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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62(2018)년 04월 22일 일요일
만해 한용운 선사를 시봉한 동산스님
만해 한용운 선사를 시봉한 동산스님
  • 한국불교신문
  • 승인 2018.04.03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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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월스님의 법제자 동산스님(1914~2009).
혜월스님의 법제자 동산스님(1914~2009).

한국에 불교가 전래된 지 어언 1천 7백년이다. 불법이 인도에서 생긴 이래 중앙아시아를 경유하여 중국에 수용 된지는 2천년이다. 불교가 중국에서 한반도에 다다르게 되는 데 걸린 시간은 3백〜4백년이 되었다. 그만큼 하나의 종교가 다른 문화권에 전달되는 데는 장구한 세월이 소요된다. 그런가하면 이슬람 같은 경우에는 매우 급속하게 퍼져 나갔다.

이런 가운데 인도에서 이슬람과 불교가 충돌하면서 불교는 위기를 만났고, 결국 패배하여 인도에서 사라지는 종교가 되고 말았는데, 거의 8백년 만에 다시 살아나고 있다. 불교 하는 사람들, 특히 승단 구성원들은 어떤 사명감 같은 것을 가져야 한다. 자칫하다가는 한국에서도 불교가 큰 위기를 맞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하게 된다. 불교풍토가 너무 변해 버렸기 때문이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선각스님들의 활동과 언행에 관심을 갖고 모범적인 솔선수범에 영향을 받아야 한다고 본다. 한국불교 1천 7백년사에서 수많은 고승석덕들이 명멸했다.

그 가운데서도 조선말기, 근대기, 일제강점기를 살았던 만해 한용운 스님(1879~1944)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만해스님의 정신과 활약에 대해서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만해스님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나 많지만, 만해스님과 형사와의 사이에 얽힌 짧은 이야기 한 토막을 소개하고자 한다.

만공스님(1871~1946).
만공스님(1871~1946).

동국대 김광식 교수의 《우리가 만난 한용운》(참글세상 刊, 2010년 3월 1일)에 실린 이야기이다.

춘천 시내에 석왕사라는 절이 있다. 그 절에 주석하였던 동산 큰스님은 20여 년 간 머물면서 지역 주민들에게 불교를 널리 알리고 있었다. 스님은 1929년 수덕사에서 출가하였는데 만해스님과 친근한 만공스님의 가르침을 받으며 수행하였다. 그는 심원사와 송광사 강원에서도 공부하였지만, 만공스님을 시봉하고 금강산을 서너 번이나 다녀오기도 했다. 1930년대 초반, 하루는 만공스님이 서울의 선학원을 갈 때 따라 나섰다. 선학원에 도착한 그는 선학원 중창주인 적음스님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림살이를 담당하는 원주소임을 보았다. 그러는 중간에 적음스님의 하명으로 6개월 가량 만해스님의 시봉을 하게 되었다.

만공스님의 맏상좌 혜월스님.
만공스님의 맏상좌 혜월스님.

당시 만해스님은 조실 방에 머물면서 불교계의 유일한 잡지인 《불교》지 발간에 전념하고 있었다. 동산스님이 하는 일이란 만해스님의 일상생활이 불편 없게 하는 정도의 허드렛일이었다. 그가 본 만해 선사는 대쪽 같으면서도, 이따금은 부드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당시 선학원에는 만해가 독립지사였기에 일본인 형사와 한국인 형사가 들락거리며 ‘요주의’ 인물인 만해스님을 감시하였다. 그런데 일본인 형사는 만해스님에게 무례하지 않았으나, 한국인 형사는 만해에게 반말을 하고 뻣뻣한 태도로 대해 동산스님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산스님은 만해스님이 종로의 어느 강당에서 하였

만해 한용운 스님(1879~1944).
만해 한용운 스님(1879~1944).

던 강연회에 가보았다. 만해스님은 민족의식 고취, 조국의 독립을 위해 나아가야 한다는 내용을 은유적으로, 때로는 목소리를 높이면서 연설했다. 그 강연을 듣고 있던 한국인 형사는 발언의 수위가 높아지자 더 이상 참지를 못하고 단상에 뛰어 올라갔다.

그 순간 만해스님은 단상에 오른 그 형사를 향해 다음과 같은 말을 함과 동시에 발로 걷어 차 버렸다.

“이놈! 어딜 함부로 뛰어 다니느냐!!”

넘어진 형사는 식식거리며 일어나 다시 만해스님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한국인 형사는 일본인 형사에 의해서 밖으로 끌려 나갔다. 만해스님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강연을 예정대로 마쳤다.

동산스님은 2009년 4월 8일 96세를 일기로 덕숭산 수덕사에서 입적할 때까지 그때 지켜 본 만해스님의 일화를 가슴에 담았고, 간혹 사람들에게 전해주었다.

덕숭총림 수덕사가 출가본사인 편백운 스님(사진 오른쪽)이 2009년 5월 10일 수덕사를 방문해, 은사 동산스님이 만공 대선사로부터 전수받아 편백운 스님에게 내려준 홍 가사를 당시 덕숭총림 방장 설정스님에게 직접 전달하는 모습.         사진=석왕사 홈페이지
덕숭총림 수덕사가 출가본사인 편백운 스님(사진 오른쪽)이 2009년 5월 10일 수덕사를 방문해, 은사 동산스님이 만공 대선사로부터 전수받아 편백운 스님에게 내려준 홍 가사를 당시 덕숭총림 방장 설정스님에게 직접 전달하는 모습. 사진=석왕사 홈페이지

이상의 내용은 만해 연구 전문학자인 김광식 교수가 직접 면담 녹취하여 정리한 내용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동산스님이 바로 태고종 총무원장 편백운 스님의 은사스님이다.

편백운 총무원장의 은사스님은 수덕사의 동산스님, 법사는 금강산 유점사 출신의 남허 前 태고종 총무원장스님이다.

동산스님은 1914년 공주 출신으로 1929년 4월 덕숭산 수덕사에서 윤서호 스님을 은사로 득도, 1939년 7월 철원 심원사 강원에서 사교과를 수료하고, 41년 7월 송광사 강원서 대교과를 수료했다. 덕숭산 정혜사, 대전 심광사, 천장사 주지 등을 역임했으며, 만공스님의 맏상좌였던 혜월스님에게 건당 입실하여 법제자가 되었다. 말년에는 상좌인 편백운 스님이 주지로 있는 춘천 석왕사에서 주석하였다.

편백운 총무원장스님은 지난 2월 28일 서울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으로 조계종 총무원장 설정스님을 취임축하 인사차 예방했을 때에도 “총무원장 스님하고는 한 문중(수덕사)인데 비슷한 시기에 (태고종과 조계종) 총무원장에 취임하니 의미가 더욱 각별하다.”고 운을 뗀 뒤, 경허스님의 오도처인 천장암에서 은사스님인 동산스님을 시봉하며 살았던 이야기를 하며 태고종과 조계종의 뿌리가 같음을 상기시키기도 했다.

                                       원 응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