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심과 원력으로 회향합니다”“10년 대작불사를 원만회향하고 나니 불보살님 가피에 감읍할 뿐입니다. 결단코 내 힘으로 한 게 아닙니다. 오로지 한 곳으로 뜻을 모으니 신기하다 할 일들이 나도 모르게 일어나 결국 회향까지 하게 된 것입니다. 믿고 따라준 신도들에게도 큰 감사를 드립니다.”지난 10월 23일 일주문 낙성식 및 신중단 목불탱화를 봉안하며 10년 가람중창 불사를 회향한 영월 치악산 혜운사 정담스님은 그간의 사정을 이같이 요약했다. 정담스님은 1986년 봉천동 혜운사 창건을 모태로, 1994년 흙집 산신당 영월 혜운사를 창건하고, 1992년 약사불 조성, 1995년 미륵삼존불을 모신 데 이어, 2001년 대웅전을 무량수전으로 건립하며 본격 불사를 추진한다. 2003년에는 7층 석탑과 범종각을 세우고 2008년부터 시작한 일주문과 목조신중 탱화불사를 최근 마무리 함으로써 10여 년에 걸친 대작불사를 원만회향한 것이다. 현재 약 3,200평 부지에 자리잡은 혜운사는 2천여 평 밭에다 유실수 3백여 그루에, 더덕 고추 농사도 지으며 어엿한 자립기반을 조성했다. 만사가 그렇겠지만 시작부터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몸으로 터득한 게 있다. “불사는 원력과 신심으로 하지 재물로 하는 것은 아님을 절감했습니다. 바른 마음을 가지면 이난의 이해타산으로는 결코 짐작할 수도 없는 일들이 일어나 원만성사가 되는 걸 한 두 번 경험한 게 아닙니다. 모든 게 불보살님 가피라 고백할 밖에요.”정담스님은 강원도 정선에서 태어나 11세 때 어머니를 여의고, 서모의 구박을 못이겨 가출을 한다. 어찌어찌 떠돌다 영월 정암사 앞에 지쳐 쓰러진 것을 한 스님이 업어 데려간 게 절집과의 첫 인연이었다. 12살 동진출가였다. 노장을 따라 신흥사, 낙산사, 월정사 등을 떠돌다 노장과의 인연도 다하고, 1974년 덕암스님을 계사로 강원교구에서 본격 득도를 했다. 선암사를 거쳐 가리왕산에 들어가 토굴을 파고 독학으로 공부하는 등 용맹정진했다. 그즈음 서울 봉천동에 방 하나 얻어 사찰을 열었고, 연로한 조부모님과 속가 동생들을 위해 영월에 조그마한 땅을 마련했다. 젊어 한 때 큰 병에 걸린 적이 있다. 양쪽 다리가 퉁퉁 붓고 진물이 흘러 기동도 못할 지경이었다. 의사도 고개를 갸우뚱했다. 무조건 절에 데려달라고 했다. 기도 중에 부처님 말씀을 들었다. “참된 불제자로 오직 중생을 위해 살아라.” 절 뒷산 맨 땅에서 감로수를 얻는 이적을 경험하고는 다시 각오를 다졌다.“1991년 봉천동 혜운사에서 덕암스님을 증명으로 미륵불을 모신 그날밤 모친이 현몽했습니다. ‘이제서야 안심이니 이제부터는 스님 혼자서 잘 꾸려나가세요’. 그러시고는 사라지셨습니다. 그 이후 만사가 순조롭고 불사원력이 크게 일더군요.”10년 불사를 회향하고 나니 새로운 포부가 생겼다. “승려라면 촛대 하나라도 만들어 놓고 가리라는 불사원력과 사소한 중생고 하나라도 덜어주리라는 대비원력이 있어야 합니다. 결국 내외면으로 교화하려는 마음이 있어야 불교가 살아움직인다고 믿습니다. 욕심과 아망으로 공덕을 스스로 멸하는 어리석음만은 범하지 말아야지요.”그래서 정담스님은 늘 앉은 자리가 아름다운 사람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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