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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62(2018)년 05월 28일 월요일
기고 - 명상과 직관
기고 - 명상과 직관
  • 한국불교신문
  • 승인 2018.04.30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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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이 건강에 좋다고 하니까 너도나도 관심을 갖고 시도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물론 좋은 현상이다. 딴 짓 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건전한 정신수련을 하는 것을 그 어디에 비교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무조건 원칙도 없이 해서는 위험하다. 아무리 좋은 음식도 지나치게 포식하면 오히려 해로울 뿐이다. 인삼 녹용이 좋다고 한들 지나치게 많이 먹으면 안 된다. 적당하게 먹어야 명약이 되고 몸에 이로운 것이지 마구 먹어치운다고 해서 결코 득이 되지는 않는다.

명상의 세계도 마찬가지 논리가 적용된다. 명상을 안 하는 것보다는 하는 편이 더 이롭겠지만, 명상을 하는 데는 원칙을 알고 해야 사도(邪道)에 빠지지 않는다. 그래서 모든 명상을 하는 데는 이 원칙은 필히 적용된다. 3대 원칙이다.

첫째는 스승이다. 명상 스승을 잘 만나야 한다. 두 번째는 도반(道伴)이다. 셋째는 장소이다. 스승은 모든 분야에서 중요하다. 명상의 세계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정통(正統)으로 명상을 하는 분 밑에서 명상수련을 쌓아야 한다. ‘지도받을 스승’은 참으로 중요하다.

다음은 함께 수련하는 도반들이다. 서로 격려하면서 탁마상성(琢磨相成)해야 한다. 도움이 안 되는 도반은 필요가 없다. 시기나 질투를 하거나 은근히 모함이나 음해를 하는 도우(道友)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신중하게 경계하여 벗을 만나야 한다.

셋째는 장소이다. 상당한 경지에 이른 사람에게는 시정(市井)인들 어떻겠는가. 그러나 초보자에게는 이 장소가 아주 중요하게 작용한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조용한 숲속이나 강가, 산속의 동굴이나 토굴 같은데서 명상 수련을 한다. 이런 장소에서는 혼자는 위험하다. 고참이 아니면 이런 토굴이나 동굴, 숲속에서 혼자 하는 것은 자칫 사도에 떨어지기 십상이다. 그러므로 초보자는 대중과 함께 수련을 해야 탈이 없다.

이런 명상의 3대 원칙도 결국에는 증(證)을 하기 위해서다. ‘증’이 없으면 백해무익한 명상이 되고 만다. 그 ‘증’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직관(直觀)’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다른 여러 말로 표현할 수 있겠지만, 이 직관이야말로 명상을 통해서 얻어지는 결과이다.

직관은 문자 그대로 바로 보는 것이다. 바로 보고 바로 아는 것이 직관이다. 눈치가 아니라 명상을 통해서 얻어지는 마음의 순수성과 청정성의 경지를 말한다. 마음이 순수하고 청정하면 모든 사물이 본성 그대로 나타나 보이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여시실상(如是實相)이라고 한다. 있는 그대로의 진리가 체현되는 것이다. <금강경>에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이라는 경구가 있다.

고도의 직관력이 없으면 이런 경지에 다다를 수 없다. 직관력은 그냥 지식같은 것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고통과 절제와 자기 수련이 없이는 체득해지는 것이 아니다. 명상이라는 투자가 없이는 이런 무형의 보배로운 금 까마귀(金烏)의 경지에 이르기가 어렵다고 하겠다.

                                                     보 검  <불이성 무문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