럼 독단과 편법과 얕은 꾀로 얼렁뚱땅 해결하려 해서는 안됩니다.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 궤변으로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는 일을 가장 경계해야 합니다. - 이와 관련 중앙사정원의 역할은. = 삼권분립, 삼권분립 합니다만 사실 종단 현실 여건 상 일반사회에 준하는 엄격한 삼권분립이 말처럼 간단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원칙은 원칙입니다. 매사를 종헌종법대로 해나갈 것입니다. 중앙사정원법에 따르면, 중앙사정원은 지방교구사정원의 징계심판에 불복하여 항소한 사건의 심리, 사찰운영 또는 승려의 권리의무와 관련하여 종무기관의 사무처리에 불복, 행정소원을 청구한 사건의 심리 등을 관장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번에 중앙사정위원을 선임할 때도 지역안배, 주변의 신망, 업무수행능력 등을 두고 나름 심사원려(深思遠慮) 했습니다. 법에 있는 대로 사무처를 두고 사무처장도 임명했습니다. 종도간에 잘못이 있다 해도, 징계가 능사는 아닐 것입니다. 징계법에 따르면, 징계는 멸빈, 제적, 공권정지, 법계강등, 배상명령, 문서견책 등 6단계가 있는데, 운영의 묘를 살려야 할 것입니다. 새삼 법규를 들먹이는 것은 절차나 법규적용에서 우리가 얼마나 신중하고 엄밀했는지를 한 번 돌아보고자 함입니다. 법, 좋아할 게 못됩니다. 하지만 법은 최소한의 도덕입니다.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의 한계일 뿐입니다. - 말씀을 듣고 보니 오늘날 종단의 처지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정원의 역할이란 게 대강(大綱)으로 보면 종단 기강확립, 위계질서 수립이랄 수 있습니다. 현 우리 종단은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기강도 위계질서도 크게 무너져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종령이 서지 않고, 종단 행정 및 사정의 법적 구속력이 확보되지 못한 것입니다. 핵심은 너나없이 스스로 본분을 망각한 데 있습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소임자들이 직분을 똑바로 수행하지 못한 탓입니다. 그러다보니 역반응이 일어납니다. 종단권위가 실추됩니다. 서로가 상대 탓만 합니다. 무엇이 맞는 것이고, 무엇이 옳은 것인지에 대한 기준이 무너집니다. 힘있고 목소리 큰 사람이 최고가 되는 기현상이 발생합니다. 이런 양상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지 각자가 스스로에게 자문해야 합니다. - 승가공동체는 일반 조직이나 단체에 견주어 어떤 차별성을 갖습니까. 특히 승가공동체의 기강과 질서는 어떠해야 합니까. = 승가의 근본은 화합입니다. 구성원 모두 각자가 자기 본분에 충실하면 만사가 여법하게 이뤄집니다. 행자는 행자의 본분을, 주지는 주지의 본분을, 대중은 대중의 본분을, 등등 모든 지위, 소임, 역할이 다 제본분에만 충실하면 탈이 없습니다. 가만 보면, 결국 사단이 생기는 것은 자기 직분을 넘어서거나 또는 미치지 못할 경우입니다. 사실 본분에 충실하다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상(相)을 갖고, 상에 매여 삽니다. 이 상을 여의야 본분이 제대로 보이는 법입니다. 허상을 붙잡고 마치 자기가 대단한 사람이나 된 듯, 이리저리 권력을 휘두르고, 잔꾀를 내고, 고집을 피우고, 독선을 부리는 것입니다. 불교사상의 핵심은 연기입니다. 모든 존재는 인연생기, 즉 인과 연을 따라 생기고 없어지고 한다는 건 다들 아는 사실인데, 이를 체득하지 못하니 제대로 살아내기가 어렵게 되는 것입니다. 연기법칙을 믿지 않으면 제아무리 삭발염의를 한들 진정 부처님 제자라 할 수 없습니다. 인과를 안믿는 것이지요. 연기란 한마디로 모든 존재는 관계로 구성된다는 진리입니다. 영원불변하는 실체란 없다는 가르침입니다. 무아지요. 쉽게 말해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어야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좋은 사람이 그냥 홀로 뚝 떨어지는 게 아닙니다. 너와 나의 관계 속에서 비로소 좋고 나쁨이 있습니다. 이걸 모르고 사람들은 제 혼자 잘 난 줄 압니다. 결국 제 꾀에 재가 속는 줄을 모르고 말입니다. 어리석음입니다.- 종단의 기강이 흐려질수록 사정원의 역할을 더 무거워진다고 하겠습니다. 무거워지는 만큼 일하기도 힘들어지겠지요.= 중앙사정원장 소임을 맡은 계기는 호천이었지만 이왕 할 일이라면 제대로 하자는 결기는 확실히 세웠습니다. 일각에서는 걱정도 하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트집도 잡고 그럽니다만 그럴수록 더 각오를 다질 참입니다. 옛부터 사정(司正)에는 추상(秋霜)이라는 말이 따라다녔습니다. 가을 서릿발을 말하는데, 저는 서릿발이되 날선 서릿발이 아니라 투명한 서릿발이 되고자 합니다. 공명정대해야 파사현정(破邪顯正)합니다. 종단 미래를 위해 위법망구(爲法忘軀)정신으로 진력하겠습니다. 종단 바른 모양 만들기에 일조할 수 있는 기회를 오히려 감사합니다. - 끝으로 종도들에게 당부말씀이 있다면.= 저는 우리 종도들의 애종심을 굳게 믿는 사람입니다. 그걸 믿지 않았다면 사정원장에 나서기도 어려웠을 겁니다. 다들 현 종단 상황을 안타까워 하며, 동시에 부처님 지혜를 찾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서 딱히 뭐라 이를 말이 있겠습니까. 다들 비 온 뒤 땅 굳는 다는 믿음으로 지혜와 힘을 모아야지요. 다만 한 마디 덧붙이자면 어려운 난국일수록 모두들 공부에 좀 더 정진했으면 합니다. 내외전 모두 소홀히 해서는 안됩니다. 세상 돌아가는 꼴에도 무심해서는 안 될 것이구요. 그래서 진정 시대의 스승으로 우뚝 서야 종단 위상도 곧추 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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