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고종 총무원은 12월 7일 한국불교전통문화전승관 3층 대불보전에 중앙율원 금강계단을 설치하고 제16차 구족계 수계산림을 봉행했다. 이에 앞서서 수계산림의 전계아사리 해동 율맥 전수자 수진 대율사는 이날 구족계를 받는 사미 70명 사미니 36명 등 총 106명에게 ‘율의(律儀)’ 강의를 하고 구족계를 설했다. 강의 내용을 논설위원 원응스님이 정리. 요약하면서 자신의 견해를 첨가했다. 2회에 걸쳐 연재한다.<편집자 주>

강의 제목: 비나야장의 요체(毘奈耶藏의 要諦)

사실, 한국불교에서 종조문제나 계맥을 담론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과제이다. 많은 논란과 시비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소지가 다분하고, 결론을 쉽게 내릴 수 없는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한국불교의 뜨거운 감자라고 할 수 있는 종조.율맥 문제는 가능하면 거론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지금 여기서 다루는 주제가 ‘율장의 요체’이기에 율맥 문제는 비켜가기가 어려운지라, 율장에 의한 율맥에 대하여 일반적인 내용을 소개하고, 본론인 도월 수진 율사의 강의 2부를 정리.요약 하고자 한다.

도월 수진 율사께서 저술하신 《비나야장의 요체(毘奈耶藏의 要諦)》에서 이미 자세하게 서술하셨기에, 더 이상 중복된 소개는 피하기로 하겠다. 다만 부처님으로부터 시작된 계율이 한국불교에 이르는 과정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서 오늘날 한국불교에 정착되었는가 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계율은 재론의 여지없이 부처님으로부터 발설(發說)되었다. 부처님이 의도했던 계율의 정의는, 1. 앞장서서 모범(솔선수범)을 보여라 2. 교육 3. 규율에 의한 훈련(수양)이다. 부연해 본다면, 우리는 계율이라고 하면 ‘무엇 무엇을 하지마라’란 금지적(禁止的)인 것만을 먼저 생각하는데, 부처님이 의도했던 계율은 사문(비구)들이 솔선해서 먼저 바른 행동이나 행위의 모범을 보이라고 말씀하신 것이고, 또한 교육을 받으라는 것이었다. 책상에 앉아서 책을 펴놓고 공부하라는 의미라기보다는 ‘교육적인’ 즉 ‘심전계발(心田啓發)’을 강조하신 것이다. 그리고 사문들에게 규율에 의한 훈련과 수양의 의미로 계율을 설하신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선입견(先入見)을 갖는 것은, 무조건 ‘무엇 무엇을 하지마라’라는 금지사적(禁止辭的) 어조(語調)가 아니었음을 먼저 간파해 내야 한다. 도대체 승가에 입문하는 모든 사문들은 문제아들이었단 말인가. 아마도 이런 계율에 대한 개념과 정의가 시간이 경과하면서 ‘금지적이고 〜하지마라’ 식으로 변천된 것으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추측된다. 계율에 대한 본의가 금지적으로 강조된 것은 제 3차 결집(結集)때 부터라고 보는데, 3차 결집은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카 대왕의 주선에 의해서였다. 결집에 대한 담론만도 많은 시간이 요하지만, 3차 결집의 배경은 한마디로 당대 승가의 혼란에서 비롯되었다. 경율(經律)의 자의적인 해석과 계율에 대한 진보적인 입장 때문이었다. 또 하나의 근거로서는 사이비(似而非) 사문(비구)이 많아서 승가가 통제 불능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3차 결집의 긴 이야기는 생략하고, 결론부터 말하면, 근본승가가 여기서부터 분열하게 되는 단초가 되었다.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Sarvāstivāda)와 분별설부(分別說部; Vibhajyavāda)가 그것이다. 이런 상세한 문헌적 근거는 당시 3차 결집의 증명 법사였던 목칼리뿌따 띠사(Moggaliputta Tissa (327 BC–247 BC)의 《까타와뚜(Kathāvatthu:論事》에 잘 나타나 있다. 한국불교의 율맥의 뿌리 찾기를 위해서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불교의 율맥은 분별설부의 맥에 이르게 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분율>은 법장부(法藏部:Dharmaguptaka) 파의 소의율장(所依律藏)이다. 법장부파는 화지부(化地部;Mahīśāsaka)에서 분파했고, 화지부는 분별설부에서 파생한 부파이다. 물론 소수의견이 있긴 하지만 법장부파는 화지부에서 화지부는 분별설부에서 파생한 것이 통설이다. 분별설부는 부처님 승가로부터의 적통 부파이다.

이렇게 본다면 동아시아 불교 이른바 중국 한국 일본에서 의지한 율장은 <사분율>인데, 이것은 법장부파의 <율장>이다. 법장부파가 근본율장과 화지부의 <오분율>에서 다시 편집한 율장이 <사분율>인 것이다. 율장의 전체 내용이 네 부분으로 나뉘어 있으므로 <사분율>이라고 말하는데, 제1분(分)에는 비구 250계(戒), 제2분에는 비구니 348계(戒)와 수계건도(受戒犍度), 설계건도(設戒犍度) 등 4건도 제3분에는 자자건도(自恣犍度), 피혁건도(皮革犍度), 의건도(衣犍度), 약건도(藥犍度), 가치나의건도(迦絺那衣犍度) 등 14건도, 제 4분에는 방사(房舍), 잡건도(雜揵度), 결집(結集), 조부(調部)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건도란 용어는 불교경론(經論) 중에서 편(篇).장(章) 부문을 이르는 말이다.

여기서 길게 설명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한국불교의 율맥의 뿌리 찾기에서 필히 거쳐 가야할 과정이기에 짚고 넘어가는 것이다. 자, 이제 법장부파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 해보면,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법장부파는 지금의 테라와다(상좌부)와 뿌리가 같다. 사실, 테라와다도 분별설부에서 생긴 부파가 지금까지 살아남아서 생긴 것인데, 스리랑카의 상좌부가 동남아시아에 전파된 것이다.

이 법장부파는 주로 인도 서북지역인 지금의 인도 파키스탄 지역으로서 콘칸, 구자라트, 카티아와르반도, 구자라트의 쿠치, 카라치의 신드 주 등지에서 활동했던 부파이다. 법장부파는 나중에 이란지역으로 확장해서 중앙아시아-서역을 거쳐서 중국에 이르게 된다. 불교가 인도에서 동점하는 과정에서 페르시아(이란)-중앙아시아-서역-중국 루트와 인도-간다라-카시미르-파미르-서역-중국의 루트 등으로 전파되었는데, 이들 지역에서 구족계(비구.비구니)는 법장부파의 율장인 <사분율: Caturvargika Vinaya>에 의지해서 수계의식이 행해졌던 것이다.

참고로 세계불교계는 지금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 등 상좌부는 테라와다(上座部)의 <근본율장>을 소의로, 동아시아의 중국 한국 대만 베트남은 법장부파의 <사분율>을, 티베트.몽골 등 바즈라야나(金剛乘)는 근본설일체유부의(根本說一切有部:Mūlasarvāstivāda)의 <율장>을 소의로 하고 있다. 일본은 율종이 있기는 하나, 전반적으로 계율에 의한 율맥이 단절되었다고 본다. 일본 각 종파는 나름대로 수계절차와 의식이 행해지겠지만, 세계불교계에서 인식하기로는 계율이 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여기서 하나 첨가하고 싶은 말은,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동아시아에서 법장부파의 정통율맥은 한국과 대만의 비구니계맥만이 확실하다는 설이 유력하게 대두되고 있다.

각 부파에서 수하는 가사와 가사 색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파르티아(이란) 출신의 안세고(安世高)가 기원후 148년에서 170년 사이, 중국에 와서 《대비구삼천위의(大比丘三千威儀)》 란 책을 저술하였는데, 이 책에 인도의 5대 부파의 가사와 가사 색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다. 나중에 인도에서 사리뿌트라빠리빠차(Śāriputraparipṛcchā)란 비구도 와서 번역했는데, 내용이 비슷했다고 한다. 이 분들의 저술에 따르면 법장부파의 비구들은 진홍색 가사나 검정색의 가사를 입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검정색을 치의(緇衣)색으로 해석하여 검은색도 붉은색도 아닌 회색에 가까운 색으로 보고 오늘날과 같은 승복 색이 된 것 같다. 하지만 법장부파의 비구들은 짙은 홍색의 가사를 입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송나라 때의 찬령(贊寧 919-1001)은 《宋高僧傳》에서 한나라 위나라 때는 비구들은 홍 가사(紅袈裟)를 수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당나라 때는 치의 색의 가사를 수했다고 하는데, 이마도 이것은 황제의 정복인 곤룡포가 누런빛이나 붉은빛의 비단으로 지었었기에, 이 색을 피하기 위하여 치의 색으로 입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고승들이나 경성(京城)과 멀리 떨어진 벽지에서는 한나라 때의 승복과 가사를 수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녹라의상 홍 가사’라고 해서, 장삼이나 승복은 푸른색이었을망정 가사는 홍 가사를 고수했던 것이다. 태고종의 가사가 홍 가사이므로 법장부파의 본래 가사의 맥을 잇고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다만 법장부파에서는 가사를 18개의 조각을 넘지 않는 헝겊을 반드시 바늘로 기워서 만든 가사를 수하도록 되어 있다.

중국에서는 나중에 여러 부파의 율장을 번역해서 5대 광율(廣律)이라 하여 연구하였지만, 구족계의 텍스트는 법장부파의 <사분율>에 의지했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동아시아의 법장부파의 <사분율>은 지금 동남아시아 상좌부나 티베트불교의 율장과 뿌리가 같은 것이다. 가사 색은 전통과 정통 법장부파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할지라도 장삼 그 자체나 승복 색에 대한 변화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고 하겠으며, 도월 수진 율사의 강의 2부를 정리.요약한다.

<강의>
그때 율맥전수를 받기 위해서 100일간 묵언수행 기도를 하면서, 이래서는 안 되겠다. 내가 명색이 율사인데, 계율 책이라도 하나 제대로 남기자는 발원에서 이 《비나야장의 요체(毘奈耶藏要諦)》를 저술하게 된 것입니다. 저에게 계맥을 전수하신 혜은법홍(慧隱法弘:1915-2003)율사는 본래 가야산 해인사 출신 큰 스님이십니다. 일본유학도 하신 분인데 일본 모 종단에서도 법계가 아주 높은 큰스님이었습니다. 묵담 노사께서는 아마도 제가 나이도 어리고 손주 상좌여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혜은법홍 율사에게 율맥을 전수하셨고, 법홍 율사께서는 저에게 율맥을 전수해 주셨습니다.

이 텍스트 강의의 내용을 하나하나 강의하려면 시간이 부족합니다. 여러분께서는 이 책에 정리가 잘 되어 있으니, 정독해 보면 율맥사의 줄거리가 대강 정리되리라 믿으면서 중요한 대목만 한 번 보도록 합시다.

계율이란 심계(心戒)가 더 중요합니다. 신계(身戒)만이 계가 아닙니다. 몸으로 악을 짓지 않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마음으로도 제악(諸惡)을 짓지 않는 것은 더욱 중요한 것입니다. 계(戒)란 마음의 발로에서 나온 질서입니다. 율(律)이란 행동 즉 실천입니다. 그러므로 계율이란 것은 몸뿐 아니라 마음으로도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 몸으로는 죄를 짓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마음으로 죄를 범한다면, 이것은 계율 정신에 어긋나는 행위가 아니겠는지요. 내가 보기에 동남아시아 상좌부 비구들도 물론 훌륭한 분들이지만, 그 분들은 ‘몸으로만 짓지 않으면 된다.’ 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몸 마음 다 죄를 짓지 않아야 올바른 계율의 이해요, 수지(受持)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한국불교는 마음으로도 짓지 않는 큰 계를 지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점계(漸戒)를 말씀하셨습니다. 사미계에서는 살도음망(殺盜淫妄)을 설했는데, 살(殺)을 먼저 설하셨고, 비구들에게는 음도살망(淫盜殺妄)을 강조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구족계를 받게 되는데, 여러분은 계율(戒律)과 계체(戒體)에 대해서 확실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계율은 조금 전에 말씀드렸지요. 계체란 무엇입니까. 계체라고 하는 것은 어떤 형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는 것이 계체인데, 이것은 바로 마음의 본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계율이란 것이 왜 필요합니까. 마음을 깨닫고 견성성불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서의 마음 그 자체를 올곧게 지키고 유지해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계(結戒)란 계율을 결성하고 보호하면서 그것을 유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경계(經戒)라고 하는 것은 경의(經義)와 계행(戒行)을 아울러 일컫는 것이니, 이 계율은 만세(萬歲)에 걸쳐서 수행인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올바른 도리인 까닭입니다. 청정한 뜻이 내포된 정계(淨戒) 또는 좋은 습관을 익히는 것을 선계(善戒)라고 하거니와 몸으로써 행하는 것과 언어에 있어서 비(非)를 막고 악(惡)을 그치게 함에 있을 것입니다.

계체가 있으므로 해서 명실상부한 수행인의 잠재적인 청정심과 청정행(淸淨行) 그리고 습관적.의도적.발원적(發願的)으로 견고한 결의와 철저한 각오(覺悟) 그 서원이 성취되어 마침내 상구보리 하화중생이라는 보살행과 함께 불은을 갚고서 지상불토를 점진적으로 일궈가는 불교수행인으로서의 도리를 다 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시간이 얼마 남아 있지 않는 것 같은데, 오늘 구족계를 수하는 여러분들은 태고종의 승니로 입문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서두에서도 언급했지만, 우리 종단이 정통종단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긍지를 갖고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막연하게 내가 정통종단이라고 주창하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적 근거와 정통성에 입각해서 자신 있게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우리 태고종의 장점은 무엇입니까. 지역사회에 뿌리를 박고 있는 사암으로서, 평생 주지를 종신토록 하는 위치에 있습니다. 내가 주석하는 용화사는 화주제(化主制)란 것이 있어서, 지역별로 화주를 두고 있는데, 이런 화주들이 알아서 주지가 할 일을 대행해 줍니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지역사회에서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지역사회와 따로 놀지 말고 뭔가 지역민을 위해서 보람 있는 일을 하는 그런 표상이 되어야 합니다. 해방이후에 승려 출신 국회의원이 80여명이나 되었습니다. 시간이 부족해서 다 말씀드리지 못하지만, 1500만 신도에서 이제 700만 신도라니, 도대체 우리 불교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습니까.

이제 우리 종단은 편백운 총무원장 스님께서 새로 취임하셔서 의욕적으로 사심 없이 공심을 갖고 태고종을 안정시키고 중흥시키기 위해서 지도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여러분께서도 종단을 위해서 뭔가 힘을 보태는 그런 태고종의 스님들이 되실 것을 당부 드리면서 오늘 율의 강의를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원응스님 한국불교신문 논설위원).
원응스님 (한국불교신문 논설위원).

<도월 수진 전계 아사리 스님께서는 우렁찬 박수 소리와 함께 하좌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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