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단채무 청산과 종단재산 찾기

편백운 총무원장 집행부가 출범한지 6개월 만에 거둔 성과는 종단채무 청산 완료이다. 지난 3월 30일자로 국민은행 채무 20억 원을 상환하고 누적이자 30억 원을 탕감 받음으로써 국민은행 채무는 0원이 되었다. 이미 본지 제675호(2018년 4월 3일자) 1면에 이에 대한 내용을 상세 보도했다.

지난 10여 년 간 종단의 발목을 잡았던 종단 부채는 종단을 완전히 수렁에 빠뜨리고 이로 인한 후유증은 종단의 몸살을 앓게했던 '악성 종양'이었다. 운산 전 총무원장과 인공 전 총무원장이 합작하여 종단이 봉원사 연지원 납골당 건립비용에 대한 국민은행 대출 보증을 서도록 야합한 것이 결국 종단이 채무자가 된 결과를 초래했다.

봉원사가 빚을 갚았다고는 하지만, 종단은 봉원사 연지원 남골당 건립에 따른 은행 보증을 섰다가 과정이 어떻게 전개되었던지 종단은 채무자가 되어서 은행 빚에 허덕이다가 종단은 만신창이 직전, 수년 만의 부채 족쇄에서 풀려나 정상화되었다. 자칫했더라면 종단 존립마저 흔들릴 뻔 했던 창종 이래 최대의 위기상황을 넘긴 것이다.

편백운 총무원장 집행부가 출범한지 6개월 만에 거둔 성과는 종단채무 청산 완료이다. 사진은 2017년 9월 28일 대불보전에서 열린 제 26대 총무원장 취임법회에서 편백운스님이 취임사를 하고 있는 모습.  한국불교신문 자료사진.
편백운 총무원장 집행부가 출범한지 6개월 만에 거둔 성과는 종단채무 청산 완료이다. 사진은 2017년 9월 28일 대불보전에서 열린 제 26대 총무원장 취임법회에서 편백운스님이 취임사를 하고 있는 모습. 한국불교신문 자료사진.

지난 제26대 총무원장 각 후보들의 선거공약에서도 종단부채는 단연 핵심 사안이었다. 각 후보들의 부채상환에 대한 대책을 꼼꼼히 읽어 보니, 그 해결방안이 대체적으로 대동소이했다. 다만, 편백운 후보만이 대출기관과 협의하여 부채삭감을 언급하고 있다. 각 후보들의 부채상환에 대한 대안도 설득력이 있다고는 하겠다. 그렇지만 부채삭감은 감히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 같다. 편백운 후보는 아마도 부채 삭감에 대한 어떤 자신감 같은 것이 있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고, 다소 무모해 보였던 공약이었을 것 같았으나, 결과론적으로는 부채탕감(삭감)을 이뤄냈다.

원금 20억 원의 상환은 믿는 데가 있었다고 할지라도 누적이자 30억 원의 전액 탕감이나 부분 삭감은 상상이 되지 않는 난공불락이었다. 하지만 당선되자마자 빚 탕감에 총력을 기울이고 백방으로 분주하게 움직이면서 좌충우돌 출구를 찾아서 무조건 앞만 보고 달린 결과, 취임 6개월 만에 쾌거를 이룬 것이다.

운산 전 원장이 빚을 낸 S상호저축은행 원금 5억 원과 누적이자 5억 5천만 원은 일단 동결하는 데에 당해 은행과 합의된 바 있어서 일단 빚 독촉은 받지 않고 한숨 돌리게 되었다. 언젠가는 해결해야할 부채이다. 이 부분에 대한 부채는 운산 전 원장이 장악하고 있는 재단법인 한국불교태고원 및 복지법인 등의 종단재산 환수에 의한 해결이다.

제 26대 총무원장으로 취임하면서 편백운 스님은 취임사에서 "종단발전의 가장 큰 장애로 등장한 종단 부채문제를 조속히 해결하고자 책임있는 관련 당사자와 재정 전문가로 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실효성 있는 대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불교신문 자료사진.
제 26대 총무원장으로 취임하면서 편백운 스님은 취임사에서 "종단발전의 가장 큰 장애로 등장한 종단 부채문제를 조속히 해결하고자 책임있는 관련 당사자와 재정 전문가로 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실효성 있는 대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불교신문 자료사진.

총무원 집행부는 주 채무청산이 해결됨에 따라서 유령화 된 종단산하 재단법인 한국불교태고원(천중사 등)과 종단복지법인 추적에 의한 법적 환수 작업을 시작했다. 본지 제 676호(2018년 4월 16일자)에 ‘재단법인 한국불교 태고원을 해부한다’라는 제목으로 합동취재반의 탐사 시리즈가 시작됐듯이, 이젠 전 종도의 염원인 ‘구상권 청구’라는 제 2단계 작업에 착수한 것이다. 구상권이란 무엇인가? 운산 전 원장과 인공 전 원장의 합작에 의한 종단채무를 당사자들이 변제하지 않고 종단이 대신 변제했기 때문에 이들에게 반환청구를 한다는 것이다. 민법상으로는 이렇다고 할지라도 우스운 것은 운산 전 원장은 자신으로 인해서 빚어진 종단채무를 종단이 갚아줬는데도 종단소유의 ‘재단법인 한국불교 태고원’을 장악하고 있다. 게다가 더 종도들의 분노를 사게 만든 것은 운산 뿐 아니라 ‘재단법인 한국불교 태고원’ 이사들이 태고종과는 전연 관계가 없는 자들이 법인이사로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가운데 종도들이 알면 가슴을 치고 통곡이라도 해야 할 태풍 급 뉴스는 운산 전 원장의 최 측근 상좌 가운데 한 사람의 이름이 버젓이 이사명단에 등재돼 있고, 막후 실력자로 법적권리를 행사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운산 전 원장이나 인공 전 원장은 이미 종도들로부터 심판이 끝난 사항이지만, 측근에 대한 실상은 아직 종도들에게는 깜깜이 상태이다.

    서울 · 경기 9개 교구 종무원 업무, 총무원 직할로 이관

종단의 기간조직인 시도교구종무원의 세분화로 인한 행정상의 비효율성에 대한 일선 종무원의 건의와 실상을 파악하여, 총무원 집행부는 정무적 판단을 내리고 서울 · 경기 교구 종무원의 종무일체를 총무원 직할로 이관했다. 서울 · 경기 교구는 기존대로 존치하고 다만 종무만 이관하여 분담금과 승려의무금 등은 총무원으로 직접 납부하고 있다. 총무원 집행부에서는 전 교구를 대상으로 지방 실정에 맞게 조정하려고 했으나, 1차적으로 서울 · 경기 교구를 먼저 시행, 정착시켰다. 종헌 · 종법상으로도 ‘정부의 행정구역에 준하여 1 광역시 · 도 1교구 (1종무원)를 원칙으로 한다’는 입법 취지에 맞게 통 · 폐합 내지는 개편함은 지역실정에도 부응하고 종법상으로도 큰 무리가 없다는 유권해석이지만, 지방교구의 여론 수렴을 위한 휴지기간이 필요하다는 인식이다.

총무원에서는 행정의 효율화와 신속성이라는 종도를 위한 종무행정이라는 모토아래, ‘일하는 종단, 봉사하는 총무원’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계획아래 말단 직원에서 총무원장스님에 이르기 까지 문턱을 낮추고 허리를 굽혀서 실무형 총무원이 되도록 한다는 각오이다.

김영근 회계사가 3월 21일 대구경북종무원 사찰 주지회의에서 종교인 과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국불교신문 자료사진.
김영근 회계사가 3월 21일 대구경북종무원 사찰 주지회의에서 종교인 과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국불교신문 자료사진.

      지방교구 순방과 종교인 과세 설명회

총무원 집행부는 지방교구와의 유대 강화와 스킨십이라는 차원에서 교구의 행사에 가급적이면 참석하여 종도로서의 일체감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또한 종교인 과세 지침을 지방교구 회의 일정에 맞춰 순회하면서 설명회를 갖고 교구의 실정 파악에도 노력했다.

지금 우리나라는 대통령 중심제이긴 하지만, 지방분권화에 의한 지방화 시대이다. 우리 종단도 이런 정치 행정체제에 맞게끔 종단의 조직과 종무행정체계도 지방분권화에 따른 체제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 지방교구 종무원장이나 종무원들은 지역사회와 스킨십을 넓혀가야 한다. 지방자치 단체나 각 사회단체와의 연대와 활동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 총무원 집행부의 방침이다.

총무원은 2월 26일부터 한국불교전통문화전승관에서 ‘종교인 과세관련 교육 및 종단현안 설명회’를 시작으로 4월 초까지 전국교구로 확대해서 실시했다. 안세회계법인(김영근 회계사)과 함께 전국 교구를 순회하면서 종교인 과세교육을 실시, 종도들의 이해를 돕는데 큰 역할을 수행했다. 김영근 회계사의 설명에 따르면 태고종의 현실에 맞는 종교인의 소득 수준의 안내와 사찰등록을 위한 기초자료와 절세를 위한 기초자료를 요청하였고 종도들은 이를 준비하여 제출하면 세무신고에 어려움이 없음을 이해시켰다. 지방순회에는 편백운 총무원장스님을 비롯해서 총무 · 재무 부장스님이 동행했다.

   동방불교대학의 정상화와 국제교류

종도교육과 연수는 너무나 중요한 종단의 중책과제이다. 편백운 총무원장스님은 종무행정도 중요하지만 교육과 연수는 행정 못지않게 종단의 중점 종책이라는 인식에는 절대적이다. 총무원장스님이 지방종무원장을 역임하고 중앙 총무원에서는 사회부장, 교무부장과 교육부원장을 역임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종도교육과 연수에는 남다른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다.

취임하자마자 각 사암 주지 연수교육을 릴레이식으로 실시했으며 중앙승가강원과 전법사 교육 등의 활성화에 심혈을 경주해서 어느 정도 궤도에 진입시켜 놓았다. 또한 학사마저 내놓고 전승관에서 명맥을 이어가던 동방불교대학을 정상화시켰다. 불교학과와 범패학과를 위주로 60여명의 학생을 모집해서 출석과 통신강의를 병행하고 있으며 다시 옛 동방불교대학의 명성을 되찾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인도, 몽골, 베트남, 태국, 방글라데시의 불교대학과의 학술교류 등을 통해서 국제화 시대에 부응하는 불교대학으로 성장시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베트남 국립 불교승가회 집행위원 틱낫투스님이 4월 6일 편백운 총무원장을 예방, 태고종-베트남 불교회와 베트남불교대학-동방불교대학과의 교류를 제안하고, 주한 베트남 사원 건립의 협조를 구했다. 사진 왼쪽부터 편백운 총무원장, 틱낫투스님, 원응 동방불교대학 총장. 한국불교신문 자료사진.
베트남 국립 불교승가회 집행위원 틱낫투스님이 4월 6일 편백운 총무원장을 예방, 태고종-베트남 불교회와 베트남불교대학-동방불교대학과의 교류를 제안하고, 주한 베트남 사원 건립의 협조를 구했다. 사진 왼쪽부터 편백운 총무원장, 틱낫투스님, 원응 동방불교대학 총장. 한국불교신문 자료사진.

편백운 총무원장 집행부는 해외불교와의 교류의 폭을 넓히고 국내 다문화 가정과 불자들에게도 한국불교문화 포교에 노력한다는 방침에 따라서, 1차로 국립 베트남 승가회와 베트남불교대학과 교류하기로 하고 4월 26일 베트남 호치민 현지에서 조인식을 가질 예정이다.

   종단기관지의 홍보와 문서포교 활성화

본종에서 발행하는 <한국불교신문>은 1988년 8월 15일에 창간된 본종 유일의 주간 신문이다. 지령 676호로서 30년을 기록하고 있다. <한국불교신문>은 종단의 유일무이한 기관지로서의 역할을 해 오고 있다. 신문은 그대로 현대사회의 사초(史草)로서의 역할을 한다. <한국불교신문>은 두 말할 필요도 없이 태고종의 사초이다. 지난 30년간의 기록 그대로가 현대종단사이다. 지난 30년간의 종단사적 사료가치는 너무 크다고 할 것이다.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의 기록을 남겼기 때문에 ‘태고종 재일본 총본사 금강사’가 종단에 등록했고, 종단에서 주지를 발령해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재단법인 한국불교태고원’ 또한 설립배경과 과정 그리고 총무원장이 당연직 이사장이라는 정관 내용을 알 수 있듯이, <한국불교신문>의 기록이 아니었다면 이런 지나간 사실을 어떻게 확인할 수가 있겠는가. 이처럼 종단의 기관지인 <한국불교신문>은 중요한 종단의 거울이요, 역사 수장고이다. 그러므로 <한국불교신문>이 범불교적이고 초 종단적인 기사보다는 태고종 위주의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취지에서 종단의 각 기관, 이를테면 총무원, 중앙종회, 호법원의 3원과 지방 시도교구종무원, 포교원, 동방불교대학, 전국비구니회 등을 망라해서 종단 각 분야의 활동과 소식을 보도하고 종단에 집중해야 한다는 기관지 발행의 기본 방침이다.

<한국불교신문> 창간 이전에 종단 기관지 역할과 기능을 했던 월간<불교>지는 지난 몇 개월간의 임시휴간을 끝내고 5월부터 속간한다. 월간<불교>는 종단의 보도나 뉴스보다는 태고종승 선양과 문서포교지로서의 기능을 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불교의 현대화, 대중화, 생활화, 포교화에 중점을 두고 교리 사상과 태고 국사를 비롯한 한국의 고승들에 대한 승전(僧傳)이나 근 ·현대 큰스님들 이야기와 승정 원로스님들의 근황 등을 소개한다는 편집방침이다.

<불교>지는 근 · 현대 한국불교와 함께 시작된 문서포교지로서의 기능을 하였고, 조선불교계의 모든 사상(事象)을 보도하는 거울과 같은 존재였다. 본종에서 발행하는 불교 잡지는 1924년에 창간된 <불교>지의 맥을 잇고 있다. 동국대학교 초대 총장을 역임한 석학 권상로 스님(1879~1965)이 1호부터 82호까지 편집을 맡았으며, 83호부터 108호까지는 만해 한용운 스님이 편집책임자였을 정도로 역사성이 있는 잡지이다. 이후 불교 잡지는 <불교>- <신불교>로 이어졌고, 태고종과 관련해서는 1959년 <현대불교>란 제호로 사간동 법륜사(현 한국불교전통문화전승관)에서 발행했으며, 1961년에는 제호를 <불교계>로 변경해서 발행하다가 태고종 창종과 함께 1970년 5월 4일 제호를 <불교>로 변경하여 현재까지 발행해 오고 있다.

    종도 화합과 태고종승 선양

편백운 스님은 제26대 태고종 총무원장으로 취임하자마자 태고종도 화합에 의한 총화를 선언했다. 종단이 부채에 휘말리면서 종단은 동요와 내홍 속으로 빠져 들어가면서 질서가 흔들리고 명예가 추락하기 시작했다. 운산 - 인공 총무원장 체제 12년간은 종단이 발전하기는커녕 종단과 종도에게 고통과 시련을 안겨주고 파국으로 이끌게 한 원인제공과 반 종단적인 종무를 집행한 과오를 범했다. 도산 총무원장 체제에서는 종단은 폭력사태까지 발발하게 되어서 그야말로 종단의 명예는 땅에 떨어졌고 ‘총무원장 구속’이라는 불명예를 종단에 안기고 말았다.

태고총림 선암사 대웅전에서 봉행된 종정예하 친견법회에서 혜초 종정예하가 법어를 설하고 있다. 태고종 종정이시며 태고총림 선암사 방장이신 본종의 정신적 큰 어른의 상징성과 권위에 도전하는 그 어떠한 불경에 대해서는 종단차원에서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 총무원 집행부의 방침이다. 한국불교신문 자료사진.
태고총림 선암사 대웅전에서 봉행된 종정예하 친견법회에서 혜초 종정예하가 법어를 설하고 있다. 태고종 종정이시며 태고총림 선암사 방장이신 본종의 정신적 큰 어른의 상징성과 권위에 도전하는 그 어떠한 불경에 대해서는 종단차원에서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 총무원 집행부의 방침이다. 한국불교신문 자료사진.

한국불교 양대 산맥으로 조계종과 쌍벽을 이루던 태고종은 한국불교종단협의회 활동에서도 급전직하 신생 종단에게 밀리는 수모를 겪지 않으면 안 되었고, 이로 인한 종단의 자존심은 말이 아니다. 이런저런 종단의 위상과 현상에서 탈출하기 위한 방책으로서, 편백운 총무원장 집행부는 종도 총화와 종승 선양의 기치를 들고 지나간 6개월간 가시밭길을 걸어왔다.

큰 물줄기에서는 종단이 안정되고 정상화 되었지만, 아직도 꿈을 깨지 못한 일부 종도는 과거의 구태의연한 사고방식과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허위사실 유포와 파당형성을 습관적으로 하고 있는 작태를 연출하고 있다. 큰 틀에서의 종도총화와 화합을 위해서는 최선을 다하지만, 일부의 불순세력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대응한다는 내부 방침이다.

태고종승 선양에 대해서는 태고종이 한국불교의 전통성 · 적통성 · 정통성을 계계승승한 종단이란 전제하에 태고종의 종통 · 종지 · 종풍 이념을 확고히 하여 종도들에게 정신교육을 함양하고 주지시킨다는 계획이다. 따라서 태고총림 선암사의 수호와 운영에는 종단적 차원에서 선암사와 공동보조를 취하면서 적극 협력하고, 태고종 종정이시며 태고총림 선암사 방장이신 본종의 정신적 큰 어른의 상징성과 권위에 도전하는 그 어떠한 불경에 대해서는 종단차원에서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 총무원 집행부의 방침이다.

 

   원 응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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