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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62(2018)년 11월 19일 월요일
충담대선사 소신공양 20주년 추모영산재
충담대선사 소신공양 20주년 추모영산재
  • 한국불교신문
  • 승인 2018.06.11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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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종 호명산 감로사 (주지 지산지성 / 원로의원 / http://kamrosa.com / 홈페이지 ) 는 6월17일 오전11시 한국불교태고종 승정 충담당 원상 대선사 소신공양 20주년 추모영산재 및 조상 천도재를 봉행한다고 밝혔다.

충담스님 소신공양 원력은 평소 1.남북평화통일.2.불교의 흥륭 3. 고통받는 중생의 아픔을 모두지고가시겠다는 구제중생이다.

태고종 원로의원 지산지성 스님은 최근 두 차례 남북 정상이 판문점 대화 와 북미정상회담 을 예상할 때 스님의 원력이 실현될 수 있는 기운이 움트고 있음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이번 스님 추모 영산재에서는 충담스님 소신공양 원력과 남북평화통일 그리고 불교흥륭 방안으로 학술발표를 진행한다.

법사: 논산 안심정사 회주 철학박사 법안스님(BTN,BBS 출연)

일시: 2018년 6월 17일(일요일) 오전11시

장소: 경기도 가평군 청평면 우무내길 210 호명산감로사 (승가사)

전화: 031)584-0117, 010-3722-3418

충담대화상 문도회 회장 원산묵원 합장

충담대화상 문중 명예회장 도산도성 합장

호명산 감로사(승가사) 신도회장 정영희 합장

호명산 감로사(승가사) 관음회장 이인용 합장

<충담대종사는 어떤 분인가>

“조국평화통일,고통받는 중생구원, 불교흥륭 불국토 구현” 대원력

충담대종사는 열반 한 해 전인 1997년 평소 수지하던 정토삼부경을 역해한 역해본을 간행하며, 그 머리말에서 스님의 수행과정과 소신공양 발원에 대한 의지를 선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 일부를 발췌해 대종사의 수승한 면모를 엿보고자 합니다.

“나는 구한말 나라를 빼앗긴 지 3년이 지난 계축년 경기도 가평 땅 솟틀이란 산골에서 가난하지만 엄격한 유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소년시절 성균관 박사인 부친으로부터 출가 전까지 한학을 수업한다.) 열일곱 소년 시절 긴 머리 칭칭 따고 짚세기신고 걷고 걸어 먼저 스님이 되신 형님 따라(故 廷秀堂 大禪師) 한양에 올라와 삼각산 승가사에서 중이 되었다.

한강 상류로부터 마포나루를 지나 임진강에 이르기까지 행각정진을 하였다. 젊은 시절 고국을 떠나 만주 벌판에서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조국광복을 기원하고 쏟아지는 밤하늘별을 바라보며 부처님 광명이 날로 더하고 법의 바퀴 항상 구르게 하여 만 중생이 행복하기를 기원하였다.

을유년 8월 나는 아리랑 고개를 넘으며 백중마지를 마치고 왕십리로 오는 길에 형사에게 붙들렸다가 해방을 맞았다.

동족상잔의 한국전쟁 때도 산더미 같은 시체 속에서 지금의 서울대 병원에서 염불독경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휴전이 되자 평화통일 염원과 만 중생이 행복하기를 기원하는 도량을 가평 호명산 감로암에 토굴로 마련했다.

당시만 해도 호랑이가 산신을 대신해서 간혹 나타나던 때이다. 그러나 감로암을 창건할 때 호랑이는 나를 지켜주는 옹호신장 바로 그것이었고 용신은 약수를 철철 넘치게 뚫어주었다.

4.19, 5.16을 모두 겪었다. 신군부의 10.27법난 때는 그들은 총칼을 장전하고 한밤중 나의 암자까지 수색을 자행했다.

그러나 그보다 마음이 더 아픈 일은 불교분규다. 어지 그럴 수가 있는가. 위정자들의 정쟁에 휩싸여 타의에 의해 흔들린 불교분규이다.

출가 비구나 출가 보살승 모두 한 부처님 제자가 아닌가. 이제 50이 넘는 종파가 우후죽순으로 널리어 어찌 승풍을 진작시키고 삼보를 호지하고 정재와 교권을 수호하겠는가.

하루속히 태고보우 원증국사의 단일문손으로 제종통합 원융회통의 정신이 실현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부처님 말씀을 수없이 써내려 오던 중 나도 모르게 유서 아닌 유서를 쓴 일이 있다. 아니 나의 권속과 신도들에게 한 당부의 말이다.

그 내용은“ 이 몸을 불살라 여래께 공양하리라. (대종사는 이를 공개하는 이유 세 가지를 밝힌다.) 공개적으로 알리어 여법하게 소신공양 할 것이니 협조를 바라노라. 그리하여 이 나라 분단된 국토가 하나 되고, 사회가 안녕하며, 헐벗고 괴로운 이 없어지며, 불국토 앞당겨 이뤄지기를 간절히 기원한다.”라고 쓴후 그해 오월 단오 날 소신공양하기로 마음을 굳히었다

원두막 같이 나무를 쌓은후 산불을 방지하기 위하여 철그물을 덮어놓고 안에 들어가 불만 댕기면 소신할 준비를 다해 놓으셨다.

스님에 상좌와 신도들이 나무를 모두치우고 아니 된다고 하니 역정을 내시며 나를 좀 도와달라고 하신다.

억지로 서울 왕십리 승가사로 모시고 올라갔으나 그로부터 한 달후 윤오월 초 나흔날 새벽 스님은 택시를 타고 홀로 호명산 감로사 미륵부처님이 굽어보고 있는 자리에서 소신공양을 감행 하였다.

이는 법화경 약왕보살본사품에 일체중생희견보살이 현일체색신삼매를 증득한 이후 일월정명덕부처님께 소신공양한 것과 같이 순수한 불교의 신앙심으로 언어도단 심행처멸의 경지에서 한국불교1700년 역사에 최초로 이룩한 불속에서 연꽃을피우고(화중생연)살아있는 육신으로 등공한 최초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