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파자파티 고타미의 출가정신 되살려야

  동아시아불교에서의 비구니 위상

전회에서 8경법을 언급했는데, 부처님께서 양모의 출가에 대해서 이런 여덟 가지의 조건을 내세운 것은 그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있다고 해석해야 한다. 핵심은 연약한 여성 비구니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처에서 발로된 조건이지, 비구의 종속이나 하위의 개념에서 단서조항이 붙은 것은 결코 아니라고 본다.

마하파자파티 고타미를 위시한 5백 명의 여인들이 비구니계를 받고 승가공동체를 형성하면서 비구승가의 보호와 지도를 받고 수행하게 됐다.

마하파자파티 고타미는 120세까지 생존했다고 하며, 모르긴 해도 비구니승가의 기틀을 구축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정확한 기록이나 언급은 없지만, 야소다라도 필시 입문해서 비구니가 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부처님은 코살라 국의 사위성에서 거의 25안거를 성만했고, 제따와나 사원 부근에 두 개의 비구니 암자가 있었고, 오후에는 가끔 이 두 곳의 처소를 방문했다는 기록이 있다. 아마도 마하파자파티 고타미가 있는 암자와 야소다라가 있는 암자를 방문해서 법문도 하고 여러 가지의 지도를 했지 않을까 시나리오를 엮어 본다. 사위성은 카필라와수투와도 가까운 지역이다.

회장 법정스님을 비롯 전국비구니회원들이 11월 19~ 29일 '부처님 8대성지'를 순례중 쉬라바스티 제따와나(기원정사)에서 기념 촬영했다.
회장 법정스님을 비롯 전국비구니회원들이 11월 19~ 29일 '부처님 8대성지'를 순례중 쉬라바스티 제따와나(기원정사)에서 기념 촬영했다.

불교가 중국에 수용되면서, 붓다의 이런 사생활적인 부분의 소개는 배제되었지 않았겠는가. 초기에는 도교의 이론이나 도사(道士)와 비교되는 격의불교(格義佛敎)가 전개되었기에 충분히 이해가 되는 전파과정이다.

불교가 중앙아시아를 경유, 중국에 수용되면서 이 8경법은 중국문화와 사회풍속의 영향을 받게 되고 기존의 남존여비 관념도 한 몫 하게 되지 않았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이런 8경법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인도에서는 비구니 스님들도 고승이 많이 배출되었는데, 우리는 《장로니게경(Therīgāthā, 長老尼偈経)》에 주목해야 한다. 빨리어 경장(経蔵) 소부(小部)에 수록되어 있다. 《장로니게경》에 의하면 비구니 큰스님들이 많다. 이미 부처님 당시에 이름 난 비구니 스님들이 많이 계셨고, 비구승가 못지않게 승가에 큰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숫자도 상당했을 것이다.

아소카 대왕 치세에 해외 전도단(傳道團)을 파견할 때도 스리랑카에는 아소카 대왕 친아들인 마힌다 비구가 파견되었다. 이어서 친딸인 상가미타(Saṅghamittā)가 보드가야에서 보리수 가지를 갖고 가서 심기도 하고, 비구니 승단을 형성하기도 했다.

지난해 9월 27일 이천 화계사에서 열린 전국비구니회 추계 연수교육에서 참선하고 있는 비구니스님들.
지난해 9월 27일 이천 화계사에서 열린 전국비구니회 추계 연수교육에서 참선하고 있는 비구니스님들.

스리랑카에선 약 1천년 이상 비구니 승단이 유지된 것으로 보는데, 1017년까지로 보고 있다. 비구니 맥이 단절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남인도의 촐라왕조(기원전 300∼1279)의 침입 때문이었고, 힌두 통치자는 비구 비구니 승단을 절멸시켜 버렸다. 여기서 길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스리랑카 승단은 버마에 전해 주었던 계맥을 다시 이어 왔고, 불행하게도 비구니 계맥은 재건하지 못했다.

스리랑카 비구니 승단에서는 기원후 429년 경, 비구니 데바사라가 중국에 상좌부 비구니 계맥을 전하기도 했다. 이 계맥은 아직도 중국에서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본다. 그렇지만 오늘날 동아시아에서 실존(實存)하고 있는 비구니 계맥은 담마굽타카(법장부)파의 <사분율>에 의한 계맥으로 알고 있는 것이 통설이다.

동아시아라고 하면 중국, 한국, 일본, 몽골 등이 중심 국가이다. 그렇지만 동아시아 불교를 범주화해 본다면, 중국 한국 일본이 동아시아 불교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지역적으로는 인도차이나에 속하지만, 베트남 불교도 동아시아 불교전통에 속한다. 물론 베트남에도 상좌부 불교가 있고, 비구들이 있지만, 현재 상좌부 비구니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동아시아에서 비구니승가가 합법적으로 살아 있는 것과는 다르게 계맥이 단절되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27일 화계사에서 열린 전국비구니회 추계연수교육에서 '자비명상' 대표 마가스님의 강의 중 '일체유심조' 설명에 열렬히 호응하고 있는 비구니스님들.
지난해 9월 27일 화계사에서 열린 전국비구니회 추계연수교육에서 '자비명상' 대표 마가스님의 강의 중 '일체유심조' 설명에 열렬히 호응하고 있는 비구니스님들.

연구에 의하면 상좌부 비구니계맥은 대체로 11세기에서 13세기 사이에 사라진 것으로 보는 데, 이미 앞에서 언급한 바 있다. 이런 이유로 해서 미얀마(버마)나 태국에서는 정식 비구니계를 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 나라의 최고승가회의에서는 비구니계를 받을 수 있는 동등한 권리를 부정하고 있다. 이들 나라에서는 정식 비구니 수계를 받을 수 없다. 승가회의(총무원)에서는 어떤 승려도 여성에게 비구니계를 준다면 처벌받는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정식 비구니계는 받을 수 없지만, 부처님 법을 따르고 수행하기 위한 자발적인 서원에서 8계나 10계 정도를 지키는 정도의 행자는 가능하도록 허용해 오고 있다. 비구처럼 의무적으로 수행하고 교육을 받을 권리나 의무 보다는 자발적인 행자의 입장이다. 이들은 하얀 색이나 분홍색의 행자복을 입는다.

스리랑카에서는 ‘다사 실 마타(dasa sil mata)’라고 해서 대개 8~10계를 지키면서 아나가리카(집 없는 자 =무소유)로서의 불법수행을 하는 여성들이 있다. 보통 ‘다사 실’이라고 부르지만, 정식 비구니는 아니다. 이런 ‘다사 실’ 행자의 역사는 비구니 계맥이 단절된 이래로 수백 년 전부터 존재해 왔다. 미얀마에서는 ‘띨라신(thilashin)’이라고 부르고, 태국에서는 ‘매치(maechi)’라고 부른다. 네팔과 캄보디아에서는 ‘구루마’라고 부른다.

'부처님 8대 성지' 순례 중 기원정사에서 참선에 든 전국비구니회장 법정스님.
'부처님 8대 성지' 순례 중 기원정사에서 참선에 든 전국비구니회장 법정스님.

스리랑카에서는 비구들의 가사 색과 거의 비슷한 승복을 입고, 미얀마에서는 분홍색, 태국에서는 하얀 색의 승복을 착용하고 있다. 태국의 경우, 비구들의 사원에서 비구들의 수행을 돕는 보조역할이나 신도들을 상대하여 외호 역할 등을 하면서 자발적인 수행을 한다. 미얀마도 대체로 비슷하다. 스리랑카도 마찬가지이다. 나라에 따라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동소이한 신분이다. 미얀마나 태국의 경우, 이 숫자가 수만 명에 이른다. 영국의 상좌부 사원에서는 ‘실라다라’라고 부르고 있다.

중국에서는 비구계맥이 서역에서 전해져 왔는데, 주로 법장부파의 <사분율>에 의해서이다. 정확한 연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이른 시기에 비구니 계맥도 중국에 전해졌고, 중국의 비구니 계맥은 자연스럽게 삼국(고구려 신라 백제)에 전해졌다. 신라의 법흥왕은 출가하여 법명이 법공(法空)이었고, 부인은 묘법(妙法)비구니였다.

여기서 한국불교의 비구니 계맥까지 논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고, 다만 인도-서역-중국-한국으로 전해진 법장부파의 <사분율>에 의한 비구니 계맥만큼은 분명하며 현재까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세계불교계에서 공인되고 있다.

동아시아의 비구니 정통계맥은 한국과 대만으로 집중되고 있는데, 20여 년 전 상좌부권의 비구니계에는 지각변동이 생겼다. 앞서서 상좌부의 비구니 계맥 단절에 의한 자발적인 여자 수행자의 실상을 소개했는데, 그런데 최근 20년 사이에 엄청난 사건이 발생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스리랑카에 정식으로 비구니 승단이 생기고, 이 여파는 태국과 서구, 그리고 인도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들 지역에 정식 비구니 승가가 형성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면 상좌부에서 비구니 계맥이 단절됐다고 했는데, 어떻게 해서 비구니 승가가 재건되었는가 하는 소식이다. 이 배후에는 한국 비구니계맥이 있었고, 한국 비구니 계맥이 전수되었다. 다음회에서 ‘한국불교와 태고종의 비구니’란 소주제를 갖고 담론을 더 해 보기로 한다. <계속>

                        원응 스님(논설위원)

원응 스님.
원응 스님.

 

 

 

저작권자 © 한국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