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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62(2018)년 10월 22일 월요일
[인터뷰] 활안스님 상락향 조실, 한국의 부루나존자
[인터뷰] 활안스님 상락향 조실, 한국의 부루나존자
  • 원응스님
  • 승인 2018.05.09 14: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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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2백 권, 현재는 상락향에서 화두공안과 씨름

 

활안스님은 한정섭 법사로도 더 잘 알려져 있다. 60년대부터 포교활동을 해왔고 ‘불교통신대학’을 운영 수많은 사람들을 불문으로 이끄는 관문 역할을 했다. 요청하면 어디라도 달려가는 포교사였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조계산 송광사 임기산 큰스님 문하로 축발을 했고, 동국대 불교대학을 졸업했다. 졸업하자마자 포교일선에 나섰다. 한동안은 한정섭 법사로 활동했다. 틈틈이 써온 책은 현재 무려 2백 여 권이 된다. 80세가 훨씬 넘었지만, 60대로 보일정도로 젊음이 넘치고, 활력이 있어 보인다. 15여 년 전부터는 남방에 가서 비구생활도 경험하면서 방포원정(方袍圓頂=승려)의 모습으로 되돌아가서 지금까지 상락향에서 주석하고 있다. 일주일에 한번 정도 청량리 소재 금강선원에서 ‘선문염송’강의가 있어서 서울에 오신다고 했다. 수년만에 전화 연결이 되어서 필자가 지금 총무원에 있다고 하니 단숨에 달려오셨다.

편백운 총무원장스님 취임격려도 할 겸 해서 오셨는데, 원장스님은 마침 지방 출장 중이어서 전화통화만 하셨다. 총무원에 오신 김에 몇 말씀 나누자고 했더니, 자연스럽게 응하셨다.

원응 주필: “요즘 근황이 어떠하신지요?”

활안 스님: “송광사에서 일찍 머리를 깎았다가 동대 다닌다고 서울 올라와서 머리를 다시 길렀어요. 50여 년을 법사로 활동하다가 이젠 이만하면 됐다 해서, 태국 가서 비구생활 좀 경험하고 와서는 삭발염의의 모습으로 살고 있습니다. 주필스님(원응)도 태국에 함께 있었지만, 태국 승 왕 문하에서 빨리어로 독경하면서 탁발을 하는 등, 남방 비구스님들의 공동체 생활을 경험한 것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태국서 귀국해서는 이곳 법륜사에서 덕암 종정스님께 건당입실을 해서, 저도 대륜 문도가 되었습니다.”

원응스님: “그동안 전국 방방곡곡 다니면서 포교활동을 하셨고, 저서만도 2백 여 권이나 될 정도로 열정적으로 포교를 하셨는데, 무슨 특별한 포교신념이라도 있었는지요?”

활안스님: “제 고향이 목포 쪽입니다. 어려서는 교회에 나갔어요. 그런데 하나님 어쩌고 해서 ‘이건 아니다’는 생각이 들어서 학교를 마치고는 곧 바로 송광사로 갔었지요. 강원에서 한문을 배우면서 도대체 감이 안와요. 그런데 스님께서 서울 총무원에 원장으로 선출이 되어서, 시봉한다고 따라왔다가 종비 생으로 동대를 졸업하게 되었는데, 이때 생각하기를 참선공부도 중요하지만, ‘포교가 급선무다’라는 뜻에서 어려운 가시밭길을 걸어왔지요. 지나온 과정을 여기서 다 말할 수는 없고, 오직 포교한다는 신념하나로 버텨 왔습니다. 자연스럽게 포교하면서 불교교육도 하게 되고 이렇다 보니 교재도 만들어야 하고 법문할 자료도 준비하는 과정에서 다작이 되어서, 2백 여 권의 저서가 되었습니다.”

원응스님: “한동안은 방송을 통해서도 강좌를 하셨는데 인기가 제법 있었지요?”

활안스님: “그렇지요. 시대의 변화에 의해서 TV방송을 통한 포교의 영향과 여파는 너무나 크지요. TV방송은 불특정 다수가 시청하기 때문에 소규모의 인원 앞에서 하는 법문이나 또는 책을 통한 포교와는 차원이 다르지요. 많은 분들이 시청한 것으로 압니다.”

원응스님: “최근에는 활동을 줄이고 상락향 선실에서만 앉아 계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활안스님: “이제 나이도 80세가 넘어가니 기력도 한계가 있고, 말이나 글로써 에너지를 쓰는 것을 좀 줄이고, 묵언을 많이 하고, 화두공안을 들고 있고, ‘전등’ ‘염송’만 보고 있습니다. 아주 재미가 납니다. 주필도 내 나이가 되면 이런 참맛을 느낄 것입니다. 이제 좀 부처님 뜻을 겨자씨만큼 아는 것 같고, 조사님들의 서래밀지(西來密旨)를 봉투라도 열어 본 것 같아서 즐겁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에 만족하면 안 되고, 기력이 있을 때 조금 더 정진해야 한다는 각오로 매일매일 납자 정신으로 살고 있습니다.”

원응스님: “평생 불교공부하시고 포교하시고 이제 공안타파까지 하셨는데, 한 말씀 하셔야죠?”

활안 스님: “조주스님의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에 속고, 임제의 활(喝)에 속고, 덕산의 봉(棒)에 속아 왔다고 생각했는데, 다 방하착하고 본래면목을 살펴보니, 조사님들의 1700 공안이 다 헛말이 아니라는 것을 뼛속 깊이 철견(徹見) 했습니다. 그래도 한마디 사족을 단다고 하면,

‘돛단배 사공 춘풍을 만나니 화살처럼 날아가네, 돌(咄)!’

이라고 거량을 합니다.“

원응스님: “이제 입전수수(入廛垂手)의 자비심으로 한국불교신문에 뭔가 남기셔야죠? 현대판 고승전 같은 전기를 연재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활안 스님: “내가 만난 고승들을 한분한분 추억을 생각하면서 정리해 보겠습니다.”

활안스님과도 어언 40여년의 인연이 있지만, 모처럼 몇 년 만에 뵙고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한동안은 국제 활동도 함께 한 적이 있었고, 40여 년 전에는 필자가 <월간 불교> 편집장 할 때는 단골 기고필자이기도 했다. 인터뷰 하는 동안 필자의 느낌으로는 선교를 겸비하신 불문의 대종장(大宗匠)으로서 임제선가의 정안종사((正眼宗師)의 선기(禪機)가 넘침을 느꼈다. 앞으로 기고하실, 상락향 조실 활안스님의 ‘내가 만난 고승열전’이 기대된다.

대담: 원응<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