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8-08-14 16:04 (화)
   |   
불기 2562(2018)년 08월 16일 목요일
인 터 뷰 - 태고총림 선암사 칠전선원장 상명스님
인 터 뷰 - 태고총림 선암사 칠전선원장 상명스님
  • 한국불교신문
  • 승인 2018.04.17 15: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60여 년 전 출가정신은 지금도 변함 없어
선암사 칠전선원장 상명선사.
선암사 칠전선원장 상명선사.

호남의 명찰, 조계산 선암사는 언제 방문해도 싫증나지 않는 운치와 풍경을 느끼게 한다. 호남은 물론이지만, 전국에서 선암사만큼 가람의 고풍을 고수하고 있는 사찰도 드물지 않을까 한다. 이유야 어디에 있던지 선암사는 한국의 전통사찰다운 자태를 갖고 있어서 자주 가보고 싶은 사찰이다.

선암사는 계절마다 독특한 모습을 자아낸다. 겨울은 겨울대로 여름은 여름대로의 멋과 풍모가 아름답고 그윽한 향기를 풍겨준다. 지난 3월 하순쯤 갔더니 매화가 만발해서 장관이었다. 무우전과 칠전선원 사이에 핀 매화는 필설(筆舌)로서는 형언할 수 없는 선경(仙境) 그 자체였다.

태고총림 방장이면서 태고종 종정이신 혜초 대종사님을 친견하고 칠전선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선암사의 터줏대감 상명선사가 선원장으로 있는 칠전선원은 태고종 유일의 총림선원이다.

한 때는 걸출한 운수납자들이 이곳 칠전선원에서 공안과 씨름하던 선불장(選佛場)이었다고 한다. 선암사는 예로부터 선교율(禪敎律)과 염불진언(念佛眞言)이 강했던 사찰이었다. ‘50년대 불교정화란 미명아래 사찰들이 수난을 당하면서 선암사도 이런 시대의 파고를 비켜가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렇지만 강원과 선원만큼은 그래도 명맥을 이어갔고, 작금에 이르기까지 실 날 같은 한 가닥을 이어가고 있다. 그 중심에는 선원을 묵묵히 지키고 있는 선원장 상명선사가 버티고 있다.

상명선사는 불문에 들어 온지 어언 60여 성상이라고 한다. 1960년 십대에 동진출가했다. 출가본사는 백양산 백양사다. 백양사에서 고된 행자생활을 거쳐서 득도수계하고 백양사강원에서 사교를 마치고 영축산 통도사 강원에서 대교과를 마쳤다.

칠전선원 대문 안에 걸려있는 ‘世界一花祖宗六葉’이란 글이 쓰여있는 현판.
칠전선원 대문 안에 걸려있는 ‘世界一花祖宗六葉’이란 글이 쓰여있는 현판.

십대 때부터 훈습된 사문의 행의(行儀)는 60여 년 간 흐트러지지 않는 상명선사의 모습이다. 삭발염의(削髮染衣)와 방포원정(方袍圓頂)의 위의(威儀)는 항상 ‘상명스님’의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다. 상명선사가 선암사와 인연을 맺은 지는 40여년도 넘지만, 본격적으로 방부를 들이게 된 것은 1990년대 중반부터라고 한다.

총무원에서 태고총림 사무총장으로 발령을 받아서 선암사에서 살기 시작했고, 선암사의 산증인이며 선암사 수호의 일등공신이랄 수 있는 용곡스님에게 건당 입실하여 선암사 문중으로 적을 올리고 지금까지 살고 있다. 삼직소임과 주지직까지 역임하고 산내암자 감원을 거쳐서 10여 년 전부터는 선원장으로서 칠전선원 용상방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줄곧 수좌들과 실참실수(實參實修)를 하다가 최근 몇 년간은 건강이 좋지 않아서 선원장실에서 독참수행(獨參修行)을 한다고 했다. 노인불수(老人不修)라던가. 정진도 젊었을 때 해야지, 나이 들면 앉아 있기도 기력(氣力)이 딸린다. 하기야 상명선사는 태고총림 선암사에 주석하는 그 자체가 선원 생활이요, 정진이 아니랴.

조석예불 사시불공에 참례하고 세끼 밥 제대로 먹는 것만도 그대로가 수행이요, 참선이다. 요즘 같은 독살이 시대에 대중생활하면서 총림의 일원으로서 자리를 지킨다는 것만으로도 납자의 본분이 아니겠는가.

“지내는 데는 불편함이 없으신가요?” 라고 물었더니, 왈; “요즘 스님네들은 자비심이 부족해서…,”라고 말끝을 흐렸다. 상명선사가 절집에서 어른들을 모시고 살았던 시절과는 너무나 다른 세태의 변화를 느끼게 하는 대답이다.

칠전선원 입구에서… 사진 왼쪽부터 정선스님, 상명선사, 원응스님.
칠전선원 입구에서… 사진 왼쪽부터 정선스님, 상명선사, 원응스님.

상명선사의 출가본사인 백양사는 종정을 역임했던 큰스님들과 선교율(禪敎律)의 정상에 있었던 큰스님들이 많기로 유명한 사찰이다. 그런 큰스님들 문하에서 ‘중노릇’을 배웠다고 한다. 그때 배운 습의(習儀)가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상명선사를 지탱하고 있다.

선암사의 달마대사처럼 묵묵히 천년 가람을 지키고 있는 상명선사 같은 납자가 많아야 총림도 빛이 나고 태고종도 전통종단으로서의 권위가 서지 않을까 한다.

태고총림 선암사 칠전선원은 10여명 정도의 수좌들만 방부를 들인다고 했다. 오고 싶어 하는 납자들은 많지만, 수용시설이 이들을 다 받아들이지 못함이 아쉽다고 했다. 선암사가 지금 분규중이다 보니 재건축이나 수리마저 여의치 않다고 했다. 그야말로 조선시대 시설 그대로를 사용하고 있어서, 운치는 있지만 불편함은 있다고 했다. 나이 많은 노승이야 이런 불편함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요즘 신세대들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환경이라고 했다.

가뜩이나 출가자 수도 감소하고 있는 차제에 뭔가 신세대 출가자들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어 놓고 들어오라고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아쉽다고 했다.

칠전선원장 상명선사와 작별하려니 아쉬운 정감이 솟구친다. 여여하게 묵묵히 회상을 지키고 있는 상명선사의 법체 건안하시길 기원하면서 칠전선원 대문을 나섰다.

                                              조계산 선암사= 원 응(주필 · 동방불교대학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