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임무유공자회는 특수임무와 관련하여 조국을 위해 스스로 특별한 희생을 한 특수임무유공자들의 희생과 업적을 기리고 그들의 명예를 선양하는 한편 궁극적으로는 국민의 애국심 함양과 국가의 정통성 확립, 국가발전 및 조국의 평화적 통일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분들의 모임이다.

2008년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모임이 대한민국특수임무유공자회로 통합되었으며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금년에는 제16회 현충재부터 3년 동안 진행하는 사업으로 특수임무와 관련하여 조국을 위해 스스로 특별한 희생을 한 특수임무유공자들을 기념하고 추모하며 우리의 숨은 영웅들을 위한 현충재를 봉행했다.

현충재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산화하신 애국선열과 충의 장졸의 충정을 기리기 위해 인천광역시 지정 무형문화재 10-1호 범패와작법무 보존회가 매년 현충일에 현충재 문화 행사로 봉행하고 있다.

현충재에서 봉행되는 범패는 최치원 선생이 쓴 대공탑 비문에 의하면 신라 진감선사가 중국에서 수학하고 귀국할 때 배워온 것으로 진리를 노래하고 불덕을 찬탄하는 음성공양으로 인천에서 그 전통의 맥을 잇고 있다.

작법무 즉 불교무용의 기원은 원효스님이 효시가 되어 삼국통일 이후 생활고에 찌든 홀어버이와 고아 등 전장 희생자들에게 삶의 희망과 의욕을 갖게 한 것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작법무 가운데 바라춤의 처음은 신문왕 2년(682) 감은사 사리기의 바라를 치는 모양의 조각이라고 할 수 있다.

장고 치고 피리를 부는 옆에 바라를 두 손으로 치는 듯이 들고 있는 모습이다. 고려시대에는 요발과 향발무로 이어지고, 조선시대에는 태조대왕 7년 (1398) 5월 10일 왕이 용산강(지금의 한강)으로 친히 거둥하여 인천 강화 선원사로부터 대장경판을 운반하는 것을 지켜보았다는 내용이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실록에 의하면, 그 다음날에는 비가 오는데 2,000여명의 군사가 지천사(支天寺: 현재 서울시청 건너편 모 호텔자리)로 경판을 옮길 때 오교양종(지금의 전 종단)의 승려들이 독경을 하며 경함이운(經函移運)을 봉행하였다.

향로를 앞세우고 북을 치며 취타를 부는 의장대를 따라서 대장경 이운의식을 할 때 요잡바라와 명발 바라춤 등이 봉행되어졌는데 이때가 인천에서의 범패와작법무가 처음 봉행되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구양사 주지 김능화 스님은 전통의 맥을 이어서 범패와 바라춤, 나비춤, 법고춤 등을 사사·이수하여 인천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로 지정을 받았으며 인천 대부분의 사찰에서는 현재까지 재 의식을 봉행하고 있다.

바라춤의 인천적인 특색은 첫째, 역동성에 있다. 역동적인 힘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인천 바닷가의 힘찬 기상을 바라춤에서 엿볼 수 있다.

둘째로 역사성을 말 할 수 있는데, 조선 태조대왕 7년의 경함이운식을 봉행한 것을 들 수 있다. 셋째로 춤사위의 정교한 멋과 장엄한 동작과 절제미는 다른 지역과 구별된다 하겠다.

넷째로 지역특성에 맞게 호국영령의 위령대재와 수륙대재에서 봉행되었고, 봄에 거행되는 현충재(顯忠齋)와 가을에 거행되는 월미헌화(月尾獻花)에서도 봉행되고 있다.

매주 월요일 2시 ~ 6시 동국대학교 평생교육원 수업과 매주 수요일 2시 ~ 6시, 토요일 2시 ~ 6시 인천무형문화재전수교육관에서 범패와작법무 전수교육을 예능보유자 능화스님과 제자들이 직접 강의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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