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쯤 한국은 만산홍엽(滿山紅葉)에 길거리는 샛노란 눈이 내려앉은 양 온통 은행잎으로 뒤덮여 참으로 장관일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멀리 타국 땅에 있으니 그 산과 거리를 봤던 기억이 한 폭의 풍경화로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 있어 보고 싶은 마음이 더욱더 간절해진다. 단풍생각이 나니 부처님 깨달음의 상징인 보리수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를 꺼내 볼 까 한다.

스리랑카 불교에는 세 가지의 중요한 숭배 대상이 있는데 그것은 보리수, 탑 그리고 불상이다. 물론 이밖에도 종교적인 의례로 성지순례, 경전독송 등이 있지만 앞서 말한 세 가지가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재가불자들은 절에 들어서면 신발과 모자를 벗고(사실 스리랑카 불자들은 절에 모자를 쓰고 가는 일은 없다) 제일 먼저 탑에 예배드리고 다음은 보리수에 예배를 드린 후 법당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이런 순서가 스리랑카의 예배전통으로 자리를 잡은 지는 꽤 오래 된 것 같다.

탑 모양은 우리나라의 탑과는 다른, 종모양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스리랑카의 절에는 다 모셔져 있다. 그리고 불상은 삼매상(三昧像)인 좌상(坐像)과 와상(臥像)이 주로 많이 모셔져 있으며 우리나라처럼 후불탱화가 거의 모셔져 있지 않아 다소 밋밋한 느낌이 들지만 오히려 깔끔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어떤 절에 가면  불상의 뒷부분에 형형색색의 네온사인들이 불을 밝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처음엔 그 모양이 상당히 낯설었음은 말할 것도 없고, 솔직히 표현하자면 우리나라의 이발소를 연상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네온 불빛들이 없는 불상을 보면 왠지 허전한 느낌도 드는 것이 나도 이제 스리랑카에 제법 적응을 한 것 같다.

위의 숭배 대상 중 가장 스리랑카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보리수에 대한 숭배(예배)이다. 빨리어로는 보디뿌자(Bodhip?j?)라고 하는데 스리랑카 사람들은 이 보리수가 부처님의 화신이며, 부처님의 법이 담겨 있다고 믿고 꽃과 향을 탄 물을 공양 올린다.

그리고 보리수 아래는 부처님이 모셔져 있는데, 이 풍경을 보노라면 부처님께서 6년간의 고행을 중단하시고 수자타의 공양을 받으신 후 보리수 아래서 선정에 드신 당시의 모습이 절로 연상이 된다. 이런 스리랑카의 전통이 낯설지 않은 이유는 우리나라에서도 오래된 고목을 신격화 시킨 토속신앙을 직접, 간접적으로 보아 왔기 때문일 것이다.  

보리수 주위를 돌면서 꽃과 향, 차 등을 공양 올리는 보리뿌자 장면.

상좌부 불교의 전통이 계승되는 스리랑카에서도 재가자들은 출가자들의 수행과는 다른 형태로 종교생활을 하며, 그것은 우리나라와 별반 다를 게 없이 현세의 안락과 내세의 행복을 위해 복을 짓기 위해서다. 그 중에서도 특히 다음생의 행복이 더 큰 목적이기도 한 것 같다.

부처님께서 재가자를 위해 설해 놓은 초기경전들을 보면 명상(참선)을 하라든지 팔정도를 수행하라든지 하는 그런 말씀들은 하지 않은 것 것 같다. 단지 각 개인이 가지는 사회적 지위 혹은 위치(부모, 자식, 스승, 제자, 친구 등)에 가장 타당한 행위를 설하고 있으며 그 행위의 결과가 가져다주는 행복과 안락을 설하고 있을 뿐이다.

여하튼 이런 부처님의 화신 혹은 불성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되는 종교적 숭배의 대상에 지극히 예배하고 공양올림으로써 현세에 복을 구하고 내세에 좋은 곳, 좋은 몸 받고 태어나기를 기원하는 것은 어떤 불교사상을 가지고 있는 나라의 불자든지 간에 인지상정(人之常情)인 모양이다.

다시 공부이야기로 돌아와서, 지난 회에 전공을 빨리어 율장으로 정하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오늘은 율장과 관련한 수업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사실 스리랑카가 빨리어 삼장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는 자부심은 대단하지만 정작 율장을 전공한 학자들은 쉽사리 찾아보기 힘든 것 같다. 더군다나 대학원의 정규과목에는 율장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 실정이어서 미얀마에서 오신 우 빤디따(U. Pandita)스님에게 별도로 일주일에 1시간 내지 1시간 반 정도 율장수업을 듣고 있다.

우 빤디따스님은 율장 외에도 빨리어 문법, 아비담마 등을 가르치고 있지만 내가 다 소화하기엔 역부족인 것 같아 율장수업만 듣고 있다. 하지만 그 수업에는 상당한 애로가 따르는데 그것은 스리랑카식 영어발음보다 훨씬 더 듣기가 힘든 미얀마식 영어발음이다. 그 수업을 들은 지 1년이 지났지만 스님의 독특한 미얀마식 영어발음은 여전히 나의 귀를 뚫지는 못하고 있다.

처음 율장수업을 들었을 때는 정말이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은 평균 30% 내지 40% 정도 알아듣고 어떤 날은 반 넘게 알아들을 때도 있다. 1년이 지났는데 그 정도 밖에 이해하지 못하면 거의 포기해야 되는 수준이지만 그래도 이 수업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는 이유는 빨리어 율장과 함께 스님께서 미얀마 주석서에 담겨 있는 내용을 설명하는 부분이 매우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내용들은 주로 승가의 생활에 관한 이야기라 전문용어들을 많이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조금 더 잘 들리는 편이다. 또한 율장에 나타나 있지 않은 사항들을 확인해 주기 때문에 율장을 보는 시각을 한층 넓힐 수 있음은 물론이고 학교수업에 없는 율장에 대한 용어에 적응하고 감각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이 수업은 나에게 꼭 필요한 수업이다.
그래서 언젠가는 귀가 뚫리겠지 하면서 그렇게 수업에 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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