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이 공부가 반드시 나의 미래로 흘러
한 맛을 이루는 大海를 형성할 것을 믿으며…


유시유종(有始有終)….
엊그제 유학기를 시작한 것 같은데 벌써 마지막 회 글을 쓰게 되었다. ‘좀더 신경 써서 잘 써 볼 걸’ 하는 후회와 함께 지난 1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유학기의 첫 회가 어땠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지금 현재 내가 감관으로 느낄 수 있는 이 시간만큼이라도 대미(大尾)랄 것도 없는 이 글을 잘 장식하고 싶은 마음이다.


스리랑카 불자들이 불치사에서 기름등을 켜고 있다.


사실 불교적인 입장에서 시작과 끝을 논하는 것에 대해 무기(無記)로 일관할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그런 행동들이 선객(禪客)다운 면모를 나타내 보이기도 해서 가끔은 멋있게 보이기도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그것에 관해 침묵만 하지 않으셨다. 그 예를 보면, 빠알리어 경전인 <디가니까야(Dighanikaya ; 장아함경에 상응)>에 세상이 시작되는 과정에 대해 상세히 설하신 내용이 있는데 바로 한역으로 <소연경(小緣經)>이라 불리는 <아간냐 수따(Agganna Sutta)>이다.

이 경에서 부처님께서는 ‘특정 시점’을 지정해서 세상의 수축과 팽창, 그리고 광음천에서 나는 중생들과 함께 땅, 달, 태양 등의 순으로 세상이 시작되는 것을 설하셨다. 부처님께서는 특정 시점 이전의 일도 잘 알고 계시는 듯 하지만 여기서는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기로 한다. 그 경에는 세상이 시작되는 과정이 너무나 상세하게 묘사돼 있어 한편의 역사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위의 경우에서처럼 부처님께서는 무기(無記) 뿐 아니라 정확한 묘사로 세상의 시작과 형성과정 등에 대해 말씀하시기도 하셨던 것이다. 그와 같이 올바른 논리의 바탕 위에서 설해졌던 정확한 설법이야말로 불교가 부처님 당시 육사외도를 비롯한 수많은 인도의 철학과 사상을 뛰어넘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단어 중에 ‘진공묘유(眞空妙有)’ 라는 말이 있다. 무기(無記)는 진공(眞空)이요, <소연경>에서의 설법은 ‘묘유(妙有)’라 할 수 있겠다.
어쨌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원고를 작성하자니 ‘마지막’이란 단어에 필수적으로 따라 붙듯이 ‘처음’을 돌이켜 보게 된다.

나의 불교생활이 처음 시작된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 교내 동아리 선배의 손에 이끌려 반 강제로 가다시피 한 불교학생회가 그 시작이었다. 한 두어 달을 매주 토요일마다 하늘같은 3학년 선배와 같이 다니다 보니 불교학생회 법회가 슬슬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불교기초교리 공부하는 것도 나름 흥미로웠고, 단편문학을 선정해서 격주로 했던 문학토론회도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절에 가면 여학생을 만날 수 있어서 더 좋았다. 그때만 해도 남녀공학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호기심 많은 사춘기에 여학생과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은 그렇게 하지 못하는 또래 아이들과 비교해서 엄청난 특권을 누리는 것이기도 했다.

그래도 우리는 통속적인 재미만 추구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 나이에도 문학과 불교의 이해가 제법 깊은 친구들이 있어 법회시간 이외에는 학생회 사무실에서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했는데 그 친구들은 주로 독일 철학과 문학에 심취해 있었다. 그들은 당시 내 수준으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던 칼 막스, 헤르만 헤세 등의 철학과 문학을 자유로이 넘나들며 토론을 했었고 심지어 한 여학생의 영향으로 독일 여류작가인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를 거의 모든 학생이 읽기도 했다. 그때가 고1, 고2 때이다.

그렇게 시작되었던 불교생활이 출가한 지금의 나에게는 거의 전부가 되어버린 것이다. 사실 전부가 되어야 하는 것이 타당하지만 아직도 털어버려야 할 중생심이 남아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그래도 단출하게 시작되었던 그 처음이, 순수했던 시절의 첫사랑 소녀인 양 지금껏 귀중하게 내 곁에 남아 소통되고 있음에 진정으로 고마움을 느낀다.

내 공부에도 그런 소통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적지 않은 나이 탓에 돌아서면 금세 잊어버리곤 하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이 공부가 반드시 나의 미래로 흘러 한 맛을 이루는 대해(大海)를 형성할 것이라 믿으며 지금도 간단(間斷)없이 하고 있다. 꼭 이번 생이 아니더라도 다음 생, 아니면 그 다음 생에라도….

이제 마음에 담아 두었던 인사를 해야 할 가장 소중한 시간이다.
시답잖은 공부 핑계로 전화도 한 번 제대로 드리지 못했던 은·법사 스님이신 수봉(상진)스님, 청련사 주지이신 백우스님과 청련사 대중스님들께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고마움을 전한다.
또한 내 마음 속에 있는 모든 분들께도 같은 마음을 전해 드리며 졸고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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